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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만큼 더 소중한게 있을까
2012-09-15 10:51:42최종 업데이트 : 2012-09-15 10:51:42 작성자 : 시민기자   정진혁

"이번 추석때 집에 가지? 엄마한테 용돈 많이 드려라. 돌아가시면 다 끝이니까. 그리고 너네 처갓집에도 꼭 가 보고. 요즘 명절날 처갓집 안가면 집에서 쫓겨난다는거 너도 알지? 나도 차례 지내고 저녁때 매형하고 집에 갈거야. 너는 처갓집에 가고 없겠지만."
이른 아침, 멀리 사시는 큰누님의 전화였다. 여전히 엄마처럼 자상하고 다정다감한 누님. 어릴적에 들에 나가 일하시는 엄마와 아버지를 대신해서 우리 동생들을 엄마처럼 돌봐주시고 보살펴 주셨던 누님이시다.

"그리고, 너네 주소 수원 거기 맞지? 내가 뭐 하나 보냈거든. 그거 잠 잘때마다 발목에 차고 자면 정신도 맑아지고 몸이 가뿐해지고 좋다고 해서 하나 산거야. 너처럼 머리 쓰는 직업은 그런거 한번 해봐. 건강도 이젠 챙겨야지"
이런.... 누님은 동생 건강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얼마 전에 의료기 체험실에서 바이오 건강 기기를 얻어다 매형이 사용을 해 보았는데 그게 아주 효험이 있어서 내것도 하나 샀다며 택배로 보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이런 바다 같은 사랑이 나오는지.

가족만큼 더 소중한게 있을까_1
가족만큼 더 소중한게 있을까_1

시골에 살던 시절. 내가 태어나던 60년대만 해도 남아선호 사상이 여전히 뚜렷하던 시절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들을 못 낳아 소박 맞는 며느리들이 있던 때이니까.
누님은 남아선호가 드셌던 그 시절의 희생자이다. 누나는 공부도 잘하고 재주도 많았지만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형편이 어려운 가난한 집안에서 남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부모님은 누님은 물론 여동생들에게도 공부를 시켜주지 못했다. 

그 덕분에 남자 형제들은 모두 다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다닐수 있었고, 그것은 전적으로 그 당시의 사회상이었다.
누님은 집안 살림에만 머무르지 않고 논밭에 나가 농사도 도왔다. 내가 학교에 갈 때면 교복이나 도시락을 빠짐없이 챙겨 주었다. 

어느 날 고향 마을에서 십리 가량 떨어진 읍내에서 써커스가 열렸다. 컴퓨터 게임과 휴대폰에 몰두 해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써커스는 아무것도 아닌, 거들떠도 안보는 것이지만 그때 당시 써커스만큼 재미있는 공연물도 없었다.
그 써커스를 보지 않으면 친구들과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가난한 살림에 내가 써커스를 볼 돈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부모님께 말씀 드려봤자 "공부나 하지 이놈이..."라는 말씀을 들을게 뻔했다. 

결국 나는 누님에게 투정을 부렸다. 누님은 잠자코 듣더니 치마 속에 감추어둔 지폐를 꺼내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써커스 보다가 배고프면 주전부리도 해라. 배고프면 속이 곯으니까." 
엄마였다. 누님은 내게 천상 엄마 그 이상이었다.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 집에 일이 많지 않은 날, 다른 집에 농삿일을 거들어 주고 받아 둔 품삯이었을 것이고, 먹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긴요하게 쓰려고 모아둔 돈이었을 것이다. 그 돈을 당연한 듯 으스대며 받았던 내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도 철이 없었던지. 

동생들 아끼고, 그렇게 사는게 당신의 팔자려니 받아들이고 처녀 시절을 보낸 누님은 스물 아홉 되던 나이에 결혼을 했다. 그동안 동생들 뒷바라지 하느라 당시에는 무척 늦은 나이인 스물아홉이 돼어서야 결혼을 한 것이다.
그렇게 시집 간 누님의 천성은 어른이 돼서도 동생들 챙기고 엄마처럼 아껴주고 보살피는 마음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러니 나이가 쉰이 다 돼가는 동생에게 건강 챙기라며 바이오 건강기기 같은것도 사서 보내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동생들 생일때마다 전화를 걸어 "내가 옛날에는 너희들 생일때 미역국 끓여 먹였는데... 요즘은 올케들이 잘 끓여 주지? 아침밥 꼭 챙겨먹고 출근해라. 아침밥이 보약이니까"라며 염려를 해 준다.
긴 생머리가 치렁치렁 하고 얼굴도 예뻤던 우리 큰 누님. 이제는 슬슬 며느리 볼 날이 다가오는 나이가 됐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누님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 

누님이 더 연세가 드시기 전에 매형과 함께 여행이라도 보내드려야겠다. 동생들 걱정일랑 그만 하고, 좀 쉬다 오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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