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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설레임..손수 만든 선물의 가치
선물 = 가격 + 실용성?
2012-09-17 23:03:11최종 업데이트 : 2012-09-17 23:03:11 작성자 : 시민기자   이연자
서울에 사는 친구가 놀러 왔다. 우리가 수원으로 이사 온 후 첫 방문이라고 화장지와 세제를 사왔다. 화장지와 세제는 집들이 선물의 클래식이다. 친구는 선물의 의미처럼 잘 풀리고 부자되라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한참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보통은 집에 오자마자 집안 구석구석을 구경하는데 수다떠느라 정신이 없어서 돌아가기 직전에 집구경을 시켜줬다. 

친구가 이곳 저곳 보다 우리의 이부자리를 보고는 침대생활을 하지 않는 것을 진작에 알았다면 여름 이불과 베개를 만들어 왔으면 좋았을걸 하며 아쉬워했다. 친구는 이불과 베개를 집안 분위기에 맞게 만들어서 보내준다고 약속하고 돌아갔다. 말만 들어도 따뜻하고 고마웠다. 

우리 가족은 솜이불을 좋아한다. 솜이불을 좋아하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부모님이 집에서 만든 목화솜으로 손수 만들어 주셨기에 더욱 애착이 가기 때문인 듯 하다. 우리는 언제나 부모님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는 이불을 포근하게 덮고 잔다. 
아이들도 유난히 외할머니가 만들어 준 이불을 좋아해서 어릴 때 낯선 곳에서 잘때는 반드시 이불을 챙겨다녀야 할 정도로 이불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딸 아이는 기분이 안좋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면 이불 속으로 들어가 머리위까지 이불을 덮고 있는다. 자는 거 같지만 자는게 아니란다.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편안한 동굴같다고 한다.

친구가 우리집을 방문하고 돌아간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예상하지 못한 택배가 왔다. 꼼꼼하고 단정하게 포장된 박스 안에는 그 친구가 손수 만든 이불과 베개가 들어 있었다. 
따뜻하고 밝은 색상에 꼼꼼한 바느질의 이불과 베개는 마치 그 친구를 연상케 했다. 정성과 애정이 듬뿍 담긴 선물이다. 내가 졸아하는 모습과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만들었을 것이다. 이불을 만드는 내내 친구를 생각하며 만들었기에 힘든것도 잊고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이불을 덮고 있으면 그 친구의 마음까지 더해져 포근함이 두 배가 되는 것 같다.

정성, 설레임..손수 만든 선물의 가치  _1
친구가 손수 만들어 선물해 준 침구세트

며칠동안 친구의 정성에 대한 답례의 선물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정성과 시간이라는 가치앞에서는 별 것아니게 느껴졌다. 고민끝에 나도 친구를 위해 무언가를 손수 만들어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나는 친구처럼 침구를 만드는 재주도 없었다. 나름 전공을 살려 조각을 해서 보내 줄까도 했지만 실용성이 없는 거 같아 관뒀다. 

생각의 생각을 한 끝에 '아! 이거다!' 싶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다기와 다도상을 선물 받았다.우리 가족이 차 마시는 걸 즐기고 그 모습이 보기 좋다며 선물해 주셨다. 잔의 받침이 없어 실제 다도를 즐기기보다는 장식용으로 더 적합한 다기세트인데 찻 잔 받침을 만들면 그 분을 생각하며 자주 사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무로 찻 잔 받침을 만들어 보려 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친구도 다기세트를 구비해 놓고 다도를 지켜 차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찻잔 받침을 만들어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나무도 없고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할 지 좀 막막했다. 우선 질 좋은 나무부터 구하기로 했다. 나무는 시골 친정집에 가면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갔다. 친정에 방문할 목적이 있긴 했지만 오로지 찻잔 받침을 위한 나무만을 생각했었던지 도착하자 마자 아버지에게 재료로 쓸 만한 나무가 있는지 여쭤봤다.

마침 작년 태풍에 쓰러진 참중나무가 있다고 하셨다. 한 걸음에 달려가 나무의 상태를 살폈다. 나무 속이 단단하고 약간 붉은 색을 띄고 있어 내구성면에서나 디자인면에서나 안성맞춤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참중나무는 모양이 변하지 않아 찻 잔 받침의 용도에 적합하다고 한다. 찻잔 받침으로 쓰기 좋게 굵기가 적당한 것을 골라 작업하기 편하게 적당한 두께로 서툰 톱질을 해가며 잘랐다. 
과하다 싶을 만큼 여러 조각을 잘라왔다. 갑자기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마구 스쳐지나갔다. 생각이 앞 선 결과였다. 

