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수원 40여년, 내가 겪어본 수원
2012-09-30 11:58:19최종 업데이트 : 2012-09-30 11:58:19 작성자 : 시민기자   김홍범

 

수원 40여년, 내가 겪어본 수원_1
지동 제일교회 노을빛전망대에서 바라본 수원도심풍경

수원에 40여년 가까이 살면서 30대 우리세대에게 있어서 수원은 많은 변화기에 있었다. 70년대 중반 수원시 인구는 30만도 안된 인구에 도심지도 작은 도시에 불과 했지만 40여년 가까이 지난 현재 수원은 114만의 인구를 가진 거대한 도시로 변모했다.

고흥에서 태어났다지만 그곳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는 않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은 수원으로 이사해 정착해 살았고 줄 곧 살아온 수원은 나의 고향이라는 생각을 줄 곧 했다. 
집안이 200여 년 전 경기도 고양시 부근에서 대대로 살았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경기도 수부도시 수원에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역사속의 고향에 다시 돌아와 산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수원에서 줄곧 살면서 겪어본 수원, 수원에서 살아온 40여년의 세월 속에서 느꼈던 수원이라는 도시에 대한 얘기를 지금부터 하고자 한다.

수원의 첫 기억은 골목길부터

70년대 후반 어렸을 적 어머니 등에 업혀 본 수원의 풍경은 대부분 골목길이었다. 집과 집사이로 사람 한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골목길이 많았고 당시엔 거의 대부분의 가옥 구조는 기와집이 많았던 걸로 기억이 난다. 

80년대 초반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수원의 작은 동네였던 인계동 지역의 골목들은 저녁이 되면 동네 아이들이 뛰어나와 숨박꼭질, 줄넘기, 팽이치기, 딱지치기 등의 놀이를 하면서 골목골목 뛰어놀던 기억이 난다. 눈에도 익숙한 골목길을 가면 당시 소리치며 뛰놀던 그 당시의 소리가 들리는 듯 느낌을 많이 받는다. "어렸을적 이곳에서 숨박꼭질 했는데..." "저기선 개구리를 잡으며 놀았는데.. " 하지만 지금은 세월이 흘러 이것도 추억 속에만 아련히 남아있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수원은 급속한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81년도 초등학생이 되었을 당시는 활동반경이 넓어졌는지 동네 이곳저곳을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인계동 풍경은 골목길이 이어지는 마을이 듬섬 듬섬 있었고 그 마을 앞엔 논이, 그 뒤에는 작은 산과 밭이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학교까지 걸어갈 때도 논과 밭을 지나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가로수 길을 지나가야 했다. 당시 학교에 가는 길만 해도 평범한 농촌 풍경 이였다고나 할까 초등학생 당시 수원은 그런 이미지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지금의 인계동 지역은 대부분 도심지로 변했지만 당시만 해도 대부분 논과 밭으로 되어 있어 동네 아이들은 그곳에서 여름엔 올챙이와 개구기를 잡기도 했으며, 가을엔 잠자리나 메뚜기를 잡기도 했고, 겨울엔 논바닥에서 썰매타기, 연날리기, 지불놀이 등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의 인계동 지역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하나 나고 우리가 바라본 풍경은 변화를 맞게 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수록 우리가 알고 있는 논과 밭의 풍경은 하나 둘 사라지고 우리가 사는 곳은 차차 주택가로 변모했다. 지금의 권선동 지역은 대규모 주택단지 공사가 진행중이였고, 인계동 지역도 이곳저곳 공사가 한 참 진행 중에 있었다. 

수원 40여년, 내가 겪어본 수원_2
어렸을적 추억이 있는 광교천

80년대 광교산과 원천저수지의 추억

놀이공간은 동네의 논과 밭을 떠나 어느덧 광교산으로 향했다. 당시 광교산엔 지금과 달리 농촌풍경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광교천에는 가재 또한 굉장히 많았다. 친구들5,6명이서 버스를 타고 광교산으로 가재를 잡으로 자주 갔었던 기억이 있다. 또 그곳엔 시골정취를 물씬 풍기는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감나무가 많았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곳은 당시 인심도 후해서 가재에 잡기에 지친 일행을 보고 "밥먹고 쉬었다 가라"며 손짓하는 인심 좋은 할머니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또한 원천저수지로 방울낚시를 많이 다녔던 기억이 있다. 원천저수지는 주말이 되면 텐트를 들고 가서 하루저녁 밤낚시를 했던 사람들이 많았고 또한 지금의 영동시장 건물 2층엔 큰 오락실이 있었는데 또래 아이들이 즐겨 찾던 놀이공간이었다. 

80년대 중후반 중학생 시절 수원은 급변하는 수원이라고 할까! 중학생 시절 키가 쑥쑥 자라듯 수원도 거대한 도시로 천천히 변모하고 있었다.

그 시절엔 자전거를 타고 수원천 옆길로 통학을 하곤 했는데 당시 수원천의 모습은 지금과는 달리 오염이 심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수원천의 물은 거무스레 했고 악취는 코를 막고 갈 정도로 심했다. 하지만 인근 시장의 풍경은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고 영동시장과 못골시장 부근부터는 수원천변 가설건물이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풍경이 있었다. 그곳에서 생선, 야채 등을 팔았던 상인들도 많았던 기억이 있다. 

오염이 심했던 수원천을 덮고 도로로 만들었지만 수원천 복원 운동에 힘입어 올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이 되었다. 무엇보다 어렸을 적 좋은 기억이 없었던 수원천은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지역의 명소로 자리매김 할 정도로 수변경관이나 수질상태가 매우 좋아졌다. 

