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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인생경륜 덕분에...
2012-09-22 09:22:43최종 업데이트 : 2012-09-22 09:22:43 작성자 : 시민기자   김진순

환절기때마다 감기에 걸리는 특이한 체질 덕분에 몸이 좀 무거웠던 얼마전, 병원에 찾아가 검진을 했다. 자칫하다가 혹시 또 그냥 방치해서 독감으로 갈까봐 염려가 되어서였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라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치료 약 처방을 받아서 약을 사가지고 버스를 탔다. 

몸이 안좋은데다 그날따라 버스에 공기가 좀 탁하고, 날씨가 그다지 덥지도 않은데 에어콘을 빵빵하게 틀어놔서인지 버스를 타자마자 속이 메슥거리고 울렁거렸다.
여름철에 에어콘을 켤때나, 한겨울에 히터를 켤때 버스들은 냉난방 때문에 창문을 잘 안 여는데 이렇게 장시간 있으면 버스 실내 공기가 금새 탁해진다.

 

할머니의 인생경륜 덕분에..._1
할머니의 인생경륜 덕분에..._1

그냥 참고 가려다 보니 계속 속이 울렁거렸다. 그냥 이러다가 말겠지 하면서 참고 견디는데 약 10분쯤 지났을때 결국 식은 땀이 주르륵 나더니 기어이 구토를 했다. 차에서 내리려고 했지만 신호등에 걸린 차가 오랫동안 서 있는 상태에서 그만 봉지를 미리 준비할 겨를도 없이 토가 나와 하는수 없이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나 그 다음 대처 방법이 없었다.

난감한채 손으로 입을 막은 상태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옆에서 낮으막한 소리가 들렸다.
"젊은 아줌마, 속이 좋지 않구먼?" 하면서 나에게 하얀 봉지를 주시는 한 분. 고맙다는 인사조차 할 겨를 없이 얼른 다른 손으로 그 봉지를 받아 입에 대고 구토를 했다. 그리고 나서 올려다 보니 백발이 성성한 웬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이내 빙그레 웃으시며 이번엔 손수건을 내미시는게 아닌가. "몸이 많이 아픈가벼..."하며 걱정을 해주셨다.

할머니는 손수건을 마다하는 내게 극구 괜찮다며 직접 내 손과 입을 닦으시려 했다. 미안했지만 호의를 거절할수 없어서 결국 손수건까지 받아 입과 손을 씻었다. 할머니께 감사의 인사와 함께 손수건 값을 드리겠다고 하자 손사래를 치셨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게 건네 주신 봉지는 모 제과점 포장용 봉지였다.  제과점에서 빵을 사 들고 가시던 길인듯 했는데, 할머니는 봉지를 내게 주신후 빵만 덩그러니 들고 계셨다. 얼마나 고맙고 미안했던지.
구토를 하고 나서 봉지를 들고 얼른 버스에서 내렸다. 가까운 주유소 화장실에 들어가 그걸 버리고 입도 닦고 옷 매무새도 정리한뒤 조금 걷기로 했다. 바람을 쐬며 걸으니 울렁거림증도 사라지고 마음도 몸도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가을바람 맞으며 길을 걷노라니 다시금 잠시전 그 할머니가 진심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고속버스 안에서도 어느 할머니의 인생 경륜 높으신 배려를 목격한 일이 떠올랐다.
벌써 3년은 된 일이었는데, 그때 갑자기 버스 안에서 자즈러지듯 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버스 안을 요동치게 했다.  아주 어린 간난쟁이 아기를 안고 있던 주부가 울음을 달래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게 보였다. 아기를 얼르고 달래고 흔들며 울음소리를 그쳐보려고 했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아기는 더욱 거세게 울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아주머니가 아기에게 사탕을 쥐어보라며 건넸다. 그래도 여의치 않자 이번엔 또 다른 아저씨가 조그만 쿠키 같은걸 건네주셨다. 정말 남의 일인데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다들 자기 일처럼 돕고 배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지만 한번 터진 아기의 울음 보따리는 멈출줄 몰랐다.

"새댁, 혹시 젖 먹여요?"
그때, 한 할머니가 뒤에서 일어나 그 주부곁으로 다가가며 물으셨다.
"젖요? 네. 모유 먹이는데..."
답변을 들은 할머니는 이내 아기엄마를 데리고 맨 뒷좌석으로 가셨다. 그리고는 당신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주부를 가려주었다. 순간 무슨 일인지 눈치를 챌수 있었다.

아기가 배가 고파 모유를 찾은건데 초보 엄마가 몰랐던 모양이다. 혹은 아기의 엄마는 모유를 먹여야 한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사람 많은 시내버스 안에서 가슴을 열어 제끼고 젖을 먹이기 민망해서 그랬을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가 옷으로 가려주자 아기 엄마는 젖을 물렸고, 고대하던 맛있는 식사를 찾은 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딱 그쳤다. 

그러고 보니 나를 도와주신 할머니나, 고속버스 안에서 아기엄마를 도와주신 할머니나 두분 다 천사 같았다. 나이 드신 천사. 인생의 경륜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필요할 때 적절히 사용하시는 그런 분들이셨다.
할머니 두분의 배려와 노련함에 존경의 마음을 가득 담아 전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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