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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사랑하는 이유? 못난 아빠의 반성
2012-09-06 11:25:41최종 업데이트 : 2012-09-06 11:25:41 작성자 : 시민기자   이학섭

아이들을 키우면서 늘 하는 고민이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아빠일까, 아이들에게 이 아빠는 어떤 존재로 비쳐지고 있을까"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라던 그 시절, 60년대, 70년대의 아버지라고 하면 무섭거나 두려운 존재, 혹은 엄격하여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존재로 여겼었다.
거기에 반해 요즘은 아버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며 통탄하는 아버지들이 많다. 자녀들이 아버지 알기를 이웃집 아저씨보다 못하게 여긴다며 하소연하는 아버지들도 있다.
아버지를 데면데면하게 대하거나 우습게 안다는 뜻이다. 데면데면하게 대하는 것도 아버지를 어려워해서가 아니다.

아버지와 아이들간의 유대관계가 단절되어 꼭 