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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는 할머니의 희망을 위해
2012-09-06 04:51:52최종 업데이트 : 2012-09-06 04:51:52 작성자 : 시민기자   김대환
회사 빌딩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시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보면 할머니는 어제도 들고 오셨던 리어카와 황토색 마대자루에 우리 사무실 구석에 쌓아놓은 신문을 넣고 계신다.  그러면 나는 다른 사무실을 돌며 그쪽에서 쌓아 놓은 신문지들을 죄다 모아다가 할머니의 자루에 넣어드리곤 한다. 또 다른 자루에는 빈 병과 알루미늄 음료수 캔이 담겨지고.

"아이구, 고마워서 어쩌요. 젊은 사람이 친절하게시리..."라며 할머니가 연신 인사를 하시지만 나는 할머니의 그런 인사가 오히려 부담스럽다. 내가 할머니를 도와드리는 일은 하찮고 보잘것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챙겨 드리는 폐지를 받는 할머니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이유는 폐지가격이 폭락해서라고 한다. 폐지가격이 작년까지만 해도 1kg에 110원은 계산해 줬는데 요즘에는 60원 정도만 준다고 그러셨다. 중국에서 폐지를 싼 값에 수입하는 바람에 국내의 폐지가격이 급폭락했기 때문이라는 말씀에 "역시 차이나...우리 할머니들 생계까지 힘들게 하는 차이나..."하는 생각에 쓴웃음이 나왔다.

폐지 줍는 할머니의 희망을 위해_1
폐지 줍는 할머니의 희망을 위해_1

어쨌거나 무더운 여름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장마철을 가리지 않고 하루종일 폐지를 주우러 다녀도 돈 몇천원이 고작이라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참 마음이 아팠다.
"그나마도 예전에는 고물상이 3군데나 있어서 갖다 주기도 편했는데 지금은 죄다 없어지고 하나밖에 없어요. 집에서 아주 멀어. 거기까지 리어카를 끌고 가는데 자기네도 힘들다며 자꾸만 이문을 박하게 주는걸...."
아, 이 할머니들에게는 폐지를 구매해주는 고물상이 또 상전이었다. 어느 한 구석 폐지를 줍는 할머니들을 마음 편히 해주는 곳이 없었다.

몇 년전 겨울에는 놀라운 장면을 본적 있다. 
그때는 어떤 할아버지가 폐지를 가지러 오셨는데 당시에 내가 출근하자마자 평소처럼 컴퓨터 작동 스윗치를 넣고 잠깐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내 책상 옆에서 쪼그려 앉아 계신게 아닌가.  나는 할아버지가 어디 아프기라도 하신지 궁금해서 "혹시 어디 편찮으세요?"라고 여쭸더니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손이 좀 시려워서"라고 하셨다. 
"손이 시려우신데 왜 책상 옆에 쪼그려 앉아...?"
나는 나머지 말을 다 여쭙지 못했다. 뒤 늦게 할아버지 말씀을 이해하고는 더 이상 말을 이을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울컥해서.

컴퓨터를 켜면 본체의 열을 밖으로 방출하기 위해 팬이 돌아간다.  그 팬이 회전을 하면서 본체 내부에서 발생한 열을 밖으로 빼내주는데 그 열이 은근히 따뜻하다. 식당 주방의 환풍기 팬 처럼. 겨울철 새벽녘에 난방이 덜 된 우리 사무실에 오신  할아버지는 손이 시렵자 열기가 나오는 내 컴퓨터 본체 옆에 쭈그려 앉아 팬 앞에 손을 쬐고 계셨던 것이다. 그 미약한 열기에 손을 녹이시기 위해서....

고향에 계신 노모가 생각나 눈시울이 적셔졌던적이 있다.
그러데 그 할아버지는 지난 봄부터 안보이신다. 어디로 가셨는지, 혹시 돌아가신건 아닌지. 알수가 없는 가운데 이젠 다른 할머니가 우리회사에 들어오신 것이다. 

얼마전에는 할머니를 모시고 나가서 근처 뼈다구 감자탕 해장국 집에 들어가 따끈한 국물과 공기밥을 사 드렸다. 할머니는 한사코 마다하셨지만 나는 그만둘 수가 없었다. 돼지 등뼈 감자탕 국물과 밥 한그릇을 맛있게 드신 할머니는 주머니를 뒤적이시더니 내게 뭔가를 보여주셨다. 
돈이었다. 2700원. 꼬깃꼬깃한 1000원짜리 2장과 동전 700원. 할머니는 어제 그저께 이틀 동안 벌어서 밥 사드시고 남은거라 하셨다. 그나마 이렇게 일을 해서 끼니도 해결할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자꾸만 나이가 들어 힘에 부치니 나중에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셨다.

그리고는 "오늘은 설탕좀 사가지고 들어갈거유"라고 하시길래 저는 "설탕은 왜요? 반찬 만드시게요?"라고 여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요즘은 폐지 팔이가 잘 안돼. 그래서 밥을 굶을 때가 있어.  그런때는 설탕물이라도 타 먹으면 좀 낫지. 그게 든든해요"라며 풀썩 웃으셨다.

아.... 연세가 7순이 다 되시는 할머니가 돈이 없어서 끼니를 굶고,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서 설탕물을 타 드신다는 말씀에는 나도 할말을 잊었다. 그렇지만 할머니께 다른 자식들은 없느냐고 묻지는 못했다. 할머니 가슴에 상처를 드릴까봐서.

감자탕 집을 나와서 무거운 마대자루를 리어카에 싣고 힘겹게 돌아가시는 할머니 뒷모습을 보면서 "정말 어느 자식들이 부모님의 노년을 저렇게 만들고야 말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 아들딸들이 많이 미웠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피치못할 다른 사정도 있을 것이다. 

30분 넘게 할머니와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면서 할머니가 그동안 끈질기게 버텨온 삶에 대한 의지와,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웃는 표정이 왠지 모르게 가슴을 아리게 했다.
너나할것 없이 모두 다 많이들 힘들고 너무나 어려운 시기이다.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견디기 힘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럴때일수록 조금 여유로운 분들이 나눠 갖는 배려와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발휘하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려운 분들이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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