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못 말릴 나의 건망증
2012-09-09 04:57:43최종 업데이트 : 2012-09-09 04:57:43 작성자 : 시민기자 권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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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내게 가끔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누구도 못 말릴 나의 건망증_1 물론 잘 못챙기는 나도 문제지만, 그런 성격을 뻔히 알면서도 그 부분에 대해 포기할줄 모르는 아내도 참 '한 성격'하는 사람이다. 어쨌거나 기념일을 챙기지 못해 그냥 휙 하고 지나친 뒤 그때마다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래서 옆구리 찔러 절받기 보다 아예 달력에 표시를 해 둠으로써 내가 매일 밥먹다가 제발 좀 보고 알아서 챙기도록 알려주는 것이다.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것이다. 아내와 결혼한 지 30년이 됐지만 여전히 나는 기념일 챙기는데 30점짜리 남편이다. 그나마 아내가 달력을 몇 번이나 쳐다보며 무언의 압력을 가해 마지못해 기억한 게 고작이었다. 올해도 밥 먹다가 달력 앞에 떨어진 음식물을 치우던중 우연히 달력의 동그라미를 보고서는 아내의 생일이 벌써 지나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약 15년전이었다. 그 날만큼은 아내의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고 굳게 약속했건만 갑자기 회사 일로 접대할 일이 생겨 그날 밤 약속을 어기고 거래처 직원들 술상무를 하다가 고주망태가 되어 밤 12시쯤에야 들어왔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리고 있던 아내는 너무 속상했는지 날 보고도 넋 나간 사람처럼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술 김에 무작정 넙죽 큰 절을 하며 "미안해"라고 말했다. 아내는 포기했다는 듯 그냥 " 왜 그렇게 많이 마셨어?"고 묻기만 했다. 술이 깨고 나니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다. 다음날 아침 희망 잃은 눈빛으로 "이거, 이혼사유인거 알지? 알아서 해!"라며 기대 반 속상함 반으로 최후통첩을 했던 아내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내가 그동안 꾹꾹 참아오다가 그제서야 최후통첩을 한 것도 참 많은 인내를 발휘한 셈이었다. 심지어 옆집 누구네는 결혼기념에 맞춰 해외여행을 다녀왔네, 누구네는 생일날 목걸이와 귀거리, 반지를 세트로 받았네 등,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사례들이 마치 해외토픽처럼 연거푸 아내의 귀에 꽂혔으니... 그러나 그때 뿐이었다. 나의 건망증은 정말 병인가 싶다. 이제는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는 아내에게 늘 미안할 뿐이다. 올해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했지만 내년에는 꼭 아내의 생일을 기억했다가 아내를 감동시켜줘야지.... 궁색한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 1순위가 아내임을 아내가 잊지 말아주기를 소망, 또 소망해본다. 그리고 나도 다시는 아내가 서운하게 느끼지 않도록 꼭 챙길것을 거듭 다짐... 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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