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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떠나고 난 명절직후의 고향 부모님
2012-09-25 12:56:09최종 업데이트 : 2012-09-25 12:56:09 작성자 : 시민기자   박나영

결혼 직후 첫 번째 맞이한 추석때 일이다. 
추석 당일 저녁에 시댁에서 모든 일을 마치고 친정으로 갔더니 모두 와서 고향집이 오랜만에 시끌벅쩍했다.
즐겁게 웃음꽃을 피우며 함께 저녁 술상을 봐놓고 즐거운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친정 부모님과 가족들 모두 건강한게 가장 큰 복이고 자랑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엄마는 분주하고 바빠지기 시작했다. 다시금 삶의 터전으로 떠나는 자식들에게 떡이며, 김치며, 고추장에 참기름 등 이것저것 듬뿍 싸 주시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분주하게 나서신 것이다.
대청 마루에 가 보니 전날 거두어 들여 골목에 세워놨던 콩대를 추석 당일날 오후에 다같이 힘을 모아 타작했던 모양이다. 
콩을 1차 갈무리해서 리어카에 실어와 마당에 부려놓았던 것을 엄마가 주섬주섬 푸성귀 담은 봉지랑, 양념 봉지랑, 남은 명절 음식이랑 나누어 싸주시는 손놀림에 자식 사랑하시는 정이 가득 담겨져 있다. 엄마를 돕기 위해 나도 팔을 걷고 나섰다. 

오전 11시쯤,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들른 친정집이니 그날 밤에 떠나기로 하고 아직 친정 집에 남아 있었지만 각지 먼 거리로 떠나는 다른 형제들은 모두 다 채비를 하고 일어섰다.
"늦으믄 힘들어야. 인자 갈 사람은 얼렁얼렁 챙기 가거라. 질 맥힌다." 

마음은 같이 데리고 살고 싶겠지만, 그게 안된다는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고향의 부모님들이 다 똑같을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고생할 아들딸들 걱정을 하면서 빨리 떠나라고 채근하시는 엄마. 
그렇게 연휴를 맞아 집에 왔던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나니 들썩거리던 집이 갑자기 텅 빈 것 같았다. 

곳간 가득 쟁여 놨던 곡식 보퉁이도 탈탈 털었고, 집앞 텃밭에 탐스럽게 키우던 푸성귀들도 김장거리만 놔두고 다 솎아버렸으니 포기 사이가 헐렁하고, 시골 마을 골목마다 턱 버티고 앉아 있던 승용차들도 죄다 사라져버린 마을은 다시 도둑고양이가 야옹거리며 담장을 넘나든다. 

다 떠나고 난 명절직후의 고향 부모님_1
다 떠나고 난 명절직후의 고향 부모님_1

저녁상까지 차려 드리고 나서던 이른 저녁 7시. 남편과 아이들 모두 승용차에 올랐다. 바깥마당에까지 나와 서 계신 엄마와 아버지... "몸덜 건강혀라. 너무 무리하지 말구 덜" 하시며 딸과 사위, 외손주들을 보내시던 두분.
결혼후 첫해, 그때의 추석은 그랬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명절날 친정 집에 찾아가 실컷 웃고 떠들고 기뻤는데 추석 직후 다시 수원으로 돌아와 시골 집 부모님은 그냥 잊고 만것이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늘 그랬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왁짜하게 신났던 단 3일 이후, 그렇게 떠나가 버린 자식들의 여운이 아직도 시골집 방 안에 남아있기에 부모님들의 가슴은 더욱 휑 하기만 했던 것인데... 

가슴이 뻥 뚫리고 허전한 느낌에 고향의 부모님들은 한동안 가슴앓이를 하고 허전하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런 사실은 그 다음해 설날 친정에 가서야 알았다. 엄마가 나의 손을 잡으며 "보름날 올래? 나물이라도 끓여 먹게" 하시길래 깜짝 놀랬다. 엄마가 말한 보름이라면 설 지나 겨우 2주일만의 일이다. 정월대보름이니까.

엄마가 말 꺼내기 어려운 며느리들한테는 말을 못하고, 딸인 날더러 그렇게 말한 이유는 자식들이 떠나간 뒤에 찾아오는 허전함 때문이었다.
그후 나는 명절에 집에 갔다 돌아오면 하루에 한번씩 꼭꼭 전화를 걸었고 그렇게 약 2주일 넘게 당신의 외로움을 달래드렸다.
그리고 오빠와 남동생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고 그후 명절 이후에는 형제들이 번갈아서 2-3주 간격으로 시골에 내려갔다 오는게 규칙처럼 만들어 지키고 있다.

'오-매 단풍 들겄네 / 장광에 붉은 감잎 날아와 /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 보며 / 오-매 단풍 들겄네 / 추석이 내일 모레 기둘리니 / 바람이 잦아서 걱정이리 /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 오-매 단풍 들겄네.'
시인 김영랑은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라는 시에서 한가위 명절을 맞이하는 고향마을의 설렘을 이렇게 노래했다.

명절에 이르러, 여기저기 도시로 나가 출세를 한 사람이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거나, 돈이야 많건 적건 간에 그리운 고향을 찾는 마음은 똑같이 기쁨과 설렘이 충만할 것이다. 고향의 부모를 찾아뵙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한가위 명절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도 한가위의 귀성행렬이 민족대이동을 실감나게 할 것이다. 

고향에 노부모님이 계신 모든 도시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고향은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한 보금자리이자 추억이고 그리움의 터전이다. 그런 기분을 고향에서 실컷 만끽한 뒤 다시 올라와 생업에 쫓기다 보니 고향에서의 짧은 연휴동안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그 안에는 자식들을 죄다 떠나보낸 부모님의 허전함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그저 부모님들이 속으로 삭히고 자식 잘되기만 바라는 마음에 내색을 안하셨을뿐인데 그런거 전혀 모르는 우리 자식들.
 명절날 찾아 뵈었으니 그걸로 효도 끝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착각들.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제 올해부터라도 명절 직후 부모님들의 허전함을 달래드리는 일도 잊지 말고 챙기자. 추석 직후 전화 자주 드리고, "명절날 갔다 왔으니 다음에 가지 뭐"라고 생각할게 아니라 명절후 1주일만에라도 혹은 2-3주만에라도 짬 나면 다시 고향의 부모님께 찾아 뵙자. 이번 추석때부터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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