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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대신 책꽂이가 들어선 거실, 참 좋다
2012-10-20 13:36:45최종 업데이트 : 2012-10-20 13:36:45 작성자 : 시민기자   김지영

한때 아파트 투기 붐이 일던 시절에 대한민국 부부들의 로망은 34평형 아파트를 갖는 것이었다. 가장 대중적이면서 가장 알맞은 평수. 24평은 왠지 좁아 보이고, 40평형대는 너무 크기도 하지만 서민들은 그 가격 때문에 언감생심 엄두조차 내기 힘들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세월이 바뀌어 24평형대가 인기라고 한다. 가족 숫자도 줄어드는데다가 큰 평형은 관리비만 비싸다는 단점 때문에 과거에 그렇게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던 대형평형 아파트의 가격과 콧대가 하릴없이 그 날개가 꺾이고 있다니.

참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어쨌거나 서민들은 아파트 한칸 장만하기 위해 결혼 직후부터 청약 통장 들고 상추 콩나물 값 아껴가면서 24평 아파트부터 시작해 허리띠 졸라맨 후 34평 아파트로 점프하기 위해 밤을 낮삼아 일을 한다. 맞벌이는 기본이고, 아이들 학원비 줄여가면서 땀을 흘린다.

그런데, 전세를 살면서 지금까지 몇 번의 이사를 했지만 이사때마다 늘 속시원히 풀리지 않는게 있다면 집이 아무리 커도 공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결혼 직후 햇볕도 잘 안드는 반지하 셋방에서 출발해 4년만에 지상(?)으로 올라오고, 그후 다시 4년만에 24평 아파트 전세를 살다가 운 좋게 늦으막에 34평 다세대 주택을 구입해서 살게 됐다. 아파트는 아니지만 주변여건도 쾌적하고 볕도 잘 들어서 참 좋다, 

아마도 우리같은 모든 서민들의 비슷비슷한 생활패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다른건 몰라도 오래도록 햇볕은 커녕 바람 한번 쐬지 못한 채 창고 속 박스에 갇혀 있던 책들을 꺼내 정리해 주지 못하는게 늘 마음이 아팠다. 내집마련후 이사를 해서야 비로소 책꽂이에 자리를 잡았지만 그마저도 책이 많고 공간이 좁아 이중으로 겹쳐 꽂혀있거나 벽에 기대 쌓여있는 책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적잖은 장서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보관과 관리는 빵점일수밖에 없다.

TV 대신 책꽂이가 들어선 거실, 참 좋다_1
TV 대신 책꽂이가 들어선 거실, 참 좋다_1

거실을 좀더 활용하기 위해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 쪽과 부엌에 면해 있는 곳을 빼고 책이 두 개의 벽에 가득 채워졌다.
결국 갈 곳이 없어진 TV는 안방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온 식구가 TV를 보려면 침대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아이들은 물론이고 아이들 못지않게 뉴스와 스포츠를 찾는 남편, 드라마와 예능 프로를 즐기는 나도 당장 불편했다. 하지만 책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TV를 포기하는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TV 보는 일이 편하지 않으니 세월이 흐를수록 시청 횟수와 시간이 줄었다. 처음에는 왠지 심심하고 무언가 빠진 듯 허전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온 식구가 빠르게 적응해갔다.
우선 아이들은 거실에 나오면 무심코 책을 빼들었다. 꺼낸 책을 그 자리에서 꼼꼼하게 읽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꺼내 보다가 읽을 책을 골라낸다. 어른들이 읽는 주제가 무거운 책들도 곧잘 꺼내 보며 그 내용을 묻기도 했다.

얼마 전 이웃집 주부들 몇을 초대해 만두를 함께 쪄서 먹었다. 다른 때는 늘 TV를 보며 함께 웃고 TV에 나오는 이야기가 주된 화제였는데, TV가 없는 거실에 둥그렇게 모여 앉으니 처음에는 서로 멀뚱멀뚱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주부 한명이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자 옆에서 맞장구를 치고, 요즘 노인세대가 불행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우리도 더 늙기 전에 미리 고령화에 대비하자는 말을 하니 모두 다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백배 공감 되는 주제가 아닐수 없었다. 

그 직후 이모를 따라 온 3살짜리 아이가 일어나 엉덩이 춤을 추며 재롱을 부리자 앉아 있던 주부들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집 주인인 내가 평소에 TV와 친하게 지내면서 식구들이 모여도 말 한마디 없이 지내다가 TV를 치운 뒤 장점이 많다며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이게 처음 며칠은 특히 남편, 퇴근하고 저녁식사를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몸살을 앓더군요. 그러다, 나에게 차를 한잔 대접하기도 하고, 본인이 주절주절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 해요. 그러니 자연스레 더 말이 많아 지더군요. 더 살가워지더라니까요. 거기다가 책을 가까이 하지 않던 남편은 유머집을 들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합니다. 덕분에 아이들도 독서 하는 시간이 훨씬 늘어났어요. 자연스레 책을 보며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생겼죠. 그 주제가 무엇이든 상관 없습니다. 유머든,  과학이든, 생활이든..."
내 이야기에 모두 다 고개를 끄덕끄덕. 다른 가정들도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어쨌거나 TV 없는 거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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