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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먹고 보니 한국이 제일 좋더라
캐나다 이민갔던 친구가 귀국한대요
2012-09-20 02:32:52최종 업데이트 : 2012-09-20 02:32:52 작성자 : 시민기자   송경희

8년전쯤 캐나다로 이민 갔던 친구가 얼마전 뜻밖에 서울에 와서 전화를 걸어왔다. 국제전화비가 비싸니 통화는 못하고 그동안 가끔씩 이메일로만 연락을 해오던 친구였는데 최근에 몇 달동안 소식을 나누지 못하고 있던차였다.
머나먼 북미 캐나다로 떠났던 친구가 우리 한국으로 와서 전화를 거니 반갑기 그지 없었다. 

우린 얼마전 시간을 내어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겪었던 애환과 어려움, 그리고 한국에 두고온 이런저런 사연들,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이루 다 말못할 애틋한 추억들 뭐 그런것들을 주저리주저리 내게 펼쳐 놓았다.
나 또한 멀리 떠난 친구를 볼수 없었음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친구가 건강할 때 아이들 데리고 한번 캐나다에 놀러 갔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가 가면 관광 안내 가이드도 해주고, 싼값에 잠도 좀 재워 달라는 너스레까지 떨었다.

 

나이먹고 보니 한국이 제일 좋더라_1
나이먹고 보니 한국이 제일 좋더라_1

그러자 친구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오는거야 나쁘지 않지. 반갑게 맞아주고 여행안내도 훌륭하게 해줄게. 그런데 빨리 와야 할것 같애"
".... 무슨 말이야? 어디 이사 가니?"
아니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던중 이 친구가 다시 말을 잇는다.
"나, 다시 들어오려구. 못살겠어, 한국이 너무 그리워. 처음에 떠날때는 정말 뒤도 안돌아보겠다고 간건데 이제는 나이 먹어 보니까 한국이 제일 좋더라. 너 같은 친구도 맨날 볼수 있잖아. 호호호"

친구는 다시 고국으로 유턴할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에 온 이유도 그곳에 어디에 사는게 좋을지, 집값은 어떤지 이런저런 것을 알아보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에 가급적 아파트 계약까지 마치고 갈 생각이라고 했다. 
"기왕이면 우리 수원으로 와라. 내가 매일 커피 사줄게"
우린 웃었다. 나는 친구가 더시 고국으로 돌아와준다고 하니 정말 기뻐서 웃었고, 친구 역시 자기 곁으로 와서 함께 살자는 친구가 있는게 좋아어 웃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좋은 환경에 풍요롭고 근사한 문화생활을 한다고 해서 행복의 절대적인 조건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친구는 그는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긴 늦은 나이에 캐나다로 갔었다. 처음 느낀 캐나다의 인상은 어딜 가나 울창한 숲, 널려 있는 아름다운 호수와 맑고 파란 하늘에 매료되어, 에덴동산이 꼭 이랬을 것이라고 여겼단다. 
실제로 그곳에 간 뒤 내게 보낸 이메일을 보면 온통 그런 아름다운 대자연과 환경적인 부분에 대한 만족감 같은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환경만큼이나 아름다운 삶을 살 것이라고 여기며 한국의 습관들을 하루속히 버리고 그곳 생활에 적응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한 달, 두 달, 그곳 생활에 익숙해지니 아름다운 숲 속에 묻혀서 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일상들이 차츰 드러나기 시작하더란다. 

종일 거리를 돌아다녀도 쓰레기 하나 볼 수 없는 깨끗한 거리, 경찰관이 있건, 없건 절대 어기는 법이 없는 교통질서, 이웃을 위해선 숨소리조차 조심하는 그들의 공중도덕을 보면서 그것이 선진국민의 자세로 여겼고, 그런 그들이 참으로 존경스럽더라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 느꼈던 그 신선한 충격들이 차츰 무거운 짐이 되더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하는 분위기가 엄청난 무게로 다가오면서 그것이 이웃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담이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느끼는 이웃의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더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치는 것이 인정머리다. 서구인들 사이에서 인정머리를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고 한다. 기부문화는 발달해 있지만 인정을 나눈다는 의미에서는 매우 인색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혈연으로 맺어진 민족적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그곳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이 법질서 이외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점을 이해는 했지만 나라 전체의 인상은 진정으로 이것이 사람 사는 곳인가라는 회의였다고 한다. 
정이라면 모든 것이 통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정서에 길들여진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세계에 떨어지다 보니 그렇게 느낀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친구의 말을 들으니 정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웃간의 정이라는 문화는 정말 누구에게 줄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우리만의 사람 사는 향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말을 듣기 전에는 그저 "대한민국 국민은 정이 좀 있지"라는 정도로 여겼는데, 실제 밖에 나가 생활하면서 느낀 우리 정이라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설명해주고, 그 절박하게 느낀 바를 직접 비교해 가면서 알려주는 것을 들어보니 나는 지금 너무나 좋은 곳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친구는 이런 말까지 했다.
현대자동차가 공장을 인수하여 미국에 진출했을 때, 그곳 최말단 생산라인의 직원 중에서 상을 당한 사람이 있어서, 한국인 임원들이 문상을 갔다고 한다. 
처음엔 그 직원이 "왜 남의 상가에 와서 사생활에 관여하느냐?"며 오히려 화를 내더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남이 어려울 때 찾아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데 "당신이 한국기업에 있기 때문에 한국예법에 따르다 보니 그랬다"는 점을 설명해 주었지만 처음엔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 후 다른 직원의 대소사에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임원들이 찾아가서 위로하고 축하도 해주니까 미국인들도 서서히 마음 문을 열더라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회사에 근무하는 미국인들은 그러한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단다. 그래선지 이직률이 극심한 미국에서 가장 이직률이 낮은 곳이 한국회사들이라고 한다. 임금이 조금 낮더라도 인정미가 있는 곳을 그들도 떠나기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친구는 곧 돌아올 것이다. 이민을 갔거나 혹은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친구가 내게 해준 말을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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