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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회관에서 열린 경로잔치
2012-09-22 08:57:30최종 업데이트 : 2012-09-22 08:57:30 작성자 : 시민기자   문성희
"안방에 갈비탕 세그릇요. 당면좀 많이 넣어서요!"
"작은방 김치 두접시 갖다 주세요. 저기 식탁좀 치워 주고요"
"경주 아빠, 저 할아버지 댁에 모셔다 드리세요. 할아버지가 다리를 좀 다치셨대요." 

남편과 함께 벌초를 하러 갔던 지난주 일요일이었다. 마을회관에서는 경로잔치 같은 행사가 열렸다. 잔치라고할것까지는 없으나 노인들만 계신 시골 어른들을 모시고 마을회관에서 갈비탕과 과일, 떡을 내어 다같이 한자리에 모여 밥이라도 한끼 하는 자리였다. 고향을 떠난 젊은 사람들이 마련한 일이었는데 다같이 정신없고 분주했지만 참 뜻깊은 행사였다.

해마다 벌초때 고향으로 가던 남편은 3년전부터 시골로 오는 고향사람들끼리 서로 힘을 합쳐 어르신들께 밥 한그릇 대접해드리자고 의견을 모았던 모양이다. 
추석때도 사람들이 모이기는 하지만 그때는 각자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끼리 시간을 가져야 하고, 또한 서로의 처갓집으로들 떠나야 하기 때문에 다같이 음식 먹기가 곤란하므로 벌초 행사때가 제격이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전 까지 나는 어차피 추석때 내려 가므로 추석 2주앞에 하는 벌초행사때는 남편만 갔던 것을, 그 일이 생긴후부터는 나도 따라가게 되었다. 고향에 가서 어르신들 모시는 주방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난주도 그랬다. 나를 비롯해 다른 가족 며느리 4명이 더 왔고, 마을에서 그래도 젊은축에 드시는 50대 아줌마들 세분이 나서서 모두 팔을 걷고 준비를 했다.
그것도 토요일날 하루 먼저 내려가 마을회관 청소부터, 음식준비를 모두 마치고 일요일 점심때 다같이 모인 것이다. 

시골 마을회관에서 열린 경로잔치_1
시골 마을회관에서 열린 경로잔치_1

그날은 정말 왼종일 난리 북새통이고 힘도 들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읍내에 나가 갈비탕 식당을 하는 집에서 맛있는 갈비를 원가에 내주었고, 아줌마들이 팔을 걷고 이런 일을 벌이니까 평소때 바쁘다는 핑계로 집안일 잘 도와주지 않던 남편들까지 나서서 어르신들을 맞이하며 마을회관에는 오랜만에 사람 사는 소리가 시끌시끌 했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분들을 위해 남편들이 몰고간 승용차를 끌고 나와 일일이 모셔 오고 모셔다 드리는 특별 써비스까지 해드렸다. (평소 아내들한테도 좀 그러지...)
인천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다른 주부는 회관 입구 한편에서 혈압을 체크해 드리기까지 했다. 
오후 1시쯤이 넘어서자 새벽같이 벌초를 위해 산으로 올라갔던 사람들이 예초 기계를 멘채 꾸역꾸역 마을회관으로 몰려들었다. 

결국 마을회관은 진짜배기 동네사람들로 가득찬 것이다. 모두 다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니 우리같은 며느리들과는 또 사정이 달랐다.
"어르신 나오셨어요?"
"이게 누구여? 진철이 아닌가벼? 건강들 허지?" 반가운 인사에 "저, 민식이예요. 몰라보시겠어요? 저 아래 서낭당골에 살던..."
"어...어! 그려, 민식이. 그때 수술했다고 들었는디 몸은 괜찮으겨?"라며 뒤늦게 알아보는 어르신까지.

방 안으로 들어와 모자를 벗고 마을 어르신들께 일일이 찾아 다니며 인사를 드리는 젊은 도시 사람들. 몸은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가 살지만 고향 어르신들께는 여전히 고향 사람이고 아들 같고 조카 같고 동생 같은 사람들이다.
밥 먹고 옛날 이야기 하며 왁자지껄한 모양새가 옛 시골 국밥집을 떠올리게 했다. 어르신들은 오랫만에 젊은 말동무들을 만나 지나간 얘기들을 나누시는 모습이 정겨웠다. 어릴적 시골 사랑방에 모이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뵙는 느낌이었다.

연세가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 한분은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와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서 적적하던 기분이 확 풀렸다며 귀가 먹어 말도 잘 안 들리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며 기뻐하셨다. 
어르신들을 미소짓게 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경로잔치를 한다는걸 알고는 마을에 트럭을 몰고 찾아와 생필품을 파는 분이 찬조출연으로 돼지고가 몇근을 내기도 했다. 

"친부모님들과 다를 바 없죠... 에휴, 우리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때 돌아가셨고, 엄마도 60고개 갓 넘기고 가셨는데..."
형님이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다는 남편의 후배는 이렇게 장수하시며 고향에 살고 계신 어른들을 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오래오래 사시면서 자식들 효도 받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드시고 가질 못하신게 마음이 아파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맨날 집에서 게임기와 스마트폰만 만지던 도시의 아이들도 몇이 나와 어른들의 심부름을 하면서 일손을 도와드렸다. 수저도 놓고 신발정리도 하라며 이것저것 시키는 아이들의 엄마는 제대로 가르치는 가정교육이었다. 다음에는 나도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힘을 합치고 성심껏 일한 덕분에 그날 경로잔치는 정말 만족스럽게 잘 끝마쳤다.
농촌에 아이들 울음소리가 끊긴지 오래됐다. 그나마 우리 농촌을 버리지 않고 지켜주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이렇게 어쩌다 한번씩이라도 이분들의 외로움을 달래드리는 일일 것이다. 
내년 벌초 행사가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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