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아직도 '아까징끼'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
아까징끼에 얽힌 옛 추억과에피소드들
2012-09-20 02:01:39최종 업데이트 : 2012-09-20 02:01:39 작성자 : 시민기자   김윤남

지난 주말에 주부들 대여섯명이 각자 조금씩 돈을 내어 시장에 막 나온 햇 밤고구마를 한가득 샀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워 충분히 산건데 각자의 집에서 먹을 양 이상으로 산 이유는 근처 경로당에 좀 갖다드리려고 그런 것이다.
가장 집이 넓은 주부네로 가서 우리는 그걸 푹 삶았다. 그리고는 서로 가져갈 것을 조금씩 나눈 뒤 나머지 모두를 들고 경로당에 들고 갔다. 

경로당에 가서 그걸 펼치며 드시라고 하자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막 나온 햇 고구마인걸 아시고는 어찌나 잘 잡숫는지.
고구마를 삶아서 가지고 간 우리가 더 기분이 좋았다.

서로들 왁자지껄 기분 좋은 이야기를 하면서 고구마를 맛있게들 잡숫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고구마를 들고 간 주부에게 하시는 말씀.
"아그야, 아침에 갸(할머니의 손주) 아까징끼 발라 줬냐? 상처가 커서 그냥 두믄 상처가 흉지겠드만" 하시는게 아닌가.
"네 어머님. 약 발라주고 학교 보냈어요. 너무 염려 마세요"

그 주부의 나이 쉰이 넘었고, 그 할머니는 시어머님이셨는데 이 연세 지긋하신 고부간에 나누는 대화중에 나온 말 '아까징끼'라는 단어.
주변에 알아 듣는 사람들은 당연히 연세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셨고, 우리 주부들중에는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아까징끼'를 거론하시는 노시어머니의 물음에 며느리인 이 주부는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 할머니의 손주가 다쳤는데 거기에 약을 발라주었느냐고 물으시면서 요즘은 쓰지 않는 그 '아까징끼'를 발라줬냐고 물으신것이다.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아까징끼가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자니 은근히 웃음이 났다.

아직도 아까징끼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어쩌면 그게 당연할수 있지만), 그리고 그 말을 알아 듣는 며느리와 그 단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사실 덕분에.
시민기자의 나이가 50인데 나와 비슷한 또래, 그리고 그 이전세대에게 이 아까징끼는 정말 잊을수 없는 추억이자 대단한 약이었다. 치료효과가 뛰어나다기보다 그 약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당시에 남겨두고 간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어린시절을 보낼 그 당시에 피부에 상처가 나거나 하면 소독을 겸해서 빨간약을 바르던 그 시절, 일종의 만병통치약으로 쓰이던 약이 바로 아까징끼다. 
본래의 화학적 명칭인 '머큐로 크롬'이나 '빨간 약'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을 두고 굳이 아까징끼라는 일본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말을 쓴 까닭은 무엇일까. 이 또한 일본의 잔재라는 슬픔. 

하여튼 이 아까징끼에는 추억도 많고 애환도 많다. 내가 어릴 적에는 하루 종일 바깥에서 뛰놀았다. 학원이라는 것을 다닐 시절도 아니요, 게임방이 있던 시절도 아니니, 아이들끼리 모여서 산과 들로 뛰어다닐 수밖에 더 있었겠나. 

길을 달리거나 나무에 오르고, 언덕에서 뛰어내리기도 하며 신나게 놀았는데 그런 와중에 무릎이든 손이든 발이든 땅에 넘어져 여기저기 까지는게 기본이고 예삿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나뭇가지에 찔려 피가 났고, 바위에 부딪혀 여기저기 멍이 들었다.
그때마다 가정의 필수의약품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까징끼, 즉 빨간약이었다. 이건 바르면 따갑고 아팠다. 
작은 상처는 물론 웬만큼 찢어졌어도 이 빨간약 하나로 모두 치료를 하였다.  솜에 묻혀서 한번 쓱 하니 문지르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 빨간약은 상처에만 바른 것이 아니었다.
벌에 쏘여도, 모기에 물려도, 그 부위에 빨간색을 칠하면 치료 끝이었다. 즉, 외상에 있어서는 만병통치약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직도 '아까징끼'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_1
아직도 '아까징끼'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_1
그런데 더욱 황당한 일은 어떤 이는 배탈이 나서 끙끙 앓다가 따로 쓸 약이 없으니 배에다 아까징끼를 바르는가 하면, 두통이나 관절염을 앓는 노인들은 머리나 무릎 관절에 이 아까징끼를 바르기도 했었다. 
무슨 약이 되었든 약은 약이니 바르면 효과가 있지 않겠는가 싶었을 당시 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믿음이 아까징끼를 만병통치약처럼 활용하게된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하기는 벌레에 물리거나 벌에 쏘이면 된장을 바르고 개똥도 약으로 쓰던 시절이었으니 그 진풍경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이 없겠다.

지금이야 집안에 웬만한 연고는 한두개씩 다 있을 것이다. 상처에 바르는 연고, 화상에 바르는 연고, 아토피에 바르는 연고, 모기물린데 바르는 연고, 무좀에 바르는 연고 등. 그렇지만 당시에는 이런 모든 질환에 그저 아까징끼였다.
우습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한편으로는 일제의 잔재가 남긴 씁쓸한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다시는 아까징끼라는 말을 쓰는 계기가 되는 경우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하고...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