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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비바람 치는 날 구두굽이 부러지다니
늘 마음만은 새롭게, 무엇이든 새것처럼 보려고 하는 마음
2012-09-15 14:08:36최종 업데이트 : 2012-09-15 14:08:36 작성자 : 시민기자   김지영

한달쯤 전 퇴근길,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우산을 바쳐 들고 강하게 몰아치는 바람과 맞서 싸우며 낑낑낑...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데 발이 삐끗해 휘청하며 넘어졌다. 그동안 말썽 없이 잘 지내던 구두 굽이 툭 부러지며 빗길에 넘어진 것이다. 얼마나 야속하고 황당하고 속이 상하던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에서 넘어진것도 창피하거니와, 하고 많은 날들을 놔두고 왜 하필 비바람이 몰아치는 그런날 부러지냔 말이야.!
사실 따지고 보면 말없는 구두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굳이 잘못이 있다손 치자면 남들 다 사는 질 좋은 명 브랜드 구두가 아닌, 중저가 할인마트표 일반 구두이다 보니 수명도 짧고 쉽게 망가진 것 같다. 그런거 산 내게 잘못이 큰것이지.

그러나 길에서 넘어져 비까지 맞은게 분이 안풀리고, 어디 딱히 하소연 할데도 분풀이 할데도 없는지라 그저 굽이 나가 버린 구두를 붙잡고 간신히 집에 돌아와 신발장에 확 패대기 치며 성질을 냈다. 
엄마의 느닷없는 행동에 아이들이 다 놀랜다. 살짝 '미안'. 

그렇게 한달이 지났다.  그리고는 오늘 아침, 그 한달간 차일피일 미루다 구두를 들고 집앞 도로변 한평도 채 안되는 조그만 수선가게에 들렀다. 
그때 그렇게 신발장에 패대기 치고 난 뒤 1주일 정도는 쳐다보기도 싫었으나, 은근히 그 구두가 마음에 들어 자주 신고 다니던거였고, 구두 굽만 잘 갈아 신으면 한동안 더 쓸수 있을거라는 아쉬움 때문에 "고쳐야지, 고쳐 신어야지" 마음은 먹고 있었다. 비오던 날의 낭패감은 슬슬 사라져 가고 있었고.

하필 비바람 치는 날 구두굽이 부러지다니_1
하필 비바람 치는 날 구두굽이 부러지다니_1

수선가게에 가니 일감이 많이 밀린것 같지 않아 잠시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수선을 하시는 아저씨는 아주 능숙한 솜씨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다. 
'툭탁 툭탁' 구두 밑창을 뜯어내 접착제를 발라 햇빛 쪽에 너는가 싶더니 어느새 숙녀 부츠의 헤진 부분을 재봉틀로 드르륵 박는다. 아마도 어느 숙녀가 다가올 겨울에 대비해 그동안 신발장에서 묵고 있던 구두를 들고 나와 맡긴 모양이었다.

이렇게 쇠망치와 쇠톱, 송곳등이 몇 번 왔다갔다 하더니 '반짝반짝' 감쪽같이 새구두가 나왔다. "와우, 단지 굽 하나 갈았을뿐인데..." 
그리고는 이내 내 구두를 만지기 시작했다. 역시 20분도 안돼 뚝딱뚝딱, 탁탁탁, 슥슥슥... 몇 번 손질이 가니 언제 굽이 부러져 나를 빗길에 넘어지게 만든 구두인가 싶을 정도로 새것이 되었다.  마음 고쳐 먹고 고치러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하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다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을때, 또는 힘들고 아프고 절망에 빠졌을때 솜씨 좋은 의사가 마치 구두 수선을 주시는 분들처럼 이 굽 하나 갈아 끼우듯 간단히 처방전만 내주면 모든것들이 감쪽같이 새롭게 바뀌어서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와 같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그러다 문득 만일 그렇게 된다면 쉽게쉽게 저마다 자신들을 바꿔버리기에 정신이 없을테고, 결국엔 진실도 정의도 모두 사라져 자신조차도 자신의 본모습이 무엇인지 모르게 될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전의 상상은 포기했다. 호호호.
삶은 리허설도 없고 리바이벌도 안되고 오로지 생방송일뿐이라고 한다.
1초전이라도 지나간것은 다시는 돌이킬수 없는 과거이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을 만들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고, 1초후는 분명히 다가올 미래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맞설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할것이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구두가 깔끔해졌어요. 완전 새것으로 바뀌어버렸는데요"라며 감사 인사를 드리고 구두 수선방을 나왔다. 
비록 오래 신고, 닳고 낡았지만 굽 갈아 신을 구두가 있는것에 감사하자. 그리고 그 구두를 신을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겠다.
늘 마음만은 새롭게, 무엇이든 새것처럼 보려고 하는 마음, 낡은 것도 마음만 고쳐 먹으면 언제든지 내게 밝은 미소를 줄수 있는 모든 것들이 내 주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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