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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후에는 정든 집을 떠나야 한다
전세여도 행복했던 2년의 시간
2012-09-20 11:05:08최종 업데이트 : 2012-09-20 11:05:08 작성자 : 시민기자   이소영

유독 집에 목숨 거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집이 그저 의식주를 해결하는 곳 그 이상 인 듯하다. 지속된 전쟁과 식민지 속에서 집 잃고 헤맸던 민족인지라 집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한지도 모르겠다. 
부동산 열풍이 한창 거세질 때는 대출을 끼고서라도 몇 채씩 장만하기도 했고, 그들 중 몇%는 지금 그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집은 으리으리해도 사실상 형편은 굉장히 살기 힘든 하우스 푸어 족이 많다고 TV에서 연일 떠들어대고 있다. 그래서 그런 한국인을 풍자하기라도 하는지 '강남 스타일', '나 이런 사람이야'와 같은 노래가 승승장구 하는지도 모르겠다.

'학벌이 어디더라, 돈벌이 어디더라, 연봉이 내 명함이고, 차가 내 존함이고, 집이 내 성함이고, 참 유감이고. -나 이런 사람이야 '-DJ DOC 노래 중

나도 전형적인 한국인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이라 그랬는지 집에 대해 갖는 애착과 집착이 작지만은 않은 듯하다. 집은 집 그 자체 이상으로 주는 편안함이 있으니까. 그러기에 여전히 볕이 들어오는 넓은 서재로 이루어진 다락방 같은 집을 꿈꾼다.

2년 전 겨울. 예고도 없이 엄마는 이런 말을 하셨다. 
"우리 집 팔렸다." 나와 동생은 자동반사적으로 "왜!" 소리를 질렀다. 언젠가는 이사를 가야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갑자기 살던 집과 이별할 준비가 나와 내 동생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셨다. 집을 내놓았던 것도 아니고, 지인께서 부동산을 하셨던 터라 지속된 부동산 경기 침체로 기회가 오면 얼른 팔아야 한다는 조언에 팔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동생과 나의 두 번째 반응은 이랬다. 
"그럼 어디로 이사가?" 엄마의 말은 우리 둘의 머릿속을 더 패닉으로 빠트렸다. "아직 몰라. 얼른 알아봐야지. 갑자기 팔리는 바람에 그쪽이 급한가봐. 그래서 시가보다 꽤 높은 가격에 팔았다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말씀하시던 엄마. 언제나 엄마와 아빠는 법 없이도 살 사람들, 계획성 있고 원리 원칙으로 사는 사람들이셨다. 그런데 이렇게 예상 밖의 행동을 하실 때도 있으셨는지!

엄마는 한 달 동안 평일에는 일을 나가시니 주말을 이용해 집을 보러 다니셨지만, 한 달 이라는 시간 안에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지금의 아파트로 2년 계약 전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마음에 드는 집이 없으니 여기서 잠깐 살아보면서 찾아보자. 평수는 그래도 넓다?" 동생은 묵묵히 알겠다고 했지만 철없는 나는 굉장히 신경질을 많이 냈다.

"원래 주인 대출 내역서 다 뽑아봤어? 빚 꽤 많다는 사람이라며. 경매 넘어가서 결국 이 아파트 우리가 사게 되는 거 아냐? 선순위 채권자들 때문에 우리 빈털털이 되는거 아니냐구."
뭔 소리래 싶지만 생각해보면 이 걱정은 오버다. 단지 나는 오래된 아파트. 더군다나 재개발, 리모델링 이야기까지 나오는 아파트라 싫었던 것이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누군가 "어디 살아요?" 질문에 대답할 용기가 안나거나, "집 데려다 줄게요." 라고 지인이 혹여나 말했을 때 "여기에요. 우리 집"이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 적응력이 뛰어났던 나는 어느새 이 집에 정을 붙이고 살았나 보다. 전세를 싫어했던 나는 어느새 '현금 보유량이 좋다. 외국도 전세는 많다.' 등등으로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또 교통편도 서울로 가는 것이 참 괜찮고, 역으로 나가기도 편하며, 공원도 가까이 있고, 단점보다 장점을 더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이 집을 사랑하기 시작하니 사람들의 생각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했고, 나를 데려다 준다는 지인의 말에도 "여기에요. 우리 집"하게 되었다. 그렇게 1년 반을 살았다. 반년은 정을 못 붙인 세월이다. 모든 것은 단지 내 마음의 문제였던 것이다. 

한달 전. 다시 2년 전과 같은 날이 왔다. 엄마의 문자 한 통. "우리 집샀다."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와 아빠는 휴가기간 동안 집을 보러 다니셨고, 그리하여 결국 2년 만에 정식적인 우리 집이 생긴 것 이다. 
새로운 우리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현재 평수보다도 9평은 넓고, 4억이나 더 비싸다. 주인이 급하게 이사를 나가야 해서 우리에게 싸게 판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들.

하지만 나는 기쁘지만은 않았다. 왠지 모를 슬픔과 씁쓸함.
물론 새로운 집에 가면 또 다시 정을 붙이며 살겠지만, 이 집을 떠나기가 아직은 슬픈 것이었다.
빼곡히 둘려 쌓인 아파트 속에서 아파트와 아파트를 마주보며 산다는 요즘 같은 시대. 베란다 전경만큼은 죽여줬던 2년간 살았던 우리 집.

 

3주 후에는 정든 집을 떠나야 한다_1
3주 후에는 정든 집을 떠나야 한다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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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후에는 정든 집을 떠나야 한다_2
3주 후에는 정든 집을 떠나야 한다_2

처음으로 우리 집 베란다 모습을 찍었다. 소파에 앉아 홍차 한 잔과 책을 읽으며 베란다를 바라볼 때면 숲 속에 온 듯한 느낌이 들어 온 가족이 좋아했던 이 곳.
여름이면 울창한 초록빛 향연에, 가을이면 알록달록 낙엽의 왈츠에, 겨울이면 눈꽃에 반했던 이 곳. 우리 집이 떠나고 새 주인들도 이곳에서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바라며 이제는 행복한 작별을 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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