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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두려움 아니라 자유를 즐기는 여유다
2012-09-22 11:13:24최종 업데이트 : 2012-09-22 11:13:24 작성자 : 시민기자   오선진

서울에서 조그만 출판사를 하면서 단행본을 만드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책의 원고를 보내줄테니 책을 읽어 보고 책 제목좀 생각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대뜸 "그거야 책 주인이 더 잘 알지, 나같은 문외한이 무슨 재주로 책 제목을 다냐?"고 난감해 했더니 오히려 독자의 생각이 훨씬 더 잘 먹히는 경우가 있다며 거듭 부탁을 하는게 아닌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으나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기도 그렇고, 또한 정말 독자의 생각이 필요한거 같기도 해서 마지 못해 허락을 하고 원고를 받아들게 되었다.
원고를 받아서 3박4일간 꼬박 정성을 다하여 책 내용을 완전히 이해 한뒤 1주일간 이생각 저생각, 인터넷도 귀져 보고, 다른 책 제목들도 살펴보면서 나름대로 제목을 정해 보았다.
3개정도였는데 그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자유인, 쉰에 춤추다'였다.

책의 내용의 뜻과 의미는 아직 그 책이 나오지 않았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공개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나 스스로 '쉰'이라는 나이에 대한 지칭을 하고 나니 은근히 가슴 한켠이 저려왔다.
그 이유는 내 나이 64년생, 이제 석달만 있으면 쉰이 되기 때문이다. 
친구가 책 제목을 뭐라 정하든, 일단 내 머릿속에서 그런 제목이 만들어 졌다는 사실, 나 스스로 나이 50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정말 숨이 턱 막혀왔다. 

나이는 두려움 아니라 자유를 즐기는 여유다_1
나이는 두려움 아니라 자유를 즐기는 여유다_1

우선 벌써 10년전인 40대에 들어설때는 어땠나를 돌아 보았다. 40이 되던 해 불혹(不惑)이라며 스스로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고, 불현듯 이른 새벽에 깨고 이불 뒤척이는 시간이 길어지는, 그러나 인생이 깊이 영글어 가는 나이이기도 하다는 자위를 하면서 덤덤하게 40을 맞았었다.
그 터널을 지나 어느덧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이르게 되는 것인데...

지천명의 나이, 흐르는 강물마냥 머무르지 못하고 쉼없이 흘러만 가는 세월속에 어느덧 하늘의 뜻을 알고 하늘의 뜻에 따라 산다는 지천명의 나이이거늘. 왠지 자신이 없고, 무엇 하나 제대로 해 놓은것도 없는 내가 하늘의 뜻을 알아? 그 하늘의 뜻이라는게 결국은 인생을 안다는 것인데 나는 과연 인생을 알고나 있는걸까?

친구에게 제목을 알려주고 나서 반응을 기다렸다. 친구도 다른 사람에게도 나에게처럼 똑같은 부탁을 했던 모양인데 그쪽에서도 제목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다만 나는 친구에게 이 제목을 알려주면서 "나 스스로 정해 본 제목인데, 그게 왜 나를 옥조이는지 모르겠다. 이거 괜히 그런 제목을 단거 같다"며 후회스런 말을 했다.
친구는 내게 "짜식, 너도 나이 먹는구나. 누군들 그런 생각 안해보겠냐. 그러니까 나도 내 나이에 맞는 책을 내는거지. 너무 상심해 하거나 어렵게 생각하지마 임마. 너도 제목에 자유인이라고 했잖아. 자유인처럼 살어. 그렇게 살고 싶어서 만든 제목 아냐?"라며 나를 위로한다. 이녀석은 벌써 60은 산 사람처럼 말을 한다.

사실 나는 정말이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 나이에 대해 무관심했었다. 그러다가 막상 슬슬 나이를 먹고 아이들이 커 가는걸 보면서 언제부턴가 모교에 가도 한참 선배가 돼 있다는걸 느끼고, 어떤 자리나 모임에 가도 적잖게 선배 대접을 받고 있었고, 이러다가 조금만 나이 더 먹으면 전철이나 버스에서 자리 양보하는 사람이 나올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싶은, 불쾌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유쾌할 수도 없는 야릇한 자각 앞에 가끔씩 주눅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제 쉰이 코앞에 다다르자 막연하게 묘하고 야릇하기만 했던 감정이 좀더 분명하게 내게 다가왔다. 뭐랄까 조금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뭔가에 쫓기는 듯한 절박감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것이다. 

그걸 피해보자고 스스로 책 제목도 자유인이라는 말을 넣었는지 모른다.
쉰을 코 앞에 둔 나이. 피부가 늙는게 겁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앞으로는 어떠한 새로운 시도나 도전이 아예 불가능할 것 같은 심리적 위축이 더 두려웠다. 물론 지금까지 내가 감행해온 어떤 도전이나 시도조차도 내 스스로 판단하기에 얼마나 잘 됐는지, 후회 할 일은 없었는지, 누가 어떤 평가를 해 줄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그런 시도조차도 다시 하기 어려울거라는 식의 낭패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몰두할 만큼 한때 나는 열정적이었고 적극적이었고 형기가 넘쳤고 심지어 다혈질적이기도 했고, 잘하는건 없지만 일단 한번 맘먹고 시작한 일은 정말 목숨 걸고 하듯이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능동적인 삶을 살았다.
그래서 아직도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고 이루지 못한 숙제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는데 내가 어느새 쉰이라니 억울하기도 하고 누군가에 사기당한 것처럼 속이 상했다. 

그러던 며칠전, 내가 사회 초년생일때 당시 직장의 차장님이셨던 분을 만나 소주 한잔 하면서 내 속내를 털어놓았더니 이분이 명언을 한마디 건네준다.
"자네가 시속 20킬로미터로 늙어가고 있다면 나는 시속 120킬로미터로 늙어가고 있단 말야. 자네는 황영조처럼 뛰지만 나는 우사인 볼트거든"
아, 결국 늙어간다는 것은 그 속도를 체감하게 되는 것이구나. 

"억울할 것 없어. 그리고 두려워 할 일도 아냐. 나도 쉰이 넘을때 그런 비슷한 생각 했었는데 막상 쉰이 넘으니까 나 혼자만 두세살씩 먹지 않는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되더라구. 남들은 한 살씩 먹는데 나 혼자만 두세 살씩 먹어야 한다면 그건 정말 억울할 일이지" 
듣고보니 정말 그랬다. 정상적으로, 순리적으로 나이를 먹는 것도 기가 막힌데 남들보다 더 빨리 늙어야 한다면 그것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내 인생의 40대가 지금 저물어가고 있다. 이제 석달 후면 앞으로 10년동안 나는 쉰의 나이로 살게될 것이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좋아지는 것 한가지가 자유로움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뭔가를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어리고 젊었을적에 하지 못했던 일을 비로소 할 수 있게 되는 데에서 오는 자유가 그리도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자기 안에 차곡차곡 쌓인 여러가지 지혜를 발휘하게 되는 순간 참으로 행복하다고 하니... 

"그래, 나이 먹는다고 해서 조바심은 내지 말아야지"
내년에 서른, 마흔, 쉰, 예순, 칠순, 팔순 되시는 모든 분들, 나이에 대한 두려움과 조바심보다 더 많이 생기는 자유를 즐겨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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