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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포'를 고르라는 엄마의 문제를 풀면?
명절음식을 먹을 자격이 생긴다
2012-10-01 12:23:21최종 업데이트 : 2012-10-01 12:23:21 작성자 : 시민기자   한상훈
대한민국에는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주부들이 명절에 시달리는 가사노동과 스트레스 수위의 심각성을 보여 준다. 이 말을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들, 특히 나같은 아들들.
왜냐하면 하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편하게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손하나 까딱안하고 주는 음식만 받아 먹는 남자들이라는 말에 힘을 실어주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반찬을 만들고 요리를 하시는데 명절에 하는 음식이라고 특별히 다를까 싶다. 그런데 그렇치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뭐라도 도와야 한다. 그런데 마땅히 도울 것이 없다. 전을 붙이는데 어슬렁대면 '제사음식은 끝나고 먹는거야'라고 핀잔을 듣고 걸리적거린다는 소리를 듣는다.

마트에 쫓아가서 장보는 걸 돕는다고 따라가기는 하는데 카트를 미는 것외에 마땅히 할 일이 없다. 비슷해보이는 과일을 들고 뭐가 더 낫냐고 물어보신다.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니가 뭘 알겠니'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 중 젤 커보이는 걸로 고심끝에 '이거'라고 하면 내가 골라 준 것은 놓고 다른 걸 선택하신다. 

여자들은 참 이상하다. 분명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이 있는데 꼭 물어본다. 대답을 안하면 안한다고 뭐라고 하고 대답을 해도 크게 반영되지 않는다. 이미 자신들의 마음속에는 더 선호하는 것이 있으면서 왜 묻는 건지 진짜 모르겠다.

마트에서 카트를 밀고 차에 실고 집에까지 운반하는 일을 무사히 마쳐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된다. 방에 있다가도 잠깐씩 나와서 '뭐 할거 없어?'라고 묻던가, 얌전히 있어야 한다. 눈에 띄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특히, 친구를 만나겠다고 잠깐이라도 나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 명절인데 집에 있지 어딜나가냐부터 시작해서 마트에 장보는 것을 도우러 간것은 어느새 사라지고 도와주는 것도 없이 나간다는 네버엔딩스토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 옆에서 엄마를 도와 전을 부치며 '그럴 줄 알았다' 투로 쳐다보는 여동생이 있으면 더 큰일에 쳐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와 같은 추임새를 넣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명절에 딱히 할 일이 없어도 집안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할 일이 생긴다. 깜박잊고 사오지 못했던 물건들을 사러가야 하는 심부름이 할 일이다. 

메모까지 해서 재래시장 한 번, 마트에 한 번 총 두 번이나 장을 보러 갔는데 사야 할 물건을 빠뜨릴 수가 있을까 의아하지만 궁금증은 마음속에 넣어두고 꺼내지 말아햐 하는 금기사항이다. 그냥 심부름을 시키면 나가야 한다. 이번에는 가장 눈에 띄어 빠뜨릴 수도 없을 것 같은 포를 빠뜨리셨다고 사오라고 하신다. 

'좋은 포'를 고르라는 엄마의 문제를 풀면?_1
'좋은 포'를 고르라는 엄마의 문제를 풀면?_1

여기서부터 또 고민이 시작된다. 포는 알겠는데 제사상에 올릴거니 '좋은 걸'사오라고 하신다. 좋은 거... 가장 어려운 문제다. 뭐가 좋은 걸까. 색깔이 노랗고 딱 봐도 좋은 거라고 하신다. 일단 나가서 돌아다녔다. 재래시장에는 역시 사람들이 북적였다. 일단 가격대는 정해주셔서 한 결 선택하기가 수월해졌다. 
가격대도 정해지지 않는 심부름은 정말 최악이다. 나름 좋은 거라고 사가면 너무 비싸게 주고 샀다고 하시니까. 가장 쉬운 방법은 마트에 가서 비슷해 보이는 것 중 하나를 골라가면 되는데 재래시장에서는 가게마다 가격도 조금씩 다르고 진열해 놓은 상태가 달라서 같은 포라도 어느게 더 좋은 건지 모르겠다. 사실 좋은게 뭔지 진짜 모르겠다. 

노랗고 좋은 거..잘 생긴 거 찾으면 되는거지 하고 시장안에 있는 마트에서 골랐다. 집으로 향하는데 건어물가게 앞에 몇 사람이 포를 사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계시길래 '아차'했다. 여기 포가 좋은 거구나....
사실 마트에서 포를 살 때 거기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께 여쭤봤다. 뭐가 좋은 거냐고. 엄마가 좋은 걸 사오라시는데 하나만 골라달라고. 

아주머니가 골라주시면 엄마 마음에 들 것이라는 얕은 잔머리를 굴렸는데 마트보다는 건어물의 포가 아주머니들사이에서 더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대로 들어가면 뭐 이런 걸 골라왔냐며 적어도 세 마디 이상은 들을 게 뻔했다. 더 심하면 다시 나가 사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수도 있었다. 그래서 다시 마트로 가서 달랑 포하나를 환불하고 건어물상에 가서 포를 사갔다. 

환불하고 다시 사간 선택은 옳았다. 엄마가 크게 만족하셨다. '진짜 포 좋다. 진짜 잘 골랐다.'라는 말을 서너번 하셨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대기모드상태로 들어갔다. 언제 또 빼놓은 물건을 사러 나가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엄마 마음에 드는 포를 사와서 이번 추석에도 이렇게 좋아하는 전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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