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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기다리는 마음
2012-09-14 13:26:10최종 업데이트 : 2012-09-14 13:26:10 작성자 : 시민기자   김기봉
이른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셨다.
"너 요번에 오믄 국 끓여주까?"
국. 어머님이 말씀하시는 그 국이란, 내가 고향에서 살던 어릴적 1년에 딱 한번 씩만 얻어 먹어 보는 잡뼈 시레기국이었다.

해마다 가을철 추석때면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좋아하는 그 국을 꼭 끓여 내어 먹여주셨다.
그 국을 워낙 좋아하니 아들이 장성해서 일가를 이룬 지금까지도 추석때만 되면 그걸 준비하신다. 그리고 듬뿍 끓여 두고두고 먹으라시며 싸 주시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물어오신 것이다.

어머님께 힘드신데 이제 그만 하셔도 된다 했지만, 어머니는 벌써 소 잡뼈를 구하러 시장에 나가실 채바를 다 해 놓으셨다.
어머니의 고마운 전화를 끊고 나니 정말 얼마 안 있으면 추석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살짝 흥분된다.

고향의 부모님, 가족형제, 친구와 친척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고, 다른 어떤날 보다 괜스레 설레는 마음이 좋다. 
우리에게는"추석이다"하는 이 한마디에 모든 이들의 가슴이 설렐 것이다. 잘 익은 벼가 금빛 물결을 이루는 그리운 고향 가는 길, 그 어떤 길보다 아름다울 것이다. 

사람들의 두근거리는 마음이 그대로 금빛 들판에 어릴 때, 추석은 그 특유의 풍요로 새롭게 다가온다. 이동원의 노래 향수에 나오는 가락 그대로'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게를...'하시는 그 모습이 벌써 선하다. 
절기는 거짓이 없어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다. 다음주 토요일인 22일은 추분이고 가을은 가을의 그 걸음새로 우리 곁에 성큼 와 있다. 차가워진 아침만큼이나 한가위를 맞이하는 마음도 깊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명절 아침의 그 쌀쌀하고 아스라한 느낌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때 올려다본 높고 푸른 하늘은 그 어떤 그림과 맞바꿀 수 있을까. 명절이 다가오니 현실의 번거로움도 잠시나마 잠잠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에는 부모님을 찾아뵈러 자식들이 고향에 찾아가는 것보다 부모가 아들, 딸이 사는 곳을 찾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자식들이 바쁘니 부모님이 대신 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빽빽한 아파트 숲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우리 부모님들의 뒷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안쓰럽다. 무성하던 파란 잎들을 다 떨어낸 외로운 고목처럼 그대로 그 자리에 못 박혀 버릴 것만 같다. 
작년에도 도심 한복판에서 추석 전날, 시골에서 올라오신 어느 노 할머니 할아버지가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택시에서 내려 하눌 높이 치솟은 아파트 단지위를 휘휘 둘러보시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도 아들네가 사는 집이 몇동인지 몰라 그러시는듯 했다.
높디 높은 하늘은 속절없이 외로운 부모님의 속을 외면하고, 따가운 가을 햇볓만 내리쬘 뿐이었다. 

자꾸만 고향 가는 일을 줄이고 외면한다면 이제 고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디나 마음 붙이고 살면 그곳이 고향이라 하나 요즘엔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도시에 살고 있는 자식들의 집에 부모님이 찾아와도 고작 옹색한 방 한 칸 내어드리는 것이 전부 아닌가. 

추석을 기다리는 마음_1
추석을 기다리는 마음_1

삶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절대 변할수 없는게 있다. 차례상에 색색 맞추어 올라가는 과일들을 매만지고, 떡과 생선과 육전과 한과를 다소곳이 차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그 모습은 변할수 없는 것이다.
그런 고향을 떠나 콘크리트로 발라진 낯선 도시의 아들에게 올라온 부모님은 그저 먼 곳만 보신다. 높은 아파트 창가에 서서 내려다보는 아파트단지가 낯설기만 하다. 

손자 손녀들은 자신의 방으로 냉큼 들어가 문을 확, 닫을 뿐이다. 그리고 명절은 끝난다. 바리바리 싸온 참기름이며, 깨소금이며 하는 것들은 며느리의 공치사에 묻히고 부모님은 외로운 아파트에서 쓸쓸한 그림자만 남기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외로운 고목 두 그루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다. 자식들의 눈초리가 아버지 어머니 나가신 길을 잠시 머물다 흩어진다. 

이렇게 자꾸만 더 이상 고향에 가지 않는 자식들의 추석 풍속도는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자 손녀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낯설게만 느껴지고 그를 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눈빛은 연민으로 더욱 깊어질 것이다. 고향 내음에 흠뻑 젖어 있는 부모님의 선물이 더 이상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시민기자는 개인적으로 말하고 싶다. 정말 정말, 단 한발짝도 움직일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니라면, 단 1시간만 고향집 안방에 머물다 오더라도 추석 명절만큼은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내려가자고.
그곳엔 부모님과 가족 뿐만 아니라, 묵묵히 농사 지으며 고향을 지켜낸 옛 친구 선후배들이 고향 떠난 나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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