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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엔 몸이 세개였으면 좋겠다
명절 증후군, 올 추석도 부담스럽긴 한데...
2012-09-28 08:15:14최종 업데이트 : 2012-09-28 08:15:14 작성자 : 시민기자   채혜정

며칠 후면 우리 고유의 명절인 추석이다. 정월대보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추석이 돌아왔다. 정신없이 달려왔던 올해의 상반기를 돌아보며 잠시 멈추어본다. 옛날 조상들은 추석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점점 보름달이 되어가는 달을 밤마다 쳐다보면서 괜스레 마음이 분주해진다. 

어렸을 땐 추석이 무조건 좋았다. 추석 때면 예쁜 꼬까옷도 생겼고 평소 잘 먹지 못했던 고기며 맛있는 빈대떡이며 먹거리가 풍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햇과일은 왜 그리도 새콤달콤하던지 엄마가 쑹덩쑹덩 잘라주는 사과는 맛이 참 좋았다. 
예쁜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있으면 친척 아저씨들이 와서 요 녀석 참 예쁘다며 돈을 쥐어주곤 하셨다. 이러니 어린 나에게 추석은 즐거운 일만 가득한 최고의 명절이었다.

키가 엄마정도 자랐을 때 추석이 즐겁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서서히 알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은 모두 엄마가 힘들게 준비한 것이었고, 음식을 먹고 난 후 가족들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엄마 혼자서 설거지를 하셨던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장남이어서 추석 점심 때 즈음해서 아버지 형제들이 하나 둘 우리 집에 모이곤 했다. 추석의 부엌일은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나는 엄마를 돕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추석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다가왔던 것 같다.

추석엔 몸이 세개였으면 좋겠다_1
추석엔 몸이 세개였으면 좋겠다_1
  
명절증후군이라는 단어가 생길만큼 주부들에게는 추석이 즐겁지만은 않은 명절인건 맞는 말같다. 대부분 주부들은 비장한 각오를 하면서 추석을 맞이하는 것 같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추석 전에 주부들은 이렇게 인사를 하곤 한다. "추석 때 꼭 살아남아~~" 이만큼 주부들에게는 추석이 즐거움보다는 부담감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추석 같은 거 없어졌으면 좋겠구나." 어머니는 한 숨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시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또 이렇게 대답한다. 
"어머니, 그럼 우리 어디 여행갈까요? 차례지내지 말고 그냥 여행 가버리죠 뭐." 그러면 어머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래, 가자."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말씀만 그렇게 하실 뿐 절대로 추석 연휴에 어디론가 놀러 가실 리가 없다. 
옛 어른들이 모두 그러하셨듯이 어머니께서도 추석 때 올리는 차례를 결코 빼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젠 좀 편안한 명절을 보내고 싶으신 것 같다. 

주부들에게 추석은 과연 부담스런 명절인 것일까. 
차례상을 준비하는 게 힘들다거나 어려운 것은 절대 아닌 것 같다. 명절 연휴동안 차례 상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고 손님을 맞이하다 보면 연휴동안 바깥공기를 마시지 못한 채 지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추석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인지 사람이 추석을 위해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아마도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추석 때 이젠 좀 편해지고 싶다는 마음이신 것 같다.

"얘야. 살 게 하나도 없구나. 왜 이렇게 비싸니? 만원이 돈이 아니구나." 
추석 장을 보시면서 어머니께서는 얼굴을 찡그리신다. 매년 치솟는 물가 때문에 차례 상 차리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어머니는 늘 걱정이시다. 
그렇다고 차례지내는 것을 빼먹을 수는 없으니 고민이 두 배 세 배로 늘어나시나보다. 게다가 손자 소녀들에게 용돈을 주어야 하는 것도 부담으로 다가오시는 것 같다. 

시댁은 평상시에도 자주 모이기 때문에 추석이라고 해서 가족 만남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오히려 평소 때보다 더 쓸쓸해지는 추석이라고 해야 할까. 아들은 처갓집에 가야하니 아들식구와 딸 식구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시댁은 다른 집과는 좀 다르다. 평상시엔 아들 딸 모두 한꺼번에 북적거리는데 추석 땐 오히려 아들딸이 흩어지니 추석 때면 오히려 집안이 한가해지는 진기한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추석의 부담도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식구가 줄어드는 추석이 싫으신 것 같다. 추석이 되면 오히려 더 쓸쓸해지시기 때문이다.

추석엔 몸이 세개였으면 좋겠다_2
추석엔 몸이 세개였으면 좋겠다_2

추석 같은 명절에는 몸이 세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몸 하나는 시댁에, 또 다른 몸 하나는 친정에 그리고 마지막 몸 하나는 집에서 연휴를 편히 지내고 싶다. 
가족들이 모여앉아 지글 지글 전을 부치는 것도 재미있고, 빈대떡을 부치면서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마시는 것도 즐겁다. 일을 끝내고 다함께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수다를 떠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친정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 동안 마음은 괜스레 무거워지고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조금만 더 있다가지, 하루만 더 있다가지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계속 머물러 드리고 싶지만 친정에 가서 자식노릇을 해야 하기에 무거운 마음을 뒤로하고 시댁에서 나온다. 

즐거웠던 추석이 결국 마음 무거운 추석이 되고 만다. 몸이 두 개면, 몸이 세 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모두에게 즐거움이 가득한 추석이 될 텐데 말이다. 
시댁도, 친정도, 우리 집도 모두에게 기쁨이 넘치는 추석이 될 텐데 말이다. 한편으론 그렇기 때문에 추석은 더더욱 소중한 명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명절연휴동안 자신의 가족을 위해 시간을 쪼개고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올 추석에도 최선을 다해 즐겁고 기쁘게 보내야겠다. 올 추석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귀한 추석이기 때문이다. 내일 일은 알 수 없기에 내년 추석은 또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다. 시댁에도 친정에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부모님께도 즐거운 추석을 안겨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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