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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덕분에 대박 친 웰빙 야채 비빔밥
2012-09-25 14:44:46최종 업데이트 : 2012-09-25 14:44:46 작성자 : 시민기자   김윤남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
거의 30여년전쯤이었던 80년대 초반에 발표된 가수 김창완씨의 '어머니와 고등어'라는 이 노래를 듣다보면, 그 옛날에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아버지는 네모 반듯한 얼음을 새끼줄로 묶어서 한손에 들고 또 다른 한손엔 내머리통 보다 더 큰 수박을 들고 오셨다.
얼음에다 대고 못이나 바늘을 꽂아 살살 두드리면 얼음이 잘게 부스러진다.
수박과 설탕을 얼음 조각에 가득 재워 한 그릇 가득 담아 평상에 앉아 온 식구가 은하수를 바라보며 더위를 식혔던 어린 시절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냉장고가 없었으니 한 여름 텃밭에서 자란 열무로 김치를 담아 큰 대야에 찬물을 넘치게 붓고 김치 단지를 그 안에 넣어 물이 미근해지면 다시 시원한 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주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이런 번거로움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냉장고다. 집집마다 큼직한 냉장고가 부엌에 하나도 아닌 두 개씩 버티고 있다.
문이 두짝짜리인 냉장고부터 덩치 큰 김치냉장고까지.

1년 내내 샐러드 드레싱 한번 먹지 않아도 서로 다른 이름의 병들이 줄줄이 나열해 있고,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밑반찬이 서로 비집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만큼 냉장고는 오만가지를 품고 사는 물건이다.
우리 집도 15년이 넘은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하나 더 있다. 이 김치냉장고는 김치만 넣는게 아니다. 채소를 넣어 둬도 아주 오래 가고, 콩이나 밤, 참깨 같은 곡물은 벌레도 안 생기고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수 있어서 너무나 좋다. 

어제도 퇴근하자마자 맨 먼저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 안에 들어있던 김치를 꺼내어 그릇에 담은 뒤 닫으려 했더니 갑자기 "나, 말라 죽어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냉장고에서 "나, 말라 죽어요"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면 이건 분명히 환청이다. 그러나 정말 환청 같은 소리를 들은 느낌이었던 이유는 냉장고 문을 닫는 순간 눈에 얼핏 보인 흰 봉지속의 물건 때문이었다.

게으름 덕분에 대박 친 웰빙 야채 비빔밥_1
게으름 덕분에 대박 친 웰빙 야채 비빔밥_1

쑥갓과 청경채, 그리고 쌈채소 등 몇가지 채소를 한데 넣어 담아둔 봉지. 아, 이걸 그동안 내일 먹어야지, 모레 먹어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던 것이 이제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채소들이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던 것이다.
김치 냉장고 문을 닫는 순간 보여진 이 채소 봉지가 마치 내게 "나, 말라 죽어요"라고 외치는 듯한 착각을 준 것이다.
채소 봉지를 꺼내 보니 여러 종류의 채소들이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었다. 노지에서 자라서 자생력 강하다고 으쓱대며, 푸름을 한껏 자랑하며 마트의 진열대에서 마냥 뽐내다가, 우리 집으로 팔려 왔건만 이 못난 안주인을 잘못 만난 탓에 제 몫을 다하지 못한채 말라 비틀어져 가고 있었으니 미안했다.

일단 채소들을 꺼내어 식탁에 올려 놓았다.
그 순간 갑자기 야채들이 "야호 신난다. 이제 우리 살았다"하는 만세 삼창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사람을 위해 태어나서 열심히 태양빛을 받고 땅속의 우수한 양분을 빨아들여 나름대로 훌륭한 웰빙 채소로 자라주었건만, 주인 여자 잘못 만나 이렇게 시들시들 앓다가 죽어가고야 마는구나 싶었는데, 이제 간신히 안주인의 개과천선 덕분에 채소로서의 일생에 한점 흠 없는 마감을 할수 있어서 신나는 노래를 부르는 듯 했다.

채소들의 만세삼창에 부응이라도 하듯 나는 칼을 꺼내 약간 상한것만 버리고 나머지를 손질하니 그나마 쓸모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대로 쌈으로 먹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쌈으로써의 싱싱함은 맛볼수 없을것 같았다.
궁하면 통하는 법. 거기서 밀릴수 없는 노릇이었다. 채소가 아깝기도 하고.
그걸 저녁때 채소 밥을 하기로 했다. 양념장을 맛나게 만들어 놓고 콩나물과 함께 이 채소를 다듬어 넣고 푹 찌듯이 밥을 지었다. 

채소들의 고유한 녹색이 어우러진 파란색 웰빙 쌈채소 쌀밥. 이 칼라 밥을 본 아이들과 남편은 웬거냐는 듯 갸우뚱 했다.
"묻지 말고 이 양념장 넣어서 참기름 두르고 한번 비벼 먹어 봐요"
남편은 내가 시키는대로 한다. 아이들도 속는셈 치고 따라 한다. 그러나 맛은? 역시 대박이었다. 훌륭한 쌈채소 비빔밥이었다. 맛있는 된장국까지 곁들이니 정말 생각잖은 훌륭한 저녁만찬이었다. 고맙다, 채소들아.
주부 여러분, 가끔 냉장고 한번씩 이렇게 정리정돈 해 보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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