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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밥상머리 교육을 잘못시킨 탓이다
2012-09-22 14:49:19최종 업데이트 : 2012-09-22 14:49:19 작성자 : 시민기자   홍명호

"여보, 밥 먹어요"하는 아내의 외침에 방안에 있다가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나왔던 엊저녁.
식탁에는 내가 좋아하는 꼬막이 있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돼지 갈비가 차려져 있었다. 누구 생일도 아닌데 웬 반찬이 이렇게 호사스럽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그동안 살림살이 비용을 조금 아꼈더니 여윳돈이 생기길래 오랜만에 고기좀 샀다며 웃었다.

마치 며칠 굶은 사람처럼 정신없이 밥을 먹는 아이들. 아니 고기 반찬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들은 밥을 먹는 일 즉 식사를 하는게 아니라 고기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 맛있게 먹어라'하려다가... 이건 아닌듯 해서 한마디 할까 하다가 또 참고 말았다. 괜히 밥상머리에서 그래봤자 교육 효과보다는 아이들에게 반감만 사고 오히려 맛있게 먹을 밥이 영양으로 가는게 아니라 체할까봐.

아내는 내가 뭔가 말하려다가 참고 마는 것을 곁눈질로 슬쩍 보았다. 아내 역시 내가 말하려다 참는 것을 보고 아내가 직접 내 대신 아이들에게 한마디 하려다 아내 역시 그냥 한숨만 쉬고 만다.
내가 말하려던 것은 아이들이 아무리 배가 고프고 먹을게 넘치더라도 제 아빠가 먼저 숟갈을 들기 전에 식사를 시작하는 일이다.

이건 최소한의 교육적인 부분 아닐까.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내가 너무 옛날 방식이다? 요즘 세태에 어울리지 않는다?
누가 뭐라든 그건 아니라고 본다.  내가 아이들 교육을 잘못 시킨 것이다. 
물론 그전부터 누차 강조했다. 아빠 엄마가 먼저 숟갈을 들기 전에는 음식에 손을 대는게 아니며, 부모님이 "먼저 들거라"했을때에야 비로소 식사를 시작하는거라고.

아이들도 그런 가르침을 곧잘 지켜왔다. 그러나 가끔씩 까먹는다. 맛있는 반찬을 보면 참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아이들은 교육 시킨것도 이행하지 않고 있지만 인내심마저 부족한 것이다.
예전에 내가 자라던 시절에는 어땠나.

아이들에게 밥을 먹는 어릴 적에 아버지와 겸상을 하면서 계란찌개에 먼저 숟가락이 갈라치면 할머니의 불호령과 함께 어머니의 꿀밤이 여지없이 날라 왔다. 
맛있는 음식은 어른이 먼저 맛을 보고 나이 순이나 집안에서의 위치순으로 내려왔다. 이것을 상물림, 또는 밥상머리 교육이라 했다. 집안에서 어머니의 랭킹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에 이어 최소한 4위였으나 밥상에서는 제일 꼴찌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겸상도 못하고 누나 등 여자들끼리 개다리 소반이나 방바닥에 그릇을 놓고 먹기 예사였으며 바쁠 때는 부엌 귀퉁이에서 적당히 해결하였다. 

나는 어릴적에 그것이 불평등하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당연히 그렇게 하는게 맞는건줄 알았다.  집안에서 수직적인 질서는 밥상머리에서부터 나타났고 그 무언의 랭킹이 흐트러지면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야단을 맞았다.
요즘은 밥상머리 교육이 실종된 것 같다. 집집마다 아이가 하나 둘 이라서 그런지 밥상머리 랭킹은 숫제 엉망이 되었다. 

"아이구 내 새끼"하면서 어른보다 아이들이 맛있는 것을 먼저 먹어도 이 질서의 파괴를 탓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어른들이 자식부터 먹이는 가정도 적잖다. 
집집마다 약간씩 그 위상이 다르기는 하나 아이들은 랭킹은 어이없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그런 교육에 결코 반대한다. 그래서 여전히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밥상에서의 서열을 중요시하며 그것이 모든 가정 교육의 근본이라 여긴다.

내가 밥상머리 교육을 잘못시킨 탓이다_1
내가 밥상머리 교육을 잘못시킨 탓이다_1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시골의 홀시아버지가 외아들을 따라 서울로 갔다. 홀시아버지는 집안에서의 랭킹을 생각해 봤다. 시대가 변했으니 자기가 1위일 리는 없을 테고. 
홀시아버지는 그래도 고집불통 옛날 구세대 노인네가 아니라 그래도 나름대로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파악하고 있었고, 현실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어른이신 당신이 랭킹 1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래서 아들이 1위, 손자가 2위, 며느리가 3위, 당신은 4위쯤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서울 아들집에서 몇 달을 보낸 결과 자기의 랭킹이 생각보다 더 낮다는 것을 알아챘다. 바뀐 랭킹은 손자 1번, 며느리 2번, 아들 3번, 금붕어 4번, 강아지 5번, 그리고 6번째가 되어서야 당신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여기에 충격을 느낀 홀시아버지는 아들에게 짤막한 편지 한통을 남겨 놓고 낙향했다. 아들이 펴본 편지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 누가 지은 우스개 소리인지 몰라도 참 서글픈 유머가 아닐수 없다. 

이런 세태 역시 우리 스스로 만들고나 있는건 아닌지 자문자답 해 봐야 한다. 아이들을 버릇없이 키운 결과 내가 늙어서 결국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다.
늙어서 자식들로부터 왕 대접을 받자는게 아니다. 최소한의 인륜적 도리와 대한민국의 효 사상의 기본, 너무나 기본적인 어른에 대한 공경심마저 잃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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