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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에서 오랜만에 들은 경운기 소리
2012-10-04 04:17:52최종 업데이트 : 2012-10-04 04:17:52 작성자 : 시민기자   임윤빈

딸딸딸딸딸~
도시 사람들이 처음 듣는 경운기 소리는 요란하게 느끼겠지만, 우리 농촌에서 경운기 소리는 아침나절 농삿일의 시작이요, 저녁나절 농사의 끝이고 열심히 일하려는 농민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다.

오래전부터 농촌 농기계의 선두주자로 농촌에 보급되기 시작해 지금 트랙터나 관리기, 콤바인, 이앙기 등 비싸고 첨단화된 농기계가 농촌에 퍼졌어도 역시 경운기는 우리 농촌의 산 증인이고 그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더욱 정겹고 고맙다.

 

친정에서 오랜만에 들은 경운기 소리_1
친정에서 오랜만에 들은 경운기 소리_1

 추석명절 다음날 친정에 갔더니만, 딱히 가을농사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오늘도 열심히 엔진소리 울리며 사용한지 10년도 넘은 경운기 한 대가 마을 한가운데를 부지런히 지나간다. '뒷마을 이장님네가 오늘 고구마를 캐려나?' 궁금해 목을 빼고 내다 보니 가을 푸르른 하늘아래 널찍한 고구마 밭에 경운기가 섰는데 정작 사람은 어데갔는지 뵈지도 않는다. 

하, 그러고 보니 오늘 일거리가 있어서 경운기를 몰고 나온게 아니라, 집에 있기 심심하고 근질거린 이장님네가 그저 경운기 엔진 시동 한번 걸어보려고 마을로 나온것 같다. 천상 농삿꾼이자 경운기 주인 자격이 있는 이장님네가 맞다. 
한나절 경운기는 그렇게 딸딸거리다가 저녁에나 집으로 돌아갔으려나.

농사꾼한테 경운기는 아직까지는 요지부동 필수품이다. 관리기 부착하여 논밭 가는데 쓰고, 고랑 치는데도 쓰고 짐 운반용으로 쓰기도 딱이고. 논두렁 밭두렁 길 험한 곳이라도 어지간하면 갈 수 있고.
하지만 초보 농삿꾼이 경운기 우습게 봤다가는 큰코 다치는 기계다. 남편도 결혼후 얼마 안돼 친정에 갔을때 과거에 농삿일좀 해 봤다며 경운기에 엔진 시동을 켜고 나섰다가 큰일을 겪을뻔 했다. 

운전조작 미숙으로 경운기가 도랑에 처박혔는데 남편은 얼른 경운기를 버리고 옆으로 도망을 쳐서 살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경운기에 깔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때 남편은 아버지를 도와 논에 나락 푸대 실러 경운기 몰고 나갔는데 오르막 논둑을 못 치고 올라가 애를 먹다가 핸들이 그만 길 옆 도랑으로 홱 돌아가고 만 것이다. 

한겨울에 눈이 녹아 나중에 그게 슬쩍얼어서 미끄러울때 였는데 그때 이후로 남편은 경운기 근처에도 안간다. 
초짜에게는 그닥 호락호락하게 제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 자존심(?) 센 놈이다. 우리 경운기란 녀석은....
아버님은 이제 연세가 있으셔서 경운기는 끌지 않지만 지금도 고향 마을에서는 여전히 봄 가뭄에 물도 퍼 대고, 밭도 갈고, 소독도 하는 아주 유용한 기계다. 

그뿐 아니다. 집에서 먹이는 소들이 싸 놓은 그것. 매일 소똥을 쳐내야 하는 일도 이 경운기가 제격이다. 알맞은 크기에 힘도 세지, 웬만한데 힘좋게 쑥쑥 올라가고 질퍽이는 땅도 헤쳐 나가고, 웬만해서는 고장도 안나는 이 기계. 한마디로 건강한 청년이다.

그런데, 이 친구를 너무 믿는 농민들이 가끔씩 관리를 제대로 안하면 삐칠줄도 아는 녀석이다. 
논 갈때와 밭 갈때 열심히 잘 부려먹고는 이걸 집에 끌고가 눈비 안맞게 뭘로 덮어놓던가, 아니면 헛간에 들여놔야 하는데 그게 귀찮다고 그냥 들판에 세워둔체 자기 몸만 집으로 쏙 들어가면 경운기도 성질(?) 확 뻗쳐서 확 고장나버린다. 

뻘겋게 녹슬은 경운기, 그만큼 수명이 짧아진다. 들판에서 눈비에 이슬 맞게 한 뒤 딸딸거리고 결국에는 뭐가 고장나도 고장나 있다는걸 깨닫지만 이미 늦은 일. 적잖은 수리비가 나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비싸게 주고 산 경운기, 도시 사람들이 고급 승용차 애지중지 관리하듯 우리 농촌의 경운기도 농민들로부터 똑같은 사랑 받고싶어 하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자. 과수원 농약 치는 기계는 6월부터 9월까지만 쓰고, 논농사에 많이 쓰는 이앙기도 모내기철 딱 한번 쓴다. 나락베는 콤바인은 가을철 한번이다.
하지만 경운기를 보자. 1년 내내 쓰이는 기계이니 농민들에게는 절친이자 애인 같은 존재다. 거기다가 읍내 장이 서는 날에는 온 동네 농간물 산더미처럼 싣고 나가 비싼 값에 팔도록 도와주지 않나.

버스에 고추자루, 참깨 자루 실어보자. 운전기사가 요금 더 내라고 핀잔, 뭐 그걸 더 받냐고 하면 아예 싣지 말라고 횡포 부리지 않나. 하지만 동네 경운기 한두대면 그런 아니꼬운 소리 듣지 않고 싣고 나갈수 있다. 참 요모조모 예쁘기만한 경운기다.

딸딸딸딸~~
오늘도 새벽부터 마을 한가운데를 힘차게 지나가는 관록의 경운기 소리. 우리 농촌에 또 하루의 일과를 깨우는 삶터의 시작이고, 저녁 나절 모든 농민들에게 가정으로 돌아가 평온하게 하루 농삿일의 피로를 풀며 쉬라고 알려주는 알람 소리이다.
그래서 나는 친정에 가면 경운기 소리를 듣는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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