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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먼 농부의 길(?)
2012-10-01 23:26:16최종 업데이트 : 2012-10-01 23:26:16 작성자 : 시민기자   홍명호

추석 연휴 기간 동안이었던 오늘 낮에 짬을 내어 주말농장에 심은 고구마를 다 캤다. 그러나 농부의 길(?)은 멀고도 험난해서 이번 고구마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당장은 지난 봄에 너무 가뭄이 심해서 고구마의 씨알이 제대로 자라나지 못했고, 그후 비는 내렸지만 이번에는 거의 3주내내 비만 퍼부어서 햇빛을 보지 못한 고구마가 더 크게 자릴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비가 안올때는 물이라도 제대로 줄수 있는 시설을 갖추던지, 아니면 물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 농사를 짓던지 해야하는것 아닌가 생각되었다. 역시 농부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고, 농사 역시 아무나 짓는다고 다 되는게 아니라는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지난 봄 고구마 싹을 구해다가 심을때만 해도 정말 자신이 있었건만 실패를 하고 말았으니 속이 상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다소 위안이 되는 거라면 우리의 파종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지난 봄의 무한 길었던 가뭄, 그리고 기나긴 늦장마에 피해를 입은 것이라는 사실뿐. 초기에 고구마 싹이 무럭무럭 자랄때만 해도 "이젠 됐구나" 싶었는데 가뭄이 계속되는 동안 어떻게든 물을 뿌려줘야 하지 않을까 마음은 먹었는제 결국에는 회사일도 바쁜 탓에 짬을 내지 못해 밭이 바짝 말라버린 것이 치명타가 된 것이다. 

그래도 며칠 더 두면 씨알이 굵어질까 싶어 날짜를 미루고 미루다가 이번에 연휴동안 짬을 내어 오늘 낮에 고구마 줄기를 걷어 올리고 캐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 모두 부푼 희망을 안고 주말 농장에 가서 고구마 줄기를 걷어 올릴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한뿌리 두 뿌리 흙속을 파헤쳐 내 보는 순간 아내는 한숨부터 내쉬며 고개를 내젓는 게 아닌가. 아내뿐만 아니라 아이들마저 "아빠, 이건 고구마가 아니라 도라지 아니에요? 도라지..."라며 아빠를 놀리는 듯한 말까지 했다.
속이 상한것은 당연했다. 누가 도라지를 기르고 싶어서 그랬냐 임마들아?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 왔으나 참았다. 수확물이 그 모양인데 내가 무슨 면목이 있단 말인가. 날씨 탓만 하기에는 수확량이 너무나 형편없어서 오히려 주인의 바램에 의해 땅에 심겨진 고구마들에게 더 미안할 정도였다.

멀고도 먼 농부의 길(?)_1
멀고도 먼 농부의 길(?)_1

수확량도 적어서 일할맛도 안난다는 아이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헤집다 보니 웬 울퉁불퉁한 땅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위로는 삐죽이 솟은 고구마가 한개 보였다.
'이놈은 얼굴을 왜 내밀고 있는거야?'라면서 호미로 땅을 파보니, 아, 그래도 큰 놈이 있었다. 그 기나긴 가뭄을 이겨내고, 그 긴 늦장마를 이겨내고 제법 씨알이 굵은 놈이 한포기 있었다. 그 안에는 어린아이 팔뚝만큼 적당히 굵게 생겨서 예쁘장하게 생긴 붉은 고구마 4개가 나란히 박혀 있는게 아닌가.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잘 생긴 한놈이 땅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 이리 와봐, 얘들아 이것좀 보아라!"
나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질렀다. 아이들과 아내가 얼른 다가와 보더니 "와~아!" 하면서 탄성을 질렀다. 고구마 농사 제대로 지은 사람이 들으면 별거 아닌 일이지만 우리에게 그런 고구마 4개는 실로 기적같은 수확물이엇고 자연의 참으로 큰 선물이었다.

고구마 캐고 기쁨을 다같이 나누다 보니 이런 기쁨이라도 만들어준 고구마에게 감사하고, 다행이다 싶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그 농사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낀 일이 민망할 따름이었다.
밭의 주변 둑에 절반 이상을 차지한 억새는 껑충 키가 자라 이미 가을녘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 옆의 코스모스도 빨간색, 분홍색, 흰색 예쁘게 꽃을 피워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게 해주고 있었다.

우리 가족의 주말농장 나들이를 반긴 주변의 친구들 모두 알고보면 모두 다 지난 봄의 가뭄과 늦장마를 이겨낸 우리의 소중한 풍경들이었다. 
"내년부터는 가뭄이 심할때는 어떻게든 물을 좀 뿌려주자. 승용차에 큰 물통에 물을 실어다가 주던지. 그래야 이녀석들도 좀 크지. 그래야 우리가 가을에 수확하는 것도 신이 나고 말야. 안그래 여보?"
아내더러 의견을 구하자 아내 역시 그러자고 동의했다.
우리와 고구마 농사를 같이 짓고 있는 주말농장 옆 칸의 다른 분들 역시 고구마를 캐러 와 보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역시 노력 없이는 아무런 댓가를 얻을수 없고, 또한 농사는 하늘의 도움과 농부의 피땀어린 노력의 결과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깨달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그동안 사 먹은 쌀, 콩, 기름, 상추, 고추... 이 모든 농산물은 그냥 만들어진게 아니었다. 하나같이 농민들의 정성과 농작물을 애지중지 기른 그 수고로움 덕분이었다.

소중한걸 깨닫게 한 하루였다. 농민 여러분, 모두 다 올 가을 수확기 알찬 가을걷이 되시길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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