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치킨이냐 피자냐..양보 타협의 기법
2012-10-07 08:45:33최종 업데이트 : 2012-10-07 08:45:33 작성자 : 시민기자   이선화
토요일 한낮. 끼니 때가 되자 아이들이 슬슬 꼼지락거리더니 이내 입이 궁금해진듯 큰 아이가 슬그머니 내게 다가와 오랜만에 피자좀 사달라고 졸랐다. 그러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작은 아이는 치킨을 시켜 먹자고 말했다.

물론 내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그거, 인스턴트 식품이라 안되느 것 알지? 비만의 주범인거 말이야"
내 말에도 사실은 무리가 있었다. 무조건 인스턴트 식품이다, 비만의 주범이다 해서 자꾸만 안 먹게 되면 아이들은 평생 치킨 한번, 피자 한번 먹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된다. 또한 어쩌다 한번쯤은 먹어 줄수도 있는 것이고, 사실 알고보면 누구나 어느때나 다 먹는 음식인데 내가 좀 유난을 떠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안한건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내 입장도 확고하다. 이미 아이들은 가정에서가 아닌 밖에서 언제든지 그런 음식을 먹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가정에서까지 사 줄 필요가 없을거라는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요구는 집요했다. 옆에서 듣던 남편도 "정말 오랜만인데 한번 좀 사줘 봐"라며 아이들의 요구에 불을 질렀다.

치킨이냐 피자냐..양보 타협의 기법_1
치킨이냐 피자냐..양보 타협의 기법_1

잠시 고민... 그러다 결국 나도 이번만큼은 아이들의 요구를 한번쯤 들어주기로 하고 하나 시키라고 일렀다.
그런데, 이 두 아이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한녀석은 피자를 먹자고 하고, 한녀석은 치킨을 먹자고 한다.
이럴 경우 치킨 한 마리와 피자 작은거 하나를 각각 시키면 될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집은 그게 안된다. 이유는 남편은 피자를 싫어하는 토종 한국인이고 치킨마저도 아랫배 나온다며 기름기 있는 음식이라서 안먹는다.

나 역시 어떤 기름에 얼마나 오랫동안 튀겨냈는지 모를 배달 치킨과, 살찔 우려 때문에 피자를 먹지 않는다. 좀 독특한 집안이지만.
그래서 치킨과 피자를 각각 시키면 음식이 남게 되기 때문에 어느것 하나만 배달을 시켜야 하는데 둘은 계속 싸운다. 피자 먹자, 치킨 먹자 하면서.
"너희들, 자꾸 그러면 오늘 그거 없다" 나의 '협박'을 듣자 그제서야 큰 아이가 양보를 했다. 작은 녀석 주장대로 치킨을 먹자고.

둘의 다툼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참 대화할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보와 타협을 바탕으로 한 대화. 어느 한녀석이든 먼저 양보하면서 "그럼, 이번에는 네 요구대로 해줄게. 다음에는 내가 먹고 싶은거 먹는거야. 알았지?"하면 되는것 아닐까.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 단지에선 한때 이런 일이 있었다.

부녀회를 통해 아파트 정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분수대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것이 주민협의회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된 것이었다. 
장기수선충당 이익잉여금인지 무엇인지 그런게 남아 있기에 그걸로 건설 자금은 충분히 마련된 상태이니, 보기에도 좋고 여름에도 시원한 오색 분수대 하나쯤 단지 안에 만들자는 것이 몇몇 주민들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 안건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주민들 사이에서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즉 분수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컸기 때문이었다.
반대하는 쪽의 의견은 간단했다. 그렇지 않아도 주차공간이 부족해 겹주차에다가 단지 외곽 주차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분수대가 말이 되는 소리이냐, 그럴 공간이 있다면 차 한 대라도 더 세워놓자, 그거였다.

그러나 찬성 의견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아서, 분수대는 단순히 보기 좋으라고 만드는 게 아니라,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 정서에도 좋다, 분수대 공간이라는 게 기껏 해야 차 세 대 정도 주차할 크기인데, 별 다른 영향도 없다, 등등이었다.

찬반 논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엘리베이터 옆 게시판에 각각의 의견을 적은 A4지를 붙여놓았고, 서명을 받겠다는 둥, 다수결로 하자는 둥, 한 치의 양보 없이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같았다. 
그 일은 여러모로 우리 사회의 어떤 사안들과도 닮은 점이 있었다. 
우리가 늘 고민하는 어떤 쪽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 어느 의견이 더 긴급한 것인가 하는 그런 부분이었다.  그러니 각자의 이익에 따리 움직이며 거기에 풍향계를 맞춰 각자의 입장이 바뀌는 것이다.

영업용 차량을 모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주차 문제는 당장의 생존권에 해당되는 위치까지 오를 수 있는 일이었고, 분수대를 설치하자는 사람들은 먹고사는 일 못지않게 삶의 질 문제 또한 중요하다고 보는 쪽이었다.

나는 그 일이 결론이 나기 전에 이사를 해서 분수대가 세워졌는지 그 반대가 되었는지 알 순 없으나, 내심 나는 분수대가 세워지지 않기를 바랬다. 처음엔 그것이 삶의 질 문제보다 먹고 사는게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먹고 사는 문제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생활 수준이 지금보다 나아질게 뻔하고, 분수대는 그때 못 하면 영영 불가능할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 생각일 뿐이고, 그때 이 싸움을 지켜보는 몇달동안 든 생각은 우리가 대화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양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나 인색하다는 점이었다.
분수대 문제는 양쪽 다 일리는 있었으나 나는 이 일을 논의하는 그 과정에서 단 한차례도 상대방 의견에 귀 기울여 주고, 상대방 의견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식 회의가 끝난 뒤에 따로 만나서 이야기 할때조차도 예를 들어서 "그래. 그쪽 의견도 맞는 부분은 있는거 같아"라며 자기네편(?) 끼리 조차도 그런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굳이 대화의 기법 이런 식으로 어렵게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 의견을 듣고 절충점을 찾자는 것인데 우리는 그런 양보와 타협에 대해 너무나 부족하다. 

어릴때 치킨과 피자를 가지고 다투는 아이들때부터 양보하고 타협할줄 아는 방법을 가르쳐 줄 필요가 여기에 있는듯 하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