찻 잔 받침 하나가 탄생 하기까지는 긴 세월, 사람의 노동력, 작품성 그리고 사랑의 손길이 필요하다. 나무를 가지고 조각을 해봤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나무의 표면을 부드럽고 평평하게 다듬는 초기단계부터 인내와 팔 근육통을 참아내야 한다. 
찻 잔 받침이 다 거기서 거기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두께에 따라 손으로 전해지는 차의 온기가 차이가 나고 나무의 결을 자연스레 살려내야 하기 때문에 사전 계획과 준비는 필수이다. 현재 나무결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사포를 찾는 단계에 있다. 거친 강도에 따른 여러 종류의 사포를 가지고 나무를 다듬어 보고 있다. 

찻 잔을 놓았을 때 움직이지 않게 가운데 부분이 우묵하게 푹 들어가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나무가 워낙 단단해 웬만한 힘으로는 1mm도 파내기 힘들고 힘을 세게 주면 움푹 패여야 하는 위치밖으로 날카로운 조각칼이 경로이탈을 한다.

정성, 설레임..손수 만든 선물의 가치  _2
친구를 위해 손수 만들 찻 잔 받침

그나마 다행인 것은 좋은 나무를 어렵지 않게 구했다는 점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수월하게 출발했으니 친구가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만들다 보면 많은 난관과 인내를 요하는 작업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토록 손수 만든 선물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손수 만든 선물과 시중에서 사서 선물하는 기분은 정말 다르다. 손수 만들어 선물하면 받는사람은 물론이고, 주는 사람도 뿌듯하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가를 직접 만들면 시작부터 끝까지 오롯이 그 한 사람을 생각하며 만들게 되고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존재가 된다. 

물론 전문가의 솜씨에 비하면 투박하고 엉성하기 그지없겠지만 그 가치과 주고 받는 두 사람의 정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리고 만든 사람의 정성이 묻어있고, 노고가 깃들어 있어 더욱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손수 만든 선물이 빛을 내품으려면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로 전달되어야 한다. 우스갯소리로 가장 받기 싫은 선물이 '종이학 천마리' 또는 '십자수'라고 한다. 우리 때는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종이학 천마리를 접어 유리병에 담아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 종이학을 접은 정성, 시간 그리고 받는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까지 녹아있는 인기있는 선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요즘은 정성보다는 실용성을 더욱 따지는 것 같다.
심지어 젊은 세대에서 생일을 맞은 사람이 받고 싶은 선물리스트를 정해놓고 친구들은 그 중에 골라서 선물하는 서양 문화가 자리잡히고 있다고 한다. 이왕이면 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을 선물해 주는 것도 합리적이긴 하지만 웬지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 거 같아 씁쓸하다.

정성, 설레임 그리고 놀라움이 빠진 선물은 물건에 불과하다는 게 개인적인 견해이다. '무엇이 필요할까? 어떤 디자인과 색이 그 사람과 더 어울릴까?'를 고민하며 집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 선택한 선물에는 그 사람을 향한 정성이 있다. 정성이 깃든 선물은 받는 사람이 얼마나 기뻐할 지 상상하는데에서 설레임 또한 선물에 담긴다. 단어만 들어도 밝아지는 정성과 설레임이 담긴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 기분 좋은 놀라움까지 선물한다. 

내 친구는 손수 만든 선물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가끔 시골 친정에서 가져온 곡식이며 채소를 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쉽게 마트에서 사다 먹을 수 있는 것들인데도 부모님께서 직접 농사지은게 아니냐며 부모님의 땀이 고스란히 베어있는 것이기에 귀한 것이라며 항상 잘 먹겠는다는 인사를 거듭한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께 직접 전화를 드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가끔 찾아뵈면 보내주신 곡식값이라며 용돈을 꼬박꼬박 드린다.
손수 만든 선물의 가치를 아는 이런 친구가 내가 직접 만든 찻 잔 받침을 선물받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벌써부터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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