80년대 후반 수원의 중심지는 팔달문 지역 이였다. 지금의 로데오 거리가 있는 곳엔 대한극장과 중앙극장이 있었고 매교 삼거리엔 수원극장이 있어 젊은 층이 항상 붐볐던 곳이다. 팔달문 주변엔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나와 쇼핑을 하곤 했는데 당시 크로바백화점과 중앙극장 앞은 연인들의 시간약속 장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지금의 장안문 거북시장 또한 술집 등의 먹거리 촌으로 사람들이 많이 붐볐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수원역과 인계동 중심상가거리 쪽으로 중심가가 바뀌었지만 당시만 해도 팔달문 지역과 장안문 지역이 수원의 1번지였다. 

사라진 거리와 재래시장

옛 1번 국도인 수원고등학교 앞 쪽에도 매교시장이라는 꽤 규모가 있던 시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매교상가 쪽으로 이동해 있고 몇몇의 상가만 그 부근에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옛 권선구청 건물이었던 수원여성회관 건물 뒤쪽 길에도 인쇄거리가 길게 이어져 있었으며 인근에 도청과 시청, 구청이 가까워서 자연스럽게 경기도의 인쇄거리 1번지로 형성된 듯싶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몇 개의 인쇄소만 남아있다. 

구천동 공구거리 옆에 있었던 목공소거리도 사라진 거리 중 하나다. 길 하나 사이로 앞에는 여러 목공소들이 줄지어 있었고 반대쪽 수원천 옆엔 200여미터 정도 이른바 '방석집'들이 형성돼 있었다. 

88서울올림픽이 성공리에 개최되고 인계동 지역도 하나 둘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금의 시청 앞에 있던 작은 산은 공원으로 바뀌고 인계동이 새로운 수원의 1번지가 될 거라는 말들이 많았었다. '인계동 박스 지역'이 어느 정도 도심지의 모습을 갖추었을 때 인계동박스안의 상권은 지금처럼 활성화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가능했다. 

수원 40여년, 내가 겪어본 수원_3
수원민자역사

90년대 말 노후화된 수원역과 전철역도 변화를 맞게 된다. '99년 8월에 착공해 3년 6개월 만에 준공이 되었고, 수원월드컵 경기장도 2001년도에 준공되면서 새롭게 수원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된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그렇게 높은 건축물이 없었던 수원은 당시 문화맨션 아파트나 향원아파트 정도의 건축물이 있을 정도의 도시였지만 현재는 수원민자역사를 비롯해 수원월드컵경기장, 삼성전자DM연구소등 수원의 상징하는 거대한 건축물이 됐다. 

2003년 수원에는 또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 기존 권선구, 팔달구, 장안구로 나누어졌던 행정구역이 영통구가 개청되면서 4개 구를 가진 도시로 변했는데 90년대부터 일어난 대단위 아파트 단지 건축 붐이 일어날 정도로 동수원 지역은 아파트가 굉장히 많이 지어졌다. 지금도 영통 지역은 대부분의 주거시설이 아파트 단지 지역이다. 

20대였던 90년대 초.중반부터는 군 생활과 대학생활 직장생활을 했던 시기는 수원을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후 다시 수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역을 돌아보곤 했는데 2000년대 초, 다시 돌아본 수원은 새로운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때부터인가 자전거를 타고 수원이라는 곳을 하나 둘씩 살펴보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인계동 지역은 거의 대부분 도심지로 변해 있었고 지금은 수원의 중심지가 됐으며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젊음의 거리로 변모해 있었다.  수원을 이곳저곳 여행하면서 지역의 역사와 행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그렇게 활성화 되었던 팔달문시장 지역과 장안문 거북시장 지역이 쇠퇴기를 걷고 있었다. 그 전엔 그렇게 사람들이 많았던 곳이었는데  도심지가 커지면서 여러 곳으로 상권이 분산되기 시작한 거였다. 

예전엔 도심지가 작을 때는 중심상권을 팔달문 지역에서 맡았지만 지금은 영통구, 장안구, 권선구 지역 또한 상권이 독립적으로 형성이 되었고, 수원역도 새로운 중심상가 지역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또한 대형 마트등도 곳곳에 생겨나 팔달문 지역은 점점 쇠퇴기를 맞게 되었고 3~4개 정도 있었던 영화관도 하나 둘씩 이전하거나 문을 닫게 되었다. 

2000년대 후반 점점 쇠퇴기를 걷고 있는 재래시장들은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대표적인 시장으로는 못골시장을 들 수 있는데 예전 못골시장은 비가 오면 길이 냄새날 정도로 길이 질퍽했으며 노후화된 시설로 정비가 안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간판정비사업과 아케이드 지붕공사, 전통시장에 대한 상인들의 피나는 노력한 결과 지금은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수원의 대표적 시장으로 거듭나게 됐다. 

2010년이 넘어가자 서수원에도 변화에 바람이 차차 불어오고 있다. 지금의 서수원 모습은 어렸을 적 인계동 모습과 흡사하며 아마도 20년 후쯤이면 서수원도 지금의 인계동보다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원 40여년, 내가 겪어본 수원_4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된 수원천복개구간

수원천 또한 많은 변화를 맞았다. 도로로 덮여있던 수원천 구간이 예전 모습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원천변을 거닐던 모습은 어렸을적 보질 못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산책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앞으로 20~30년 후의 미래의 수원은 또 어떻게 변해갈까? 지금도 수원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면 즐거운 상상 속에 빠져든다. 

곧 4일부터 전야제를 시작으로 수원화성문화제가 5일부터 열리게 된다. 이번 축제는 30대 마지막으로 맞는 수원화성문화제는 나에게 있어서도 남다른 감흥이 있을 듯싶다.

 

수원, 수원시, 수원40년, 수원의 추억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