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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 없이 가는 수도권 가을산
호암산과 대모산.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자연과 가까운 산
2012-10-19 11:10:21최종 업데이트 : 2012-10-19 11:10:21 작성자 : 시민기자   이소영

자가용 없이 가는 수도권 가을산_1
산에서 하는 독서의 맛

서서히 물들어가는 가을을 눈으로 확인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어딜까. 평소 산을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이 질문만큼은 바다가 아닌 산이라고 대답하리라 믿는다. 
그렇다. 가을은 산의 축제를 절정으로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나 같은 산쟁이는 여름이면 이열치열 이라며 산에 가고 가을이면 단풍을 즐기러 산에 간다지만, 가을에는 정말 봄, 여름 그리고 겨울에 산에 가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이끌고 등산을 가고 싶어진다.

지난 몇 주는 주말을 이용해 광교산과 팔달산을 뛰어 넘어 색다른 산 두 곳을 오르고 왔다. 도심이지만 도심 속에서 좀 더 자연과 가까운 그런 곳 이라고 표현하면 딱 알맞겠다. 자가용이 없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 두 산을 소개하고자 한다.

관악산 서쪽 끝 봉우리 호암산(虎岩山)

전철을 이용해 수원에서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산이 없을까 하여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호암산'이다. 호암산은 지하철 1호선 석수역 에서 내려 육교를 건너 정면으로 150m정도 직진하면 등산로가 나와서 길치인 사람들도 찾기가 쉽다. 호암산은 관악산 전체를 아우르는 둘레길 31.2㎞의 시작이기도 한 곳이다. 

자가용 없이 가는 수도권 가을산_2
호암산 등산로 안내

사실 이 날은 산에 갈 예정이 없던 터라 등산화 운동화도 아닌 로퍼를 신고 나왔다. 그리하여 산은 오를 수 없지만 산 아래에서 책 한권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산에 왔다고 꼭 산을 오를 필요는 없는 법이니까. 
벤치에 앉아 책도 읽고 물도 마시며 근처를 도보하듯 왔다 갔다 거리면서 등산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니 순식간에 숲이 내 몸의 감각을 자연화 하여 되살리게 했다. 

오르지도 않을 것이면서 등산객들에게 말을 붙이니 산으로 통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가장 편한 코스는 어디며 어려운 코스는 어디인지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등산경력 30년은 족히 되보이시는 할아버지께서는 "허허 아무렴. 서울대 방향 서울둘레길이지 제일 오르기 쉽지." 라고 일러주셨다. 

다음에는 할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신 코스를 꼭 가리라 생각하며 삼림욕을 하고 내려오는 길. 
작은 빌라와 주택가들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 귀여운 동네에서 이번에는 대나무 비슷한 것을 바닥에 펼쳐놓고 다듬는 아주머니들 무리가 보여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이거 혹시 대나무에요?" 
"젊은 사람이라 모르는가 보다. 이게 토란이여 토란. 토란 줄기가 소화도 잘되고 그렇게 좋아. 약 먹지 말고 이거 먹으면 순식간에 가셔." 
낯선 사람인 내게 아주머니들은 토란의 효능까지 덧붙여 친절히 대답해주셨다.  먹지도 오르지도 않았는데 호암산 등산코스와 몸에 좋은 음식 정보까지 얻어가고 이래도 되나 싶었던 날. 최근 내 머리를 짓누르던 걱정거리들을 호암산에서 가을 낙엽 떨어지듯 버리고 왔다. 

개도 포기한 동네에 위치한 대모산(大母山)

이번에 오른 산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대모산이다. 대학 선배는 늘 재미없다는데 "선배 어디살아요?" 하면 "난 개(犬)도 포기한 개포동 살아." 라고 말해 우리를 벙찌게 했다. 당시 가장 질색하던 나지만 그 선배 덕분에 대모산 위치를 설명하기가 쉬워졌다. 
양재역 5번출구 에서 내려 4430번 버스를 타고 구룡사입구를 지나 구룡마을에서 하차한 후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면 개암약수터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초반부터 데크의 압박이 시작되는 곳이지만 데크가 끝나는 지점 약수터가 있어서 목을 축일 수 있다. 대모산은 구룡산과 이어져 있는 산이라 그런지 이정표가 유난히 많았다. 

처음 오르는 산인지라 이번에도 그렇듯 등산경력 20년은 되보이시는 아주머니께 길을 여쭸다. 
"대모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왼쪽 맞죠?"
"나도 거기 가는 길이에요. 저 따라오세요." 
그리하여 내 생에 처음으로 산에서 갓 뵌 분 뒤를 따라가는 산행을 하게 되었다. 

"아가씨 산 꽤 타시네요, 젊은 아가씨가 아주 좋은 취미를 가지셨네요." 
아주머니의 칭찬 덕에 더 열심히 산을 탔지만, 사실 걸음이 어찌나 빠르신지 오를 때 감상에 젖는다거나 구경은 못하고 오직 아주머니 등산화만 보고 갔다. 
쉼 없이 올라서 그런가 인터넷에는 초보자 들을 위한 산이라고 소개 되어 있지만 내게는 은근히 어려운 코스로 느껴졌다. 정상에 도착했는지도 모르고 헤매다가 강남 측량의 기준이 되는 지점이라는 '삼각점'을 찍고 하산 할 수 있었다. 하산을 할 때는 아주머니와 헤어지고 혼자 다시 여유를 찾았다.

자가용 없이 가는 수도권 가을산_3
대모산 정상 삼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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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 없이 가는 수도권 가을산_4
서울시 선정 우수조망명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불장난 처럼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 
가보니 '서울시 우수 조망명소'라 하여 양재천, 우면산, 타워팰리스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좋은 명당이 있었다. 사실 많고 많은 산 중 대모산을 선택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구룡마을을 보고 싶어서. 
구룡마을은 강남의 마지막 남은 판자촌이다. 그리하여 산을 오르기 전 구룡마을을 둘러보고 대모산에 올랐었다. 

명당자리에 같이 서 있는 사람들 몇몇은 "요즘엔 타워팰리스 보다 삼성 아이파크가 대세지." 라고 말하는데 나는 타워팰리스 아래 있는 구룡마을에 눈이 갔다. 명당 장소 목록에도 적혀 있지 않은 구룡마을. 빈부격차의 차를 극명하게 볼 수 있는 이곳은 과연 명당일까? 풀 수 없는 숙제가 내게 생긴 듯 했지만 이내 가을 밤톨이 떨어진 밤송이를 보고는 마음이 가라앉았다. 

미국의 자연보존론자인 뮤어는 말했다. "일에 지친 피곤한 수많은 시민들이 산을 찾고 있으며, 그곳의 공원과 보존된 숲은 생필품이나 깨끗한 물을 공급받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시민들 삶의 샘으로서도 꼭 필요하다."
여유와 휴식을 취하는 방법론은 가지각색 사람들마다 다양하다. 나 같은 경우는 좋은 호텔에 가서 수영을 하며 커피 한 잔을 하는 것도 좋지만, 정말 삶이 각박하고 힘들 때는 이도 저도 없이 산을 찾게 된다. 내게 산은 뮤어의 말처럼 오아시스, 샘과 같다. 

수확의 계절 '가을', 전철을 타고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호암산과 대모산을 적극 추천해본다. 음악회에 가지 않아도 가을바람을 타고 클래식, 교향곡, 세레나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산은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우리를 감싸 안아 주니까.

호암산, 대모산, 가을은 등산의 계절, 가까운 수도권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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