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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
2012-09-18 11:56:58최종 업데이트 : 2012-09-18 11:56:58 작성자 : 시민기자   김순자

퇴근후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학원에서 돌아와 제 방안으로 들어간 아이가 인기척조차 없이 조용했다. 이녀석이 뭘 하길래 이렇게 조용한가 싶었지만 공부를 하든 책을 보든 뭔가 집중하고 있으려니 싶어 큰 관심 두지 않았다.

식사 준비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갑자기 아이 방문이 덜컹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아들녀석이 튀어 나오며 "엄마, 이것 좀 보세요"라며 눈이 휘둥그래져서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 이것 보세요. 달팽이예요. 이 달팽이가 살아 있잖아요." 
정말 아이 손톱만한 살아있는 달팽이였다. 시장에서 사온 채소를 다듬으면서 버린 껍질이나 줄기에 붙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어찌하여 아이 방에까지 간걸까.

며칠전,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주방으로 와서 물을 먹으려다 보니 주방 쓰레기통에 다듬다가 버린 채소 줄기가 보였단다.  그걸 음식 쓰레기통에 넣으려고 하다 보니 이 조그만 달팽이가 살아서 꿈틀거리더라 했다.
아이는 그 조그만 생명체, 농약을 안한 친환경 농법 덕분에 잘 살아서 채소에 붙어있던 고녀석을 그냥 죽게 내버릴수가 없어서 줄기와 함께 통째로 제 방에 갖다 놨던 것이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_1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_1

그 달팽이가 상추나 배추 이파리 같은 것을 먹고 산다고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어릴적에나 보았던 달팽이를 도시 생활 하면서 콘크리트 숲에서 보니 느낌이 남달랐다.
그러면서 아이는 혹시나 집안 살림 하기 바쁜 엄마가 수돗물을 틀어 그 달팽이를 배수구로 몰아 넣을까봐 얼른 "엄마 달팽이 담을 그릇 주세요. 제가 키울게요"라고 한다. 
자라는 모습 관찰하면서 일기도 쓰면 자연공부도 되고 좋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더러운 배수구에 빠져 죽으면 불쌍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아이의 자연공부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세상 모든 생명체를 파리목숨만큼도 안 여기는 세태에 조그만 달팽이의 생명마저 소중히 여기는 아이가 기특해서 큼직한 유리컵 하나를 얼른 집어주었다. 
달팽이를 컵에 담고 이제는 먹이를 사러 가겠다고 나서려고 했다. 
나는 "얘야, 달팽이는 아마 습기 있는 곳에서 푸른 채소를 먹고 자랄거야"라고 말하며 금방 씻어 소쿠리에 건져 둔 나물 중에 청경채와 오이를 좀 썰어 두조각을 함께 컵 속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서 "환경이 달라져서 어쩌면 죽을 지도 모르니 실망하지 말아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아들 녀석은 그 후로 틈틈이 들여다 보면서 달팽이와 얘기를 나눈다. 학교에 가면 간다고, 다녀와선 다녀 왔다고, 밥 먹을 땐 밥 먹으라고, 심심할 땐 같이 놀자고, 잘 땐 잘 테니까 너도 잘 자라고...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처음보다 훨씬 많이 자랐다. 나 역시 살아 있는 달팽이를 정말 오랜만에 본 것 같다. 어렸을 적 텃밭에서 이른 아침이나 안개비 내리고 난 뒤 쯤이었을까. 
마치 이슬을 받아 먹은 듯 여린 채소밭 한켠에서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가 이렇게 달팽이를 만나지 못했으면 아이는 평생 달팽이를 못 보고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우연히 찾아 든 달팽이가 고맙기 까지 하다. 

지금은 그래도 사라졌지만 약 10년전까지만 해도 동네 어귀에 설치된 가재나 병아리 등을 건져올리는 흉물스러운 놀이기구가 있었다.
어른들의 잘못된 그 장삿속 때문에 아이들이 동전을 넣고 살아있는 가재와 병아리를 들여다 보며 잔인하게 집게로 잡아 들어올리는 것을 봤을 때 느꼈던 섬뜩함이란.

그런 놀이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 비하면 우리 아이의 유별스러운 달팽이 키우기는 그래도 대견하기만 하다. 
아이는 오늘도 싱싱한 채소를 넣어 주면서 말한다. 
"달팽이야, 너는 공부 안해서 좋겠다. 하하하. 그래도 우리 가족이 됐으니까 내가 공부하는거 응원해줘. 알았지?"
아이의 바램을 달팽이가 알아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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