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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보따리와 팥떡
2012-09-09 03:35:34최종 업데이트 : 2012-09-09 03:35:34 작성자 : 시민기자   최순옥

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집안 당숙 어른네 딸이 수원에서 결혼식을 올린 터라 마을에서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노구를 이끌고 오신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뵌 어머니 손에는 빨간 보자기가 들려져 있었다. '호호호'웃음이 났다. 요즘 돈 많은 아줌마들 한 개에 1000만원씩이나 하는 명품이라는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세월에 우리 어머니는 빨간 나이롱 보자기를 들고 다니신다. 
남편은 "어머니, 뭘 이렇게 싸 들고 오셨어요? 힘들게"라며 짐짓 어머니 걱정을 하면서도 얼른 보자기 내용물(?)부터 뒤진다. 혹시 뭐 맛있는 거라도 싸 오셨나 하고.

사실 예전부터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올라오실 때면 어머니 보따리는 요술보따리였다.
멸치, 콩 자반, 떡, 옥수수, 고추장, 고구마, 강낭콩, 심지어 토종닭이 나흔 알을 삶은 찐계란까지. 
수십년 동안 고향에서 아들 딸 해 입히시고 재우시느라 조각낸 짜투리 헝겊들을 기워 만든 보따리지만 그 자체만으로 정겹고, 그 안에서 깊숙이 채곡이 쌓여 들려온 많은 보물들. 그건 너무나 소박한 것이지만 순전히 당신의 정성이 깃든 것들이었다.

어머니 보따리를 나꿔채듯 내용물을 확인한 남편은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져 예식장 천정을 본다. 뭐, 뻔히 아는 것들일진데 남편은 어머니의 정성에 그만 또 감동을 먹은 것이다.
보따리 안에는 고향 밭에서 자란 복숭아와 햇고구마, 팥떡, 그리고 직접 띄워 만드신 청국장 몇덩이가 들어 있었다. 남편이 워낙 청국장을 좋아하니 일부러 만들어 오신게다.

 

어머니의 보따리와 팥떡_1
어머니의 보따리와 팥떡_1

주섬주섬 보따리를 헤집어 보는 내게 "에구, 요새는 청국장도 잘 안띄워진다. 집이 시멘트 집이라(과거 흙집인 농촌 주택을 이미 오래전에 콘크리트 양옥집으로 농가주택 개량을 해드렸더니) 잘 안돼. 감나무집 홍식이네서 띄웠지 뭐냐"라신다.
역시 청국장 이 녀석도 콘크리트에서는 발효가 여의치 않다. 흙집 체질인 것이다.
남편이 대학을 졸업할때까지 거의 40년간 사셨던 시골집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결혼식을 마친 후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왔다.
멀리 수원비행장에 오르고 내리는 비행기 소음에 "저게 뭔소리여?"하시며 이맛살을 찡그리신다. 벌써 시골과 다른 도시가 마음에 안드시는 표정이시다. 
"부르릉, 빵빵빵, 쿵쿵쿵쿵(도로공사 터파기 소리)...."
"야야, 나 낼 갈란다. 낼 차 시간표 알아 놔라"
정신없는 도심. 어머니는 우리 집에 당도하기도 전에 시골로 내려가실 궁리부터 하신다. 시끌벅쩍 정신없는 도시가 싫으신 것이다. 천상 시골노인네시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보따리를 풀어 복숭아부터 아이들에게 주고, 나는 팥떡을 펼쳤다. 수원에 올라오시기 며칠전부터 이미 이것저것 보따리에 채울 것들을 준비하신 흔적이 역력하다. 
자식사랑은 아름다움을 낳는다. 아름다움은 아름드리 크다, 알답다, 알맹이가 있다는 뜻으로 날 알차게 하고, 할 수 있는 한 크게 하려는게 부모의 자식사랑인가보다.

젊은 나조차도 들기 무거운 그 보따리를 가지고 오실 생각을 하시다니.
남편이 태어난건 1960년대였기 때문에 그때만해도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시골에서 여름철에는 꽁보리밥과 감자와 밀가루를 주식으로 배를 채웠다고도 한다. 

어머니께서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던 남편이 가난 때문에 하숙을 하지 못하고 읍내에서 자취생활을 하자 늘 걱정되고 마음 편치 않아서 방학 때나 토요일에 집에 오는 아들에게 특식으로 이 팥떡을 해주셔서 남편은 그게 입에 배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이 군대를 다녀와서 직장생활 하는 동안에도 어머님은 "얘야 너 좋아하는 팥떡 해줄게"하시곤 배불리 먹고 남는 것은 싸주시며 가지고 가서 회사 어른들에게 나눠 드리라고까지 하셨단다. 

그러나 요즘 우리 애들도 빵과 과자 맛이 입에 밴 탓에 할머님의 정성이 담긴 팥떡을 좋아하지 않아 늘 3-4일을 두고 남편과 나와 둘이서만 어머님 사랑을 생각하며 맛나게 먹었다. 
어머님 세상 떠나신 후에는 그걸 해줄 사라이 없으므로 미리 어머니한테 팥떡 만드는 법을 배우라며 남편은 내게 채근을 하지만 나는 솔직히 거기까지는 자신이 없다.
"저기, 요즘 떡집에 가면 맛있게 만들어 주는데"라며 남편의 요청을 살짝 비켜간다.
서너달 전에는 친정 아버지가 수술을 하셔서 병원에 누워계실때도 어머니는 이 팥떡을 해서 보내셨다. 입원한 환자에게는 찹쌀로 빚은 떡이 좋다시며.

이제 자꾸만 늙어 가시는 어머니를 보며 남편은 마음 아파 한다. 하늘의 순리지만 그게 자식의 마음인가보다.
우리가 언제까지 어머니의 보따리를 볼수 있을지, 그리고 그 안의 팥떡을 언제까지 얻어먹을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더더욱 당신의 사랑이 가득한 팥떡이 자꾸만 입에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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