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늬덜이 수제비 맛을 알어?
아내의 명품 수제비
2012-09-26 00:45:07최종 업데이트 : 2012-09-26 00:45:07 작성자 : 시민기자   김기봉
퇴근길에 아내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수제비를 끓여 먹자며 괜찮겠냐고 물어 왔다. 비도 안오는데 갑자기 웬 수제비냐고 했더니 내가 좋아해서라는게 이유였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인거 아는 아내지만 끓여 먹는 과정이 밥솥의 밥을 뚝 떠서 냉장고에 있는 반찬 꺼내 먹는것보다는 훨씬 까다로와 그동안 신경 안썼는데 오랜만에 일찍 퇴근해 여유도 좀 있으니 서비스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마다할리 없었다. 오케이 싸인을 내자 아내는 즉시 장 보러 나간다 했다.
사실 수제비를 나는 어릴땐 별로 안좋아 했다. 아버지가 워낙 수제비를 좋아하셔서 아버지 식성대로 만들어진 수제비를 어쩔수 먹다 보니 질린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묘하게도 아버지 식성을 닮아가나 보다 싶었다.

옛날과 달리 지금은 밀가루 수제비가 추억의 음식이 되었다. 뜨덕 국, 던지기 탕, 만세 탕, 밀가루 반죽이 그리 변한 것이다.
시민기자가 아주 어렸을땐 맑은 장국에 그렇게 풀때 죽처럼 쑤어 먹었다. 부모님 세대때는 6.25이후 원조물자로 들어온 밀가루가 배급되던 날, 장사진을 쳤다 한다. 그저 한 포대라도 더 받으려고 이우성을 쳤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에 외할머니는 그걸로 연명하던 그 날 저녁, 이를 끓여 놓고 양념 장을 풀어 맛을 내셨다고 한다. 물론 지금처럼 다시마, 감자, 홍합, 바지락, 호박 등등 같은 식재료나 부재료가 없으니, 맛이 좋을리 없었을 것이다.
그저 배불리 먹었으면 좋았을 그 때의 수제비였을 것이다. 

그렇게 수제비에 단련되어서인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여전히 수제비를 즐겨 찾으셨고, 밥이 그리웠던 우리 역시 아버지의 식성대로 원치 않는 수제비 상을 자주 받아야 했다.
그래서인지 부전자전이 되어버린 지금 나도 아내가 만들어 주는 수제비가 반갑기만 하다. 

식당이나 이런데서 남들이 맛있게 수제비를 먹는 것을 볼때에도 나도 마누라를 꼬셔서 한그릇 푹 삶아 먹어야지 하는 다짐을 해오던 참이었으니 비도 안 오는 평일날 이런 느닷없는 아내의 제안은 거의 복음에 가까운 고마운 말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내의 수제비가 다른 집보다 약간 더 힘들다. 그 이유는 마트에 가서 기계가 반죽해준 것을 쓰는게 아니라 아내가 직접 밀가루를 반죽해서 만들기 때문에 나름대로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그래서 주말에 집에 있을때는 반죽은 늘 내가 담당했었다. 

잽싸게 집에 들어가니 아내는 이미 반죽과 함께 수제비 끓일 준비를 모두 마친 후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나 반가운 주방의 풍경에 나는 후다닥 옷을 갈아 입은 뒤 손을 씻고 나서 주방으로 갔다. 수제비 뜯어서 넣는 일이 나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칼국수에 넣을 양파와 당근은 미리 채썰어 준비가 돼 있고, 그 옆에는 어슷 썰어둔 대파도 보였다. 모두 다 우리집의 화려한 저녁 수제비 만찬을 위해 모인 양념 부재료 응원군들이시다. 

바지락과 멸치를 우려낸 물은 깨끗한 육수만 남도록 걸러서 냄비에 담고 채썬 양파와 당근을 먼저 넣어주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수제비 반죽을 꺼내어 얇게 펼쳐 뚝뚝 떼어 넣어 주었다. 먹을만큼 반죽을 떼어 넣은후 반죽이 익자마자 아내는 마지막으로 익혀낸 바지락과 대파를 넣어주고 국간장과 소금으로 입맛에 맞게 간을 해주었다. 간을 맞춘 뒤 독특한 수제비 냄새가 완전히 주방과 거실 안에 퍼지면서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기 시작했다.

늬덜이 수제비 맛을 알어?  _1
늬덜이 수제비 맛을 알어? _1

이제 한소끔 더 끓여 바지락수제비가 완성이 되었다.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수제비 그릇을 들어 국물을 쭈욱 들이키고 내뱉는 "어~ 시원하다"는 말. 뜨거운 국물을 거침없이 들이켜면서 시원하다고 말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 이 작은 행복에 더할수 있는 아빠의 한마디는? "늬덜이 수제비 맛을 알어?"

바지락살 쏙쏙 빼어내어 쫄갓한 수제비와 함께 김치 곁들여 먹어주니 이 맛이 진정 천상의 맛이었다.
그거였다. 정성들여 우리식의 식재료와 방식으로 우려내 진정으로 수제비맛을 내게 한 그 맛. 역시 아내의 수제비는 진정 명품이었다. 혹시 내가 만약 직장에서 잘리더라도 우리집은 아내의 요리솜씨로 수제비 장사를 해도 긂어죽지는 않을것 같다. 
추석때 시골 내려가면 아내더러 아버지께 이 바지락 칼국수 한그릇 끓여 드리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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