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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행복을 스스로 창조하는 기술
2012-09-21 14:06:27최종 업데이트 : 2012-09-21 14:06:27 작성자 : 시민기자   최음천

가을이라고 하지만 지구 표면에 가까이 다가선 태양 덕분에 한낮에는 햇살이 따갑기만 한 얼마 전. 수원역 지하도로 들어와 도청 방향으로 가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서는 계단을 타고 막 나오려는 순간.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을 손으로 가리려고 하는 순간 아무 신경도 안 쓰던 바로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낮이니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지하도인지라 인기척이라고 표현하면 이상하겠지만, 우리가 걸어 다니는 일반도로에서는 인기척을 굳이 느끼지 않아도 주변은 사람들이 오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사람이 있을 공간이 아닌 곳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면 거기서 인기척을 느끼게 된다.

사랑의 기술, 행복을 스스로 창조하는 기술_1
사랑의 기술, 행복을 스스로 창조하는 기술_1

지하도에서도 계단 가장 오른쪽 한구석에 수북이 쌓인 골판지 종이박스가 보였고, 나는 그냥 종이박스들이 쌓여있는 것이려니 하면서 지나치려는데 거기서 인기척이 느껴진 것이다. 힐끔 돌아봤더니 노숙자였다. 옷이나 행색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얼굴은 너무나 배고파 보였다.

솔직히 말해 나는 노숙들에게 적선을 하거나 돈을 주는 일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 시간에 나가서 막노동이라도 해야하는거 아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래서 평소에도 대체로 노숙자들을 보면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그날 아침은 바로 우리 둘째 아이 생일이었다. 아침에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미역국을 끓여주고, 나의 아이로 태어나 준 것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주고, 아이 역시 제 엄마를 꼭 껴안으며 이렇게 낳아주고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눈 터였다.

나 개인적으로는 경사스러운 날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였는지 나도 모르게 핸드백을 뒤지게 되었고, 지갑을 꺼냈고, 성큼 3천원을 꺼내 그 노숙자에게 주었다. 그분은 머리가 거의 땅에 닿도록 내게 인사를 했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그동안은 거들떠도 안 보던 내가 처음으로 돈을 쓴 것이다. 

그런 내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신 그분에게 내심 미안했다. 그냥 받으면서 감사합니다 정도 인사만 해도 될 일을, 굳이 그렇게까지 인사를 받고 보니 더 민망했다. 길을 걸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 평소 소신처럼 노숙자들도 그 시간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 게 맞기는 하지만... 

사실 세상이 그렇게 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경제적이고 합리적으로만 돌아가지는 않는 것인데. 나는 너무 내 주관만 옳다고 생각해 온 것은 아닌지. 그런 약간의 반성이 들면서 동시에 언젠가 책에서 본 내용이 함께 떠올랐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가 어느 날 거리를 걷고 있었다. 남루한 차림의 거지가 길을 막으며 "한 푼만 적선합쇼"라며 자선을 구했다. 톨스토이는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미안하구려, 형제여. 돈이 있으면 기꺼이 드릴 텐데, 안타깝게도 내게 돈이 한 푼도 없다오."

그러자 거지가 허리를 구부리며 말했다. "누구신지 모르나 선생님은 제가 구한 것 이상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저를 형제라고 부른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말에는 따뜻한 마음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따뜻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시내 지하철이나 버스터미널, 길거리에서 허리를 숙이고 손을 벌리며 자선을 구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낯익은 풍경이다. 특히 이제 앞으로 가을을 거쳐 추운 겨울철이 다가오는데 그럴 때 이 노숙자들은 '고통의 계절'이 될 것이다. 

찬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길거리 바닥에 앉아 있는 노인이나 장애인, 노숙자 분들. 
그들의 작은 바구니에 가끔이라도 돈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정성이지만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그동안 솔직히 그냥 지나칠 때가 더 많았던걸 생각하면 내심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이젠 그럴 때마다 이 톨스토이의 일화를 떠올려야겠다.

비록 그분들의 손에 넣어주는 동전 몇 개, 지폐 한두 장이 결국 그들을 조종하는 어떤 거대한 조직의 손아귀로 넘어간다 한들, 그렇게라도 할 수 있다면 그분들은 그만큼 덜 시달릴 것 아닌가,. 목표치를 채웠으므로. 

사랑은 알고도 속아주는거라 했다. 
우리는 행복을 창조하는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 어린 시절에 엄마, 아빠가 가족 안에서 행복을 창조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우리는 이미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있다.

함께 사는 것은 하나의 기술이다. 말과 행동을 더욱 기술적으로 하도록 노력하다 보면 거기서 행복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앞으로 길거리 노숙자분들에게 1000원짜리 지폐 한 장 놓아 드리는 것도 결국 행복을 창조하는 기술로 보면 맞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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