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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월급 나눈 내 장조카 참 기특하다!
샐러리맨들에게 첫 월급이란?
2012-09-20 23:14:37최종 업데이트 : 2012-09-20 23:14:37 작성자 : 시민기자   최종훈
"너희들, 중간고사가 얼마 안남았는데 공부 안하냐?"
"에이, 아빠는? 공부가 인생에 전부는 아니잖아요"
"뭐라구? 맞아 맞다구. 하지만 그게 그래도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에 공부들 하는거잖아. 밤새워서 말야"

"저는 공부 말고 다른 쪽으로 적성이 맞는거 같아요. 아빠, 제가 나중에 첫 월급 받으면요 그걸로 아빠 해외여행도 시켜 드리고, 월급 받는거 계속 모아서 자동차도 멋진 스포츠카 뽑아 드릴께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헤헤헤"'
"멋진 스포츠카? 쓸데 없는 소리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이녀석아. 자다 말고 요강 들고 나가는 소리 말고. 다른 애들은 말 안해도 알아서들 공부한다드만, 너희들은 어떻게 매일 딴짓만 하냐? 밥 먹고 왼종일 책과 씨름 하라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예습복습은 해야 하는거 아니니? 너희들 학원보내는거는 누가 돈 대주는건줄 알어? 땅 파봐라, 돈 나오나 이놈아. 어떤 애들은 학원 근처도 안가고 잘 한다두만. 이 아빠 등짝 휘어진거 안보이냐?  살이 쪄서 뼈가 안보여서 그렇지 속은 다 휘었다. 이놈들아."

아들의 스포츠카 운운에 내 연설이 좀 길어졌다.
가만히 듣고 있던 고등학생 큰 딸이 기어코 한마디 거든다. 
"아빠, 자다 말고 요강은 왜 들고 나가는데? 몽유병 환자야?"
"으이구 이 놈을 그냥..."
아이가 잽싸게 제 방으로 도망간다.
이 에피소드는 우리집 천하태평 중2인 아들과 고2인 딸내미와 내가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월급에 대한 기억은 남다를 것이다. 설레고 떨리고 기쁘고 감격스럽고...
사람마다 약간씩 다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네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은 월급에 울고 웃지 않나. 
아들놈은 그래도 첫월급으로 제 애비 해외여행을 시켜준다고 했으니 믿거나 말거나 기대해 볼 작정이다. 약속만 안지켜봐라 이놈... 

우리네가 직장에 다니던 90년대초에 이 첫 월급 사용 방식은 부모님께 내복을 사다 드리는 것이 기본이었다. 지금이야 세월도 많이 변하고 생각도 변해 이젠 내복이 아닌 현금이나 휴대폰, 노트북, 여행 등 아주 다양하다고 하지만...

첫월급 나눈 내 장조카 참 기특하다!_1
첫월급 나눈 내 장조카 참 기특하다!_1

얼마전, 우리 온 가족이 모인 아버님 생신에 화제는 단연 장조카의(큰형님의 첫째 아들) '첫 봉급'이었다. 취직해서 7월말에 처음 월급을 탄 조카아이는 식구들을 한자리에 모으더니 봉투 하나씩을 내밀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것에는 각각 30만원을, 작은 아버지인 나와 작은엄마인 아내에게는 20만원을, 그리고 제 여동생 것에는 10만원을 담았다. 

그리고 30만원은 제녀석 친구와 함께 봉사활동을 다녔던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했다며 거기에 더 많이 못해서 죄송스런 마음이라는 말까지 했다. 
조카의 말을 들으며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꾸준히 봉사활동을 다닌것도 훌륭한데 거기에 첫 월급을 쪼개 기부까지 했으니 그 마음 씀씀이가 대견했다.

그런 감동을 준 조카는 이어서 첫 월급은 식구들이 나눠 썼으면 한다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쓴 것이다. 그리고 다음 달부터는 제 용돈 30만원만 남기고 나머지는 저축해서 집을 따로 마련하겠다고 했다. 
장조카는 어려서부터 소심하되 착했고, 영리하되 허약했다. 그래서 입대 후 전방에서 근무할 때는 할머니의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본인도 꽤나 힘들어했다. 

하지만 제대 후에는 심신이 모두 강건한 젊은이로 변해 공부에도, 아르바이트에도 적극적이 되었다. 그야말로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던 과거 어른들의 말씀 그대로였다. 
거기다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하였으니 스스로 앞가림은 하게 됐다. 게다가 가족을 배려하고 제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 씀씀이를 보면 앞으로도 성실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자세가 돼 보여 어찌나 대견스러운지. 

그런 장조카를 보면서 내가 20여년전 첫 월급을 탔을때가 떠올랐다.  경제학도였던 내가 드디어 첫 직장으로 취직한 조그만 무역회사. 작은 회사의 평사원이 뭐 그리 대단할까만, 그래도 나에겐 생후 맨 처음 갖는 직장인 만큼 가슴이 사뭇 부풀어 있었다.
근무 한 달 후, 나는 팽창된 가슴을 억누를 수 없어 두 손을 모으고 부처님의 은혜에 다만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한달간을 열심히 뛴 나의 손엔 월급 액수가 찍한 파란 예금통장이 쥐어진 것이다.

생후 맨 처음 받아보는 이 월급, 완전한 성인로서의 책무와 노력으로 받은 첫 댓가, 그 기쁨은 참으로 컸다.
이 돈을 어디에다 써야 좋을까. 회사 문을 나오면서 한참을 생각한 끝에 시장에 가서 부모님 내복부터 샀다. 주워 들은건 있어서... 그리곤 그동안 읽고 싶었던 서너 권의 책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책갈피에다 날짜와 싸인과 '월급의 기록'란 글씨를 소중히 써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번에 가족들과 사회복지시설에 마음을 베푼 장조카 같은 그런 쎈스가 내겐 없었던것 같다.
내 첫월급 때와 비교해 보니 마음이 바르고 건강하게 잘 자란 조카 덕분에 유쾌한 아버님 생신날 아침이었다. 
앞으로 사회에 나서는 우리 수원의 모든 젊은이들이 장조카처럼 견실하게 사회생활, 가정생활, 직장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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