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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와 우리집 남편의 친환경 노력
2012-09-19 11:36:49최종 업데이트 : 2012-09-19 11:36:49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희

결혼한 뒤 아이를 낳은 후배 집에 축하를 해주기 위해 다른 친구와 함께 가 봤더니 집안 거실에 큰 빨래대가 세워져 있었고 거기에는 길다랗게 늘어뜨려져 마르고 있는 기저귀가 보였다. 
"히야~아",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하얀색깔의 천 기저귀. 
그것은 처음 들어간 사람에게 "우리 집안 분위기는 지금 아기 키우고 있는 컨셉이에요"라는 말을 하는듯 했고, 무척 푸근하면서도 은근히 감동마저 주었다.

 

후배와 우리집 남편의 친환경 노력_1
후배와 우리집 남편의 친환경 노력_1

더군다나 이 후배는 1회용 기저귀가 완전히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데 무려 500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조금은 힘들지만 일부러 천 기저귀를 쓴다고 말했다. 대견한 후배였다.
나는 뭐 마땅히 선물할것도 여의 여의치 않아 약간의 분유값을 넣은 돈 봉투를 준비했는데, 같이 간 친구가 마침 1회용 기저귀를 사 들고 가서 내려 놓다가 하얀색 천 기저귀가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이거, 잘못 사왔네"라며 멋쩍어 했다.
그러자 후배는 "아니에요, 이것도 고맙습니다. 천 기저귀를 쓰고 있지만 밖에 외출할때는 어쩔수 없이 쓰니깐요. 그때 쓸께요"라 한다.

그렇다. 외출할때는 누구도 별수 없으니 1회용 기저귀가 필요할듯 했다. 
어쨌거나 이렇게 가정에서 친환경을 실천하는 후배를 보면서 대견하고 기특했다. 
나도 오래전 아이를 기를때, 1회용 기저귀 대신 천 기저귀를 썼다. 물론 처음에는 1회용을 쓸 작정이었으나 남편의 반대로 천을 쓴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장의 편리함보다 자연환경을 먼저 생각한 남편이 훌륭하고 고마운 사람이었다.

아침 저녁마다 우리집 세탁실 양동이엔 빨래감이 가득했다. 아이 키우는 집에는 으레 있을 법한 일이지만 우리집은 좀 남달랐다.
다른 집은 흙이나 변이 묻은 아이들 옷이 대부분이지만 우리집 빨랫감은 전부가 아기 기저귀였기 때문이다.
밤새 아이가 내놓는 기저귀가 어림잡아 20여개, 거기다 낮동안에도 그만큼의 기저귀를 배출해 놓는 통에 빨래통은 바닥이 보일 날이 없었다.
그래서 거실이며 베란다, 심시어 내 방까지 온 집안이 기저귀로 뒤덮여 마치 포목점 같았다. 아이를 맡기고 출근한 뒤 퇴근길에 돌아오는 먼 발치에서도 보이는 베란다에 널린 하얀 기저귀는 왠지 따스함을 느끼게 했다. 

이런 분위기는 남편의 고집 때문에 연출된 것이다. 큰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도 다른 집처럼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했다.
그러나 1회용 기저귀가 너무나 친환경적이지 못한 펄프 재질이고, 이 펄프를 생산하기 위해 엄청난 나무가 잘려나가고, 심지어 아이의 엉덩이가 헌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남편은 당장 천을 끈어다 기저귀를 만들자고 했다. 

빨래 감당하기가 장난이 아닐 거라는 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남편의 의견을 받아들여 천 기저귀를 사용했고 그것은 둘째 아이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아이들이 잠든 늦은 밤이나 낮시간에 세탁기로 기저귀 빨고 널고 말려서 개고 하는 일은 남편의 중요한 일과가 됐다. 남편이 도와주기로 약속한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남편이 도와주는게 아니라 당연히 남편이 해 주었어야 하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남편도 매번 빨래하는 일은 장난이 아니었다. 

양도 양이거니와, 그걸 매일 세탁기만 돌릴수 없으니 뜨거운 물에 기저귀를 삶고 손빨래를 한 다음 다시 세탁기로 한번 더 씻어내야 하는 과정은 더욱 힘이 드는 것이었다. 
간혹 내가 도와주면서 남편도 얼마나 힘들까를 알게 되지만 남편은 불평 한마디 없이 그 일을 해내 주었다. 

밤늦도록 기저귀를 탈수해 널고 마른 기저귀는 다시 곱게 개어서 아이에게 채워지는 반복되는 일과. 날이 새면 그 기저귀들은 영락없이 빨래통을 채우지만 남편은 정말로 즐겁게 그 일을 해 준 것이다. 

남편의 이런 바지런함 덕에 우리집 쓰레기 배출량도 대폭 줄었다.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해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그 양은 엄청나다. 그렇기에 남편은 우리가 아기를 키우는 동안  환경파수꾼 역할도 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무엇보다도 남편의 이런 고집으로 인해 아이는 딱딱하고 거북스러운 일회용기저귀가 아니라 보드랍고 흡수성이 좋은 천기저귀를 차고 자라서 더 없이 좋았을 것이다.

후배 집을 나오며 베란다에서 나풀거리는 하얀 천 기저귀를 보니 우리 마음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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