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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욕심..잊지못할 추억
2012-09-27 11:12:21최종 업데이트 : 2012-09-27 11:12:21 작성자 : 시민기자   김성희

"죽 쒔다"라는 말을 곧잘 쓴다. 뭔가 잘 안풀린 정도가 아니라 완전 망쳤다는 뜻이다. 혼잣말로도 쓰이고, 누가 물었을때 대답으로도 곧잘 쓰인다.

아이 중간고사가 끝났다. 정확한 점수는 나와봐야 알겠지만 제녀석이 시험 본고 재녀석이 모를리 없다.
"시험 잘봤냐"그런데 "죽 쒀서 개줬다"아이들이 방학 숙제를 한다며 분주하다. 가방을  뭐, 그다지 큰 기대는 안하는거지만 그래도 궁금한게 엄마의 심정이니 한번 물었다.
"음... 죽 쒔어요" 예상된 멘트. 그러나 "별로"라던가 "잘 못봤어요"정도의 대답이 나올줄 알았건만, 줄 까지?
그리고 아이거 덧붙이는 말.
"엄마, 나는 공부 체질이 아닌가봐"

이젠 아예 멀리 나갔다. 아주 멀리. 
공부가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공부가 기본인 학생이기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어미이기에 아이의 그런 대답에 기분이 좋을리 없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 이 녀석 가방에서 꼬깃꼬깃 우겨 넣은 75점짜리 수학 문제지가 발견됐던 일이 떠올랐다. 녀석을 불러 "이게 뭐냐?"고 묻자 "엄마, 그거 아침고사인데 그 전주에는 65점 받았거덩. 근데 10점 오른거라니까"라며 정색을 했다. 참내, 겨우 65점에서 75저으로 10점 오른걸 가지고 생색이라니.

순간 막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도둑놈 제발저린다고 했던가? 녀석을 혼내려고 물은게 아니었는데 이녀석 75점짜리 시험지를 발각당한게 당황스러웠는지 장황하게 변명을 한것이다. 그것도 전에는 65점에서 늘어난거라며....그때는 웃음이라도 나왔지만 이번엔 웃음의 차원이 아니다. 죽 쒔다는데야 뭐라 말하나.

성적 욕심..잊지못할 추억_1
성적 욕심..잊지못할 추억_1

아이와 이야기를 끝낸뒤 내 생각을 해봤다. 
나는 그 시절에 공부를 잘했던가? 잘 하지는 못했어도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는 했는데. 그런 욕심 덕분에 그나마 요만큼 사는거라 생각하는데.
그런 우리아이는 욕심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욕심이라는 부분에서 멈칫했다. 그 욕심이라게 부른 과욕위 부작용이랄까.

오래전 초등학교때(당시 국민학교) 일이다. 그때 산골짝에서 학교를 다니던 우리에게 선생님은 늘 칠판에 산수(현재의 수학) 문제를 꼭 20개씩 써 놓으셨다. 아침에 등교하는 대로 그걸 풀어서 교탁에 올려놓는게 우리의 할일이었고, 꼴찌 스무명은 무조건 남아서 청소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그야말로 깡촌에 살아 다른 친구들처럼 학교에 일찍 갈수가 없었다.  어른 걸음으로 학교에서 무려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으니. 그때 유일한 꿈이 학교에 1등으로 등교 한번 해보는거였을 정도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먼저 등교하기 위해 아침도 안먹고 먼 길을 땀 뻘뻘 흘리며 헬레벌떡 뛰어갔다. 그러나 내가 서둘러 가면 갈수록 늘 나보다 먼저 학교에 오는 3총사가 있었다. 반장과 공 잘 차는 경수, 그리고 공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준호. 이 3명은 학교 바로 뒤에 살았다. 항상 걔네 3명이 산수 일일고사 1,2,3등을 차지했다. 먼저 등교하는데다가 공부 잘하는 준호와 함께 서로간에 상의해가면서 문제를 푸니 그럴 수밖에...

물론 나도 시험문제를 잘 못풀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다만 아침 일일고사 1등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자꾸만 커져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날, 나의 억울함을 달랠 묘책을 떠올렸다.
3총사는 시험을 끝내 놓은후 반드시 공을 차러 밖으로 나갔다. 교실엔 4번째 등교한 나밖에 없었다.
'3총사가 제출한 답안지의 정답을 하나씩만 지우개로 지우고 고쳐놓자'... 거의 두달 이상 잔머리를 굴리며 떠올린 특급 아이디어였다. 

어느날 정말 나는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3총사의 답안지를 고쳐놓는 방법이 효험을 발휘해 내가 기어이 1등을 하고야 만 것이다. 점
"응, 오늘은 성희가 1등이네. 3총사는 하나씩 틀렸구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이녀석들. 하하하"
선생님의 채점 결과 발표를 들으며 나의 가슴은 쾅쾅 뛰었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 반, 1등의 환희 반, 그리고 결정적으로 선생님의 관심권에 들었다는 사실이 뒤섞여 나의 가슴은 더더욱 쿵쾅거렸다.

그날 이후 담임 선생님이 내게 보내신 눈길은 따스함과 그윽함 그 자체였다. 그 눈길을 받기 위해 얼마나 모진 세월을 참고 기다려왔나?
나는 이루 형언할수 없는 짜릿함을 맛보았다.
그러나... 도둑질도 해 본 사람이 한다고 했던가. 그 후 한번 더 그렇게 1등을 한 뒤로는 더 이상 할수 없었다. 나의 나쁜짓에 졸지에 2,3,4등으로 밀려난 3총사의 표정을 보노라니 참으로 미안했고, 그보다 나의 양심이 허락을 못했다.

'공문서 위조'두번만에 나는 내 욕심이 나쁜짓을 부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금 이 나이 때까지 아직 그 친구들한테는 비밀로 하고있다. 너무 부끄러워 차마 말을 꺼낼수가 없다.
지금 계획으로는 친구들 환갑때쯤에나 말을 해줄까 한다. 그렇게라도 녀석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나도 맘이 좀 편할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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