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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친구께서 보내신 옥수수 한포대
나누는 미학 플러스 쌓이는 우정
2012-09-25 12:40:34최종 업데이트 : 2012-09-25 12:40:34 작성자 : 시민기자   최희연

택배로 포대자루가 하나 왔다. 택배 아저씨가 땀을 흘리시며 가지고 오신 흰 포대 자루 겉에는 택배용지가 붙어 있었다. 포대자루 무게가 무거워서 남자 한명이 들기도 버거웠다. 
그만큼 무거운 포대를 들고오신 택배아저씨께 망고주스 한잔을 드렸다. 택배 아저씨가 가신후에 택배포대를 살펴 봤다. 

충북에서 온 것이었는데, 택배 포대 자루를 열어 보니 껍질에 가득 쌓인 옥수수들이 한포 대 있었다. 포대 자루 형식으로 온 택배도 처음봐서 신기했다. 껍질이 여러겹 쌓이고, 옥수수 수염이 뒤엉켜 있던 옥수수들을 보낸 사람은 할머니의 고향 친구분이셨다. 

총 30개로 이미 조금은 철이 지난 옥수수라서 빨리 껍질을 벗겨서 찐 다음에 냉장고에 넣지 않으면 맛이 변할 수 있는 우려 때문에 서둘러 옥수수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양파처럼 벗겨도 끝이 없는 껍질을 벗기다 보면 흰 속살을 내 보이는 옥수수가 보인다.
그런데 너무 많은 여러겹의 껍질로 쌓여 있어서 속살이 드러날때까지 벗기는것이 인내심을 요구했다. 수염까지 모조리 다 뽑은 다음에 알맹이만 남은 옥수수를 모아 놓으니 색이 그렇게 예쁠수가 없었다. 

할머니 친구께서 보내신 옥수수 한포대_1
할머니 친구께서 보내신 옥수수 한포대_1

갓난 아기의 토실한 엉덩이 마냥 색이 이뻤다. 택배를 받았으니 고마움의 표시로 전화를 바로 하시는 할머니가 처음 꺼내신 말씀은 뭘 이런걸 번거롭게 보냈냐는 것이었다. 할머니 고향 친구분께서 얼마나 큰 소리로 또렷또렷하게 말씀하시는지 휴대폰 밖에서도 친구분 목소리가 잘 들렸다. 

할머니들간의 휴대전화 대화 특징중에 하나가 큰 소리를 질러가며 통화를 하는데 할머니와 할머니 친구분의 모습이 그러했다. 
옥수수가 여름철 제철 곡물이기 때문에 더 일찍 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더 일찍 보냈다면 더 맛있는 옥수수를 맛 볼수 있었을텐데 지금은 맛이 좀 덜 할테니 삶을때 '뉴슈가'(감미료)나 소금을 조금 더 첨가하라는 당부까지 해 주셨다. 

늦게 보내던 일찍 보내던 보내 주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각자 먹고 살기 바쁜 요즘 시대에서 이웃이나 친구를 돌보기란 힘든 일이다. 
이웃과 음식을 나눠가며 먹는 풍습도 사라진지 오래이고 보기 드문 시대 속에서 제철음식이 장거리로 오고 가는건 쉽지 않다. 돈을 주고 사고 파는 행위의 목적으로 택배가 오는건 자주 보지만, 돈 한푼 바라는것 없이 그저 공짜로 제철음식을 먹어보라고 멀리서 보내 주는 사람들은 보기 드물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끔씩 안부전화를 하는것 조차도 감사하게 여길정도인데 이렇게 맛있는 옥수수를 포대자루로 보내 주는 친구가 있다는것은 행복한 것이다. 
만약에 나도 내가 농작물을 짓는데 그것을 멀리 사는 소중한 친구에게 보내는 일이 마냥 뿌듯할 것같지만 실천은 힘들것 같은데 할머니 친구분께서는 아마 매년 이렇게 보내시는 것 같았다. 

이런 사소한 것에서 할머니의 원만한 대인관계를 느꼈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는 가운데 이런 좋은 광경들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조금이라도 나누는 미덕과 정이 아직은 있기 때문에 세상은 따뜻한 것 같다. 뽀얀 옥수수 형제들을 삶아서 먹는데 제철이 지난 옥수수 치고 꽤 맛있었다. 

아마 여름철에 먹었으면 맛이 굉장히 좋았을것같다. 그나마 철 지난 옥수수가 맛있었던 이유에는 할머니 친구분의 따뜻한 마음씨라는 조미료가 한몫 한 듯 하다. 푹 쪄낸 옥수수를 봉지에 대여섯개씩 담아서 냉동고실에 집어 넣어 놨다. 가을이나 겨울같이 추운 날에도 옥수수가 생각날때는 꺼내서 펄펄 끓는 뜨거운 물에 삶아서 먹으면 맛있을것이다. 

옥수수 30개면 가격이 상당할텐데 공짜로 맛있는 옥수수를 먹게 해주신 할머니 친구분께 감사 드린다. 할머니는 그저 얻어 먹을수는 없다고 추석 선물로 좋은 특배 한 상자를 보내 드릴 채비를 하고 계신다. 늙어서도 서로 우정을 쌓고 계시는 두 분의 모습이 마냥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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