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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봉평에 가다
2013-09-22 10:19:16최종 업데이트 : 2013-09-22 10:19:16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얼마전 모임에서 수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가 이효석의 소설뿐만 아니라 수필도 참 아름답게 썼다는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그러면서 갑자기 이효석의 대표작인 메밀꽃필무렵이 생각나면서 소금을 뿌려 놓은듯한 메밀꽃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메밀꽃 필 무렵, 봉평에 가다_1
메밀꽃 필 무렵, 봉평에 가다_1
 
추석무렵이라 도로가 복잡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연휴직전의 평일이라서인지 도로는 한산하고, 우리 일행은 청명한 가을하늘을 맘껏 누리며 봉평을 향해 신나게 달린다.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살랑살랑 고개짓하고 들판에 심겨진 벼포기들은 벌써 누렇게 익어가면서 가을을 알리고 있다. 

봉평을 가는길에 덕평휴게소엘 들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게소라며, 강원도를 자주 다니는 일행은 평소 이곳 덕평휴게소에 한번 들러보고 싶었지만 수원에서 출발해서 얼마 안된 지점에 위치 하고 있어 보기만하고 그냥 지나쳤다면서, 느긋한 여행의 맛도 느낄겸 들러보자고 한다. 

외관부터가 여느 고속도로 휴게소와는 다르다. 고객용 주차장쪽으로 전면이 오픈되어 있어 이용이 편리한 반면 복잡한 느낌이 드는 일반휴게소와는 달리 전원주택풍으로 지어진 건물과 아늑한 쇼핑 공간, 그리고 내 집 정원처럼 정성스러우면서도 소박한 화단까지, 그야말로 여행중의 피로를 충분히 풀 수 있는 휴게소다운 휴게소의 모습이다. 

진한 커피한잔과 함께 준비해온 간식을 먹기위해 휴게소 중앙쪽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도 작은 정원이 꾸며져 있는데, 냇물도 흐르고 매끈한 돌멩이들도 구르는 개울까지 있다. 
휴게소 같지 않은 휴게소에서 맛있는 간식과,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을 벗 삼아 휴식을 취한 후 다시금 봉평을 향해 길을 나선다. 길가에 나부끼는 현수막이 메밀의 고장 봉평임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메밀마을을 향해 들어서니 제일 먼저 우리를 맞아 주는건 역시 하얀 메밀밭이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다. 

메밀꽃 필 무렵, 봉평에 가다_2
메밀꽃 필 무렵, 봉평에 가다_2
 
메밀밭만 찍어도 보고 메밀밭 속에 들어가서도 찍어본다. 
그런데 달빛 흐르는 밤이 아니어서였을까, 생각만큼 예쁘지는 않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80리길에 걸쳐 소금을 뿌린 듯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메밀꽃을 기대했지만 관광객들이 둘러 볼수 있는 작은 마을은 메밀밭도 군데군데 흩어져있어 소설을 읽으며 상상하던 그런 풍경은 아니었다. 
마을주민에게 물어보니 한참 절정을 지나 지금은 꽃이 지는중이라고 한다. 메밀꽃밭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아담한 효석문화마을은 곳곳이 메밀꽃필무렵에서 허생원이 지나갔던 흔적을 그대로 재현해낸 곳이다. 

허생원과 성씨처녀가 만나서 하룻밤의 사랑을 나누었던 물레방앗간에서는 아직도 성씨처녀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들리는듯하고, 허생원과 동이가 장돌뱅이로 여러장을 떠돌며 생계를 이어가던 소중한 나귀도 소설 밖으로 나와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점심시간, 봉평메밀로 만든 메밀묵사발과 메밀전병, 메밀부침을, 시원하고 향긋한 메밀막걸리와 함께 산머루가 마당을 뒤덮은 옛스러운 주막에서 소설의 향기와 함께 맛보며 기분좋은 가을을 즐긴다. 
식사 후 이효석문학관을 찾아가는 길은, 산책하기에 알맞은 거리로 주변의 메밀꽃을 감상하며 문학관에 다다른다. 입구부터 단정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건물 바깥도 아기자기하게 가꾸어 놓아 이 곳 저 곳 사진 찍기에 바쁘다. 

메밀꽃 필 무렵, 봉평에 가다_3
메밀꽃 필 무렵, 봉평에 가다_3

메밀꽃 필 무렵, 봉평에 가다_4
메밀꽃 필 무렵, 봉평에 가다_4
 
문학관뜰에서 내려다 보이는 저 아래 마을의 풍경은 메밀꽃필무렵의 작품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듯한 아련함을 느끼게하며 작품속으로 빠져드는듯하다. 
문학관 안에는 이효석의 작품들과, 메밀꽃필무렵을 원작으로 상영중인 영화와, 작품속의 장면들을 재현해놓은 소품들로 메밀의 고장 봉평을 다시 느끼게 한다. 선생이 쓰신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를 읽고, 단편 '시월에 피는 능금꽃'을 만난다. 

새빨간 별을 뿌려 놓은 듯이 아름다운 능금이 송이 송이 벌판을 수 놓았다 라는 표현은 소금을 뿌려놓은듯한 메밀꽃이 생각나는 아름다운 구절이다. 
작가 이효석을 만나고 내려오는 길에 들른 개울은 작품속에서 물에 빠진 허생원을 동이가 업고 건너던곳을 재현해놓아, 제대로 표현해보지도 못한 부자간의 정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살며시 산 아래로 내려온 산그늘과 동행하며 돌아오는 길은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보고 온 듯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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