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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깨 고구마를 캐면서
2012-09-21 09:31:44최종 업데이트 : 2012-09-21 09:31:44 작성자 : 시민기자   좌혜경

"얘들아. 고구마 줄을 위로 쭉 잡아당기면 돼. 줄기가 끊어지면 호미로 흙 밑 부분을 파 올리면 되는데 이때 고구마를 호미로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돼. 알았지?"
초등학생 둘과 중학생 하나, 이렇게 아이 셋을 데리고 지난 주말에 친정엄마가 계신 시골로 고구마를 캐러 갔다.

이번 추석에 연휴가 여의치 못하면 친정에는 갈수 없을 것 같아 미리 인사도 드릴 겸, 아이들에게 좋은 체험교육도 시킬 겸 해서 간 것이다. 마침 고구마를 캘 때여서 너무나 잘됐다  싶어 아이들을 데리고 나섰더니 전부다 신났다.

역시 우리 계절은 하나의 거짓됨이나 속임수 없이 바르고 정직했다. 지난봄에 아이들과 함께 와서 줄기 하나씩 뚝뚝 잘라 심어 놓은 고구마였는데 지난 계절 동안의 그 모진 가뭄과, 또 뒤늦게 불어덕친 비바람을 죄다 견뎌내고 이렇게 알찬 결실을 주었으니. 고구마 줄기에서 주렁주렁 주먹보다 더 크게, 어떤 건 내 팔뚝만큼 큰 고구마가 흙 밑에서 주렁주렁 올라왔다. 

아이들과 함깨 고구마를 캐면서_1
아이들과 함깨 고구마를 캐면서_1

나야 원래 농촌에서 자랐으니 고구마 캐는 일이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었으나 어쩌다 한 번씩 농사일을 거들어 보는 아이들은 이렇게 하는 게 여간 신나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나마 시골이 시댁이거나 친정이 아닌 부모들은 돈 내고 체험학습장까지 가야 하니 우리는 복 받은 셈이다. 

고구마가 잘 자란 무 만큼 컸다. 하늘이 보고 싶어 얼굴을 삐쭉 내민 부분은 하얀 색깔로 칠해져 있고, 땅속에 가만히 앉아 있는 부분은 부끄러운 새색시의 얼굴처럼 발그스레하였다.

북극의 빙산처럼 땅위로 십분의 일 밖에 보이지 않지만 흙속에 나머지 부분이 자리하고 있다. 잘 생긴 고구마, 모양이 이리 삐쭉 저리 삐죽 제멋대로 생긴 고구마, 아기 새끼 손가락만한 작은 고구마 등 고구마의 모습도 다양하다. 

누렁이 황소가 쟁기를 끌고, 금방 캐어 흙이 묻어 있는 고구마를 장작모닥불에 던져 시커멓게 구어서 호호 불며 먹기도 하고, 구운 고구마의 검뎅이를 손으로 삭삭 문질러 친구의 얼굴에 얼룩지게 묻히기도 하던 옛 시절이 떠오른다. 요즘 아이들은 그런거 잘 모르지만...

70년대라 늦가을이 되면 먹을 것이 귀해서 고구마를 다 캐고 난 남의 밭에 고구마 이삭을 주우러 다녔다. 다 말라가는 고구마 줄기에 아기 주먹만한 고구마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너무도 반가와 달려가 뜯었고, 혹시 땅속에 파다 남긴 고구마가 있을까 하여 호미로 깊게 파기도 하였다. 

학교 갔다 와서 오후 내내 이 밭 저 밭을 돌아다녀도 몇 십 개를 줍지 못했지만 그것도 감지덕지지. 갖고 와서 씻고 씻어 쪄서 먹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고구마를 가득 실은 트럭이 전분공장을 향해 우리 동네를 지나갈 때면 트럭에 실린 고구마 자루위에 올라탄 아저씨를 향해 고구마 하나 던져 달라고 소리치며 고구마 차를 따라가기도 하였다. 

재수가 좋은 날은 아저씨들이 던져주는 고구마 몇 개를 얻어서 생것으로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간식으로 먹을 것이 적었던 겨울에는 고구마를 얇게 썰어 햇볕에 말렸다가 설탕처럼 단맛이 나는 당원과 물을 넣고 푹 끓여서 먹었는데 그 삶은 맛은 기가 찰 정도였다.

그러나 그 맛은 다 어디 갔을까. 고구마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데 아이들은 모양이 좋은 것들만 챙기지 그렇지 못한 것은 고구마 축에 끼워주지도 않을 태세다.
"얘들아, 이런 거 하나도 버리면 안 돼. 다 모아 놓아야 돼"
"엄마, 그런 거는 너무 못생겼잖아요."
"아니야. 다 쓸모가 있는 거야. 사람도 미남미녀만 사는 게 아니잖아"
 그제야 아이들은 우습게 알았던 못난 모양의 고구마들도 죄다 챙겨 한쪽에 따로 모아둔다. 

 언제부터인지 쌀이 흔하고 빵이 대중화되면서 고구마로 한 끼를 때웠던 시절은 가버렸다.  엄마가 밭에 일하러 가시면서 고구마 몇 개를 삶아 밥상 위에 놓고 가면 학교 갔다 온 아이들은 허기진 배를 채웠는데 요즘 아이들은 냉장고 문을 열면 각종 음료수, 과일이 가득한 것을 보고도 먹을 것이 별로 없다고 투덜댄다. 

식어서 차가워진 몇 개의 고구마를 먹으며 자식 사랑하는 어머니를 생각했는데 넘치는 음식에도 고마워 할 줄 모르는 게 요즘 아이들이 아닌가.  고구마를 썰어서 베란다 햇볕에  말렸다가 겨울에 쪄서 주어야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추억삼아서.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 어느 날 달콤한 고구마를 먹는 아이들은 오늘의 고구마 캐기를  생각하고 우리 농촌을 기억하겠지.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다. 직접 심고 가꾸고 캐내는 오늘의 체험학습을 통해 자연의 진솔함, 농산물의 수확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았을 것이다. 꺼먼 재를 털어내며 한 껍질 한 껍질 벗겨 먹는 고구마의 달콤한 맛과 같은 사랑을 베푸는 어린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구마 캐기를 마치면서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다.
"아이들아, 하나를 먹으면 듬직하듯 남에게 베푸는 사랑도 이와 같았으면 좋겠다. 서로 하나 되어 고구마 캐듯 더불어 사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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