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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증후군' 나는 이렇게 이겨냈다
2012-09-28 16:55:48최종 업데이트 : 2012-09-28 16:55:48 작성자 : 시민기자   이연자

 

'명절증후군' 나는 이렇게 이겨냈다_1
사진/e수원뉴스 편집실 제공

명절하면 포근하고 행복한것 만은 아니다. 명절때마다 소화가 않되고, 머리가 아픈적이 많았다. 결혼하여 첫 명절부터 나와의 전쟁이 시작됐고 나를 혼란에 빠지게 했다. '언제가야 하며' '무엇을 사가지고 가야하며' '며칠을 자고 와야하며' 모든것이 스트레스가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들도 아니고, 그냥 있는그대로 받아 들였으면 됐을 텐데 그때는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후회스럽고 창피한 얘기로 넘기고 싶다.
유난히 잠자리에 민감한 나는 잠을 못자고, 밤을 꼬박 새운날이 많았다. 그렇다고 우리집이 아주 좋아서 비교가 되는것도 아니었으면서 워낙 집에서도 잠자리 바뀌면 잠을 못자는 까탈스러운 난데 그것을 마치 시댁이기에 그런것 처럼 합리화하고 남편을 힘들게 했다. 

그냥 그런거 같은게 '시' 자만 들어가도 스트레스라는 말을 어설프게 들어서 미리 겁먹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시댁이니 잘해야 된다는 부담이 크고, 환경이 달라 낯선 것은 당연한데 몸 따로 맘 따로인 나를 이해못해 괴로웠던 때 가 많았다. 

또 있다. 화장실 문제가 제일 힘들었다. 시골이기에 푸세식 화장실에 문도 제대로 달려 있지 않아 볼일을 보는것이 제일 큰 고민 거리다. 식구들은 그러는 나를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었고 유난스럽다고 비난도 했을것 같다.
좀 완벽하게 하려는 내성향 때문에 내자신을 힘들게 했다. 그러다 보니 명절만 지나면 한참을 앓아 눕기도 했다. 어느때는 화장실을 못가 아랫배가 빵빵해져 금방 어떻게 되는것 같기도 했다. 

그냥 손위의 동서처럼 편한하게 시키시는대로 했으면 좋았을텐데 내나름대로 는 좀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다보니 어르신들 하시는 일에 참견 하는것으로 되어버렸다. 
어르신들 의 세월이 얼마나 굳어 있으신데 그게 하루 아침에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후에야 알았다. 그때는우리  어머님 은 왜그러실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해를 하려 들지도 않았기에 자꾸 부딛치는 것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분들은 몇십년을 그렇게 사시며 그게 생활이었을 텐데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런 행동을 했을까? 부끄럽기도 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알기 까지는 시간이 해결 해주고 내가 변해야 했다. 그 한참의 시간속에는 나를 스트레스속에 가둬 놓았으니 두통이며, 소화 불량이 생길 수 밖에 없었을거라는 것도 알았다. 
예를 들면 손님이 오시거나 고모부가 오시면 식사때가 다되어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조그만 기다리면 준비가 다되어 식사를 하게 되는데 굳이 먹을것을 가져다 드리라고 하신다. 그러면 나는' 어머님 식사준비 다 되었으니 같이 식사하는게 좋겠어요' 했던 것이다. 
그러면 '손님이 오면 먹을것을 빨리 내와야지' 하시며 화를 내신다. 지금 생각하면 옛날에는 먹을게 귀한 때 였고 손님이 오시면 당연히 대접해야 된다는 것이 몸에 배여서 그러셨을 것이다.

어느날 나는 나를 알게 되었다. 상대가 변하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변해야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내나이 사십이 넘어서 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이 맞다는 것도 알았다. 어차피 내가 해야되는일 이라면 그때마다 고민 하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즐겁게 하려고 노력을 해더라면 좋았을껄 생각도 하게된다.
그렇다고 일이 하기 싫어서 스트레스를 받은것은 아니다. 더 잘하려고 안해도 되는 일을 찾아서 하며 그게 맘에 안들면 나한테 실망하게 된다. 모르면 물어서 하면 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됐을거라는 것도 늦게야 알았다. 
그 자존심이 나를 힘들게 했다. 묻기가 싫어 혼자 걱정하고 속상해 했다. 

늦게 결혼한 것이 나한테는 컴플렉스 였던것 같다. '그나이 먹도록 뭐배웠어' 하실까봐 미리 겁부터 먹고 그런 행동을 했을거야, 내가 나를 위로해 보자. 사회생활을 오래 하고 결혼을 늦게 했으니 잘하는 것이 있었겠는가?
그럼 그대로 인정하고 예쁘게 봐달라고 애교도 부리며 어머님 한테 잘했으면 시집살이 를 잘견뎠을 텐데 여우가 못되고 곰이었었나? 현명하지가 못했었나? 내 생각에는 잘한다고 했는데, 누가 뭐라 한 사람도 없었는데, 나혼자 그냥 힘들게 살았다. 

우리 어머님 옛날 분이시지만 정이 많으시고 사리 판단 잘하시며 현명하게 사신 분이다.
대화를 자주하고 자존심을 버리고 노인 이시기에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을 바꾸니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 지고 스트레스를 받지않게 되었다. 그 뒤로부터 는  즐거운 명절을 맞이할 수 가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데까지만 하고, 시간도 낼 수 있을 때만 하며, 경제적인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성의껏 하니 시부모님과 시누이 가 좋아하시고 표정이 밝아졌다고 하며 힘을 실어주어 못하던 일도 척척 하게되었다. 그때부터는 이왕할거면 즐겁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솔직한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니 모든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그 냄새나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수 있고, 작은방 한쪽 구석에서도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 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게 증명 됐다.그렇게 내가 변하니 그때 당돌했던 내가 부끄럽고 세월이 흘르고 보니 나를 불편하게 하던 돌아가신 시어머님 이 그립다. 그리고 시시콜콜 참견하던 시누이도 내가 잘하니까 그리고 세월이 흐르다보니 서로 의지하며 편안한 관계가 되었다. 가끔은 그때가 그리울 때도 있다.

명절 증후근 이라는 단어도 내마음 속에서 멀리 보내버리고 생각을 바꾸니 모든것이 해결되었다. 이번 중추절에는 그때를 생각하며 조상님께 용서를 빌어야지. 그리고 풍요로운 가을 하늘처럼 높고높은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고 감사의 표현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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