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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생신날 한 턱 쏘고 싶었는데
자식에게 무엇을 받는것이 부담스러우신 우리 부모님
2012-09-22 08:25:43최종 업데이트 : 2012-09-22 08:25:43 작성자 : 시민기자   이수진

가족 중에 제일 먼저 일어 나시는 아버지가 꺼내신 첫마디가 있었다. 멋쩍게 웃으시면서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하신 말씀은 다름 아닌 "나 오늘 생일이야." 셨다. 날짜에 표시를 해놓았고 기억을 꼭 하려고 했는데도 벌써 아버지의 생신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은 미처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먼저 말씀해 주셔서 다행이었다. 

원래 가족끼리 애정표현을 잘 하는 편이 아니라서 사내 대장부처럼 어색하게 생신 축하 인사를 드리고 아침에 나갈 채비를 했다. 그래도 집안 가장 한마디로 '왕'의 생신이신데 그냥 지나칠수가 없어서 여지껏 조금씩 모아둔 돈으로 아버지께 맛있는걸 사다 드릴려고 했다. 

퇴근 하기 전에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장어구이를 사드리겠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1초도 안 지나서 바로 거절을 하셨다. 무슨 돈이 있냐며 쓸대 없는 곳에 돈 낭비 하지말고 필요할 때 쓰라고 하신다. 아버지의 생신기념 식사대접을 하는것이 쓸대 없는 짓으로 추락해버렸다. 아버지는 매년 생신 마다 저런 소리를 하신다. 

항상 매번 자식에게 받는 것은 좁쌀 하나라도 부담스러워 하시며 거절을 하시기 때문에 이번에도 거절을 하실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내심 서운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 고집대로 해보자는 식으로 밀어 붙이기로 했다. 

한해 한해 급속히 늙어 가시는 아버지는 모습을 보면서 기필코 이번 생신에는 보양식 한끼 든든하게 사 드리기로 해서 고집을 부린 결과, 저녁 외식을 할 수 있었다. 내가 택한 보양식은 장어였다. 장어를 전문점에 와서 먹어 보는건 처음이어서 나도 기대가 됐다. 

아버지 생신날 한 턱 쏘고 싶었는데_1
아버지 생신날 한 턱 쏘고 싶었는데_1

아버지도 처음에는 거절 하셨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아하셨다. 한가지 빠뜨린건 생신날에 빠져서는 안 되는 케익 이었는데, 우리 집은 생일날 케익을 사는 일이 없는 풍속을 가지고 있는 집안이라 역시나 케익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장어 두 마리에 5만 5000원이어서 3명이서 총 네 마리를 먹고 막국수를 먹었다.
그냥 평소에 먹던 장어의 맛과는 분명히 달랐다. 퀄리티부터 남 달랐으며 소금구이 장어도 맛있었고 빨갛게 양념구이를 한 장어도 맛있었다. 

개인적으로 소금으로만 간을 한 장어를 진한 간장같은 소스에 찍어 먹는것이 굉장히 맛이 좋았다. 장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구워 주는건 점원이 다 해줘서 먹기만 하면 됐는데, 그 와중에도 부모님은 잘 드시지도 않고 다 구워 놓은 장어만 이리저리 뒤집으시면서 자식들 챙기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이것 저것 시켜서 대략 13만원이 나와서 지갑 속에 고이 모셔운 나의 자랑스런 카드로 결제를 하려고 하는 순간에 점원이 이미 계산이 완료 됐다고 했다.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러 잠깐 나갔다 오시는 길에 계산을 하신 것이다. 좀 생신같이 특별한 날에는 자식들한테 얻어 먹기도 하시지, 왜 그렇게 고지식하신거냐고 막말이 나왔다. 
부모님은 항상 그러셨다. 용돈 삼아 담뱃값이라도 하시라고 주머니에 2만원을 아주 가끔 넣어 드려도 절대 받으시는 적이 없다. 자식에게 갚을 은혜가 많아서 부모로 태어났다곤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한다. 

아버지는 아주 나중에 정년 퇴직을 하신 후에는 그때 내가 사주는 맛있는 밥을 얻어 먹겠다 하시며, 지금은 부모를 위해 돈 쓰지 말고 자기 자신한테 다 투자 하라고 하셨다. 말은 이렇게 하시지만 정년 퇴직을 하셔도 자식들에게 일년에 딱 한번 있는 생신날 대접을 받는 것도 싫어 하실 것이 분명하다. 여태껏 30년이 아깝도록 내가 본 부모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올해 아버지 생신도 오히려 내가 거하게 얻어 먹은 꼴이 됐다. 아버지께 잘 먹었다는 인사를 뿌듯하게 받고 싶었는데, 내가 아버지께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부족하진 않았냐며 아까전에 장어를 잘 먹던 모습을 보시곤 다음주말에 또 나와서 먹자는 말만 하신다.
언제쯤이면 자식들에게 따뜻한 보양식 한번 마음 편히 받아 보실 생각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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