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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없어도 아름다운 가짜
2012-09-14 12:02:32최종 업데이트 : 2012-09-14 12:02:32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애

세상에 모든 것이 다 생명이 있는건 아니다. 내가 쓰는 볼펜, 컴퓨터, 이불, 신발 등. 
이런 것들은 생명이 있지 않으므로 숨을 쉬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들은 비록 숨쉬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자기가 만들어진 목적에는 너무나 충실한,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자기 직분에 충실해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생명이나 향기가 없으면서도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어주는 것중에는 가짜 꽃도 있다.
유명한 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도 나온다.
폐렴으로 죽어가는 주인공 여성을 살려낸 담쟁이 잎사귀 하나, 떨어지는 잎을 보며 생명을 포기하고 있던 그녀에게 소생의 가능성을 가져다 준 것은 어느 화가가 그려 놓은 가짜 담쟁이 잎사귀였던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 화가에게 가짜 담쟁이 이파리를 달아 놓고 사람을 속였다고 탓할 사람이 있겠는가.

시민기자의 집 근처에 은행이 있다. 늘 이용하는 은행이라 마치 내집 드나들듯 익숙하고, 은행 직원들과도 안면이 익혀져서 스스럼 없이 인사도 나누며 지낸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은행에 가노라면 언제나 고운 꽃이 꽂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무늬가 아름답게 수놓아진 화병에다 수국이 탐스럽게 꽃혀있기도 했지만 칸나나 백합 그리고 프리지어나 장미꽃같이 아름다운 꽃들을 바꾸어 가면서 수반에 다 꽂아 놓기도 했다.

 

생명이 없어도 아름다운 가짜_1
생명이 없어도 아름다운 가짜_1

나는 은행의 꽃이 자주 바뀌는 것을 보면서 그 날 꽂혀 있는 꽃이 다소곳해 보이는 날은 맨 왼쪽 창구의 직원이 꽂아 놓았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또 백합이 우아한 미소를 보내고 있는 날은 명랑한 얼굴의 가운데 창구 직원이 꽃을 선택했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차례를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이면 나는 나도 모르게 꽃과 여직원들을 연결시켜 보곤 했다.

장미와 안개꽃, 그 두 가지의 꽃은 참으로 잘 어울렸다. 오만하고 화려해 보이는 장미를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보이는 안개꽃이 장미의 단점을 보완해 주며 오히려 장점으로 바꿔주고 있었다. 
만약에 장미만 풍성하게 꽂아 놓았다고 생각해 보니 그 화려한 색깔과 찬란함과 그리고 그 강렬한 향기에 오히려 은행을 찾는 고객들이 불편을 느낄것만 같았다. 특히나 시민기자 같은 서민들에게 너무나 화려한 장미꽃은 유독 더 그래보였다. 

어쨌거나 은행에 갈때마다 그 꽃들의 자태에 놀라고, 꽃이 풍기는 이미지에 취해 보고, 꽃의 화사함으로 인해 내 마음도 편해지고 좋다는 느낌을 얻었다. 역시 꽃은 우리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안식처 같은 편안함을 주는 식물이다. 고맙게도.

어느 날 꽃꽂이 해 놓은 백합이 참 아름답게 생각되어 꽃 가까이 가서 코를 갖다 대 보았다. 그런데 은은하게 향기가 흘러나와야 할 백합꽃에서는 아무런 향도 나지 않았다. 
나는 머쓱해지면서 꽃잎을 만져 보았고 그제야 그것은 향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가짜 꽃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연두색 이파리 위로 봉곳이 꽃잎을 열어 보이는 프리지어의 모습을 보고도 나는 가짜 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금방이라도 이슬이 또르르 흘러내릴 것 같이 맺혀 있는 장미꽃을 보고도 그것이 가짜 꽃이었고 거짓 이슬이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으로 만져 보거나 향내를 맡아보지 않고도 참 꽃인지 가짜 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꽃, 지금까지 나를 매혹시켰던 그 모든 꽃들은 가짜 꽃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가짜도 이 정도면 놀라웁기만 한 기술이다. 어쩌면 이렇개 감쪽같이 속일수 있었을까. 아니, 혹시 다들 한눈에 알아차린건데 둔하디 둔한 나만 모르고 있었던건 아니었을까.
이왕에 꽃을 꽂으려면 향기가 물씬 풍기는 진짜 꽃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는 했다. 그러나 진짜 꽃을 언제나 싱싱하도록 꽂아 놓으려면 그 꽃값이 어디 한두푼이 아니니 그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가짜 꽃을 꽂아놓은 것이었을테니.....

그게 비록 가짜 꽃이었다 한들, 그정도로 사람을 감쪽같이 속여 은행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 밭을 촉촉하게 적셔 주고 아름답다고 감탄의 소리가 나오게 만들었다면 일단 꽃으로의 사명은 어느 정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늘 가짜를 욕한다. 물론 가짜를 이용해 상대방을 속이고 그걸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은 나쁘다. 
그런게 아닌 가짜, 선의의 가짜. 이렇게 인공으로 만든 조화 같은 가짜 꽃도 사실은 알고보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짝퉁이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편하고 밝게 만들어 주니 이런 가짜는 좀 있어도 괜찮겠다 싶다. 

그리고 그런 가짜에는 굳이 "왜 생화를 꽂아 두지 않았냐"는 질책이나 항의 보다, 그 가짜만으로도 우리는 잠시나마 시름을 덜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수 있음에 감사할줄 아는 여유도 가져 볼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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