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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파이팅!
애들은 애들 답게, 아저씨들은 아저씨 답게
2012-10-02 08:22:34최종 업데이트 : 2012-10-02 08:22:34 작성자 : 시민기자   이학섭

밖에서 저녁밥 먹을 시간까지 늦어가면서 놀다 들어온 아이가 엄마를 보자마자 당장 신경질부터 부린다.
"에잉, 씨. 이 청바지 너무 싫단 말야. 나는 얼룩덜룩한게 좋은뎅. 이건 색깔도 너무 진하고 늘어나지도 않구..."
바지를 벗어 베란다 세탁기쪽에 벗어서 확 패대기 치는 아이를 본 아내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을 꺼내지 못한다.

아이는 약간 얼룩무늬에다가 엉덩이에 착 달라붙는 스판 청바지를 사 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제 엄마가 얼룩무늬는 너무 촌스럽고, 약간 불량기가 있어 보여서 품도 약간 넉넉하되 단색의 깔끔한 보통 청바지를 사 입힌건데 아이는 그게 싫다며 난리를 친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생인 아들이 이제는 자신만의 패션에 눈을 뜬 것인가? 아니면 아무리 빨라졌다 한들 벌써 저 나이에 사춘기가 도래한걸까?

중년 파이팅! _1
중년 파이팅! _1

부모의 눈에는 얼룩무늬가 영 마음에도 안들거니와 자꾸만 자신의 취향에 맞는 바지 입기를 고집하는 아이가 마뜩찮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가 조금씩 만들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점점 아이들 커 가는걸 보면서 이젠 바지뿐만 아니라 다른 수 많은 일들을 가지고 부닥칠텐데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긴장감이 돈다.

얼마 전, 한 신문에서 실제 키는 작아도 약간 커 보이게 하는 바지 연출법이라는 패션 기사를 읽은적 있다.  글의 내용에는 바지를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실제 키를 커 보이게도 하고 작게 보이게도 하은지에 대한 설명과 바지 입는법이 나왔는데, 그중에서도 내게 눈이 뜨인 것은 바지의 길이를 보면 소위 '오빠'인지, '아저씨'인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주된 내용인즉, 구두 위로 주름이 잡히도록 입으면 '아저씨'가 되는 것이고, 하체 길이보다 약간 짧게 입으면 세련된 '오빠'가 된다는 주장이였다.
거기다 모 의류회사에 근무하는 전문가까지 나와서 "적어도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었을 때 구두가 절반 이상은 드러나야 어색하지 않다."고 조언까지 한다. 

그리고 마지막 말은 '발목에서 구불구불 갈매기 곡선을 그리는 바지는 그만, 바지 길이를 반 뼘만 줄여도 다섯 살은 어려 보인다.'라고 결론 맺고 있었다. 
그 글을 읽자마자 내 바지를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영락없는 아저씨 바지였다. 그리고 거리로 나가서는 유심히 바지의 길이를 살펴보았다. 젊은이든, 나이가 먹은 중년신사든 거의 70~80%는 촌스런 '아저씨'바지 패션이었다. 

물론 이런 아저씨 패션 바지가 전적으로 촌스러울 뿐이고, 잘못 되었고, 신눈 기사에 난게 다 옳다는 뜻은 아니다. 아저씨가 아저씨 답게 바지를 입는데 뭐가 잘못일까 싶기도 했고, 신문을 읽으면서 '에이, 그건 기자양반 당신 생각일 뿐이고'라는 반감도 없는건 아니었다.
하지만 신문에 난 기사를 읽고 그래도 그 내용에 상당부분 공간이 가는 것도 있었다.

그때 나는 불현듯, 어린시절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언제나 딱 맞는 바지를 사주신 적이 없었다. 긴 바지를 몇 겹 접어 안쪽으로 말아 올려 입게 했다. 자식의 키가 조금씩 성장하면, 안으로 말아 넣은 여분의 바짓단을 펴서 키에 맞춰 입게 하려는 의도였다. 어린 시절, 발목이 드러나는 짧은 바짓단을 입은 아이들은 가난한 집 아이들이었다. 그에 반해 부잣집 아이들은 복숭아 뼈가 훤히 드러난 바지를 결코 입지 않았다. 

즉 그때는 잛은 바지는 가난의 상징이었고, 긴 바지는 부유층인을 단박에 알수 있었다. 패션의 모양새가 가난과 부자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바짓단을 좀 길게 입는 버릇은 여전히 남아 있고, 바짓단이 지나치게 길 경우 삭뚝 잘라내기보다 조금 안쪽으로 말아 넣는다. 지금도 바지를 구입할 때는 습관처럼 짧은 바지보다는 긴 바지를 좋아한다. 

아마도 내게는 어릴적 가난을 나이가 든 지금도 잇고 싶지 않은 일종의 가난함 안보이기 본능이 자리잡고 있는듯 하다.
중년의 나이에 바지를 길게 입는 습관은 그 나름의 정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것은 습관처럼 몸에 밴 어릴적부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흔적이며 그 나이에 맞는 패션이기도 하니까.

헤르만 헤세는 "나이 먹는다는 것은 젊음보다 나쁘지 않다. 노인이 젊어 보이려고만 하면, 노년은 한낱 하찮은 것이 되고 만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맞는것 같다. 그래서 나는 굳이 바지 길이를 반 뼘 줄여서 다섯 살 어린 '오빠'로 보이고 싶지는 않다. 아이가 제녀석 나름대로의 패션 스타일을 요구하는 것처럼, 난 구두 윗면을 살짝 덮은 긴 바지를 입는 아저씨가 맞다.

내 나이에 내 나이를 말하는게 결코 부끄럽지도 않고, 굳이 젊은 오빠들 틈에 끼이려고 하는것도 일종의 자기 부정 아닐까. 나는 나대로 나잇값을 하는게 옳다고 본다. 
중년의 아저씨들 모두 파이팅이다. 처자식 위해서 불철주야 땀 흘리는 중년들 모두 파이팅 한번 더 외쳐보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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