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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 어떻게 보내야 할까?
풍성한 수확을 마치고 삶을 관조하는 시기라 합니다
2012-09-21 11:26:36최종 업데이트 : 2012-09-21 11:26:36 작성자 : 시민기자   남민배

도서관에 가서 사진화보집을 보다가 수년전에 있었던 한 사진대전의 수상작 모음집을 접하게 되었다. 그중 어느 신문에서는 시골 노부부가 남편은 봇짐을 메고 부인은 머리에 이고 둘이서 시골길을 걷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발표했다. 수상작품이었다. 인생의 고뇌를 등짐으로 또는 머리에 이고 홀홀히 떠나는 부부, 조용하면서도 순진무구한 노부부의 사진은 햇빛으로 꽉 차 있었고, 동시에 하늘의 구름까지 텅 빈 고적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다음 장면, 즉 다른 수상작은 잠시전 보았던 사진과 느낌이 다른 모습이었다. 홀로 호숫가에 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먼발치를 무기력하게 응시하는 어느 할아버지의 쓸쓸한 옆모습을 클로즈업 했다. 한 노인의 앉은 모습이었는데도 사진이 주는 메시지와 의미는 너무나 강렬했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똑같은 노년기를 보내는 사진이었지만 느낌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고향의 7순이 약간 넘으신 어르신이 계셨다. 그분은 1년 전에 아내인 할머니와 사별하셨다. 
지금까지 그분은 특별히 많은 농사일은 안하신채 집 앞의 텃밭을 일구는 정도로 작은 일감을 찾아 생활하고 계셨었다. 

그러던 할아버지는 자꾸만 연세가 드시니 건강도 전과 같지 않아 작은 텃밭 일구는 일도  그나마 줄여야만 했다. 더욱 힘든 것은 혼자 산다는 심리적 어려움이었다. 그러다 보니 할아버지는 자주 눈물을 홀리고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가끔 대전과 안양에 사는 아들네 집에 가보기도 하지만 생활이 바쁜 아들에게 부담이 되는 건 아닌가 싶어 늘 마음은 편치 못했다. 이제 할아버지에게는 과거 젊은 시절 삽과 낫과 호미를 들고 나가서 일을 했던 논밭의 두렁에 앉아서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주위의 장기나 바둑을 두는 사람들을 등 너머로 보며 시간을 소일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었다. 

노년의 삶,  어떻게 보내야 할까?_1
노년의 삶, 어떻게 보내야 할까?_1

할아버지에게 전형적인 우울증이 찾아온 것이다.  즉 이미 건강상태가 안 좋아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삶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것 등에서 유발되는 것이다. 더욱이 할아버지에게는 어른으로서, 아버지로서 역할의 상실, 사랑하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시민기자가 어머님을 뵈러 고향에 갈 때마다 그 할아버지를 뵙긴 했으나 늘 혼자셨고 마을의 다른 어른들과 함께 섞여 지내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논두렁에 앉아 우두커니 먼발치를 응시하거나, 아니면 길가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어린아이처럼 흙을 만지기도 하셨다.

오랜만에 뵙는 마을 어른이시니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진지 잡수셨어요?"라며 인사를 드려도 그냥 무표정한 채 나를 바라보시며 "응"이라는 짧은 대답만 하셨다. 과거 같으면 "아부지 보러 왔냐, 애들은 잘 크냐, 객지생활 힘들지 않냐,"등 이것저것 물어 보시기도 했는데 그런 의미 있는 표정과 질문이 사라지신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이 할아버지는 결국 외롭게 아주 멀리 바람처럼 떠나셨다. 자살을 하신 것이다. 외로움을 못 견뎌 그러신 것이다.

사람이 50대가 되면 막연하게나마 죽음을 의식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계절로는 늦여름에 해당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을의 영농과 추수, 그리고 겨울의 갈무리로 들어가는 것이다. 늙었다는 것은 겨울에 해당되고 이것은 안식을 의미하며 결실을 저장하는 단계이다. 또 영원이라는 희망의 내년 봄이 대기하고 있다. 노인은 스스로가 들풀이나 들꽃과 같은 형태로 소멸의 길을 간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노년의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노년엔 너무 아는 체 하지 말고, 집착이나 강요도 말고 "나도 틀릴 수 있다"고 물러 설 줄도 아는 게 큰 지혜라 한다. 그것이 노년스러운 모습이라 한다. 나이가 차면 다른 사람에게 비켜 주기도 해야 하고, 슬쩍 물러나기도 하고, 잊혀져 주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꼭 필요한 덕목중 하나는 너무 많이 기억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은 노인들에게 건망증이라는 걸 선물로 주셨다.

또한 노년기 삶에서 제일 고통을 주는 것은 외로움인데 이제는 젊은 시절보다 더 자주 찾아오는 외로움과도 가까워 져야 한다. 이 외로움은 어쩌면 떠날 채비를 하는 필수 단계이므로 이를 덤덤히 받아들이고 동시에 이별의 연습을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노인에게는 늙음이 겨울이라지만 지혜로운 노인에게는 수확의 계절, 갈무리의 계절이고 영원한 봄을 기다리는 성스러운 백발의 시기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늙고 누구나 외롭고, 결국에는 누구나 그렇게 죽는다. 초고령화 사회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리 어르신들이 노년기에 이런 <황혼의 길>을 고꾸라지는 걸로 받아들이지 말고, 수확후 갈무리하며 영원의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사셨으면 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노년층, 혹은 50대와 60대 이상 장년층을 대상으로 노년을 맞는 자세에 대한 적절한 교육과 강의를 자주 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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