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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생존해 계신 네가 부럽다
명절날 다시 떠올려 보는 효도
2012-10-02 00:38:31최종 업데이트 : 2012-10-02 00:38:31 작성자 : 시민기자   김기봉

부모님 생존해 계신 네가 부럽다_1
부모님 생존해 계신 네가 부럽다_1

추석날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가족과 함께 역시 성묘를 마친 뒤 산에서 내려오고 있던 어릴적 고향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고개를 떨군채 얼굴이 약간 상기돼 있었다.

이유를 알수 있었다. 친구 아버님이 금년 여름에 작고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자식된 도리도 그렇고, 그렇게 처음 맞는 명절이니 아버지 생각이 더 사무치도록 절실했을 것이다.
눈을 보니 눈물을 흘린듯 보였다. 내가 다가가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친구는 날더러 부럽다고도 했다. 나의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게 너무나 부럽다는 친구.
그런 소리 말라며 친구를 위로했다. "지금쯤은 아주 평온하게 어느 먼나라에서 너희 가족을 지켜보고 계실거다"며.

시간은 정해져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데 아마도 어버이에 대한 자식들의 애틋하고도 사무치는 그리움이나 사랑은 이루 말로 다 할수 없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어버이가 생각나는 것은 자식들의 마음 속에는 항상 그 어버이가 자리잡고 계시기 때문인가 보다. 
친구는 언젠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바람처럼 사라지신 아버지의 편안한 영면의 모습은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아버지와의 부정을 떼어 내야하는 그것이었기에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고.

친구 아버님은 생전에 따뜻한 성품으로 타고 나시어 남에게 험한 말도 하지 않으셨고 자신은 작게 가지고 남을 많이 베풀어주셨던 분이다.
그래서 우리 고향 마을에서도 항상 인정 많고 인자하신 분으로 마을 어르신들의 신망도 두터우셨던 분이다. 성실과 진실을, 온정과 베풂을 자식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분이기에 그 아들인 친구의 슬픔 역시 누구보다도 클거라는것을 나는 잘 안다. 

특히 이 친구는 고향에서도 소문난 효자였기에 오히려 친구의 아버님이 작고하셨을때 고향의 모든 어르신들은 "잘 죽었어, 행복하게 살다가 죽었응께 잘 죽은거지. 후회 없이 살었어. 자석덜이(자식들이) 월매나 더 잘혀. 그런 효자들 없어"라며 모두 다 그분의 영면을 오히려 축하드릴 정도였다. 

이렇듯 우리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부모를 섬기고 효도가 뭔지, 어떻게 해야 제대로 효도하는건지 안다. 
하지만 시절이 바뀌어 요즘 일부 젊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무작정 예뻐만 하다 보니 아이들이 너무나 그런 부분에 대해 모르며 자라는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긴다. 
아이를 한둘만 낳아 키운다는 핑계로 '우리 아이만은 왕자와 공주로 키운다'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내 아이만은 달라요"라는 광고문구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명절날 아침에 조상님께 성묘를 하고, 얼마 전에 어버이를 여읜후 첫 성묘를 하는 친구를 보면서 효와 부모 자식 관계를 한번 생각을 해 보았다. 

어리석은 질문 하나 : 왜 어린이날이 어버이날보다 사흘 앞서 있을까? 
여기 기가막힌 답변 : 제 자식 예쁜 줄은 알면서도 저 자신을 예뻐한 부모사랑을 깨닫는 데 사흘은 걸리므로...
요즘 세월에 효라는 개념은 이미 화석이 된 듯하다. 반면에 자식사랑은 어느 때보다 넘쳐난다.
자식사랑은 자연의 섭리다. 새끼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건 동물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효도는? 중요한 윤리 덕목임은 분명하되 섭리는 아닐지 모른다. 결국 부모 자식간엔 어차피 부모의 내리사랑만이 본질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 자식 사랑스럽듯 부모 또한 나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라야 자식들은 "살아 계셨더라면"하고 목이 콱 메는 후회의 순간들을 맞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일이든 힘든 일이든 함께 못해 허전하다고 한다.
친구는 내게 부모님 생각이 더욱 간절한데 찬 땅속 무덤에 휑하니 누워 계신 아버지 생각에 참으로 마음이 아린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명절날 성묘를 하다 보면 자식이 많아도 정성이 닿지 않아서인지 묘소에 이상한 잡풀이 나 있는 곳도 자주 본다. 물론 추석 전에 벌초도 안한 곳이다. 남의 묘에 함부로 손 대면 안 된다고 해서 옆에서 어찌 하지도 못하건만 그런 묘를 볼때마다 '나는 나중에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해 본다.

언젠가 직장 동료가 어머니를 꼭 닮은 이모님을 뵈었을때 휴대전화 카메라로 찰칵 찍은적 있다고 말한적 있다. 그 직원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과거형의 사진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것이 아쉬워 살아 계신 이모의 모습에서 현재형의 어머니를 뵙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했다.

우리 자식들의 어버이 생각은 늘 이렇다. 애틋하고, 다정다감하고, 그립고, 고맙고, 존경하며 감사하고, 잊지 못한다. 효가 살아 있는 사회, 진정한 우리의 모습 아닐까.
명절에 효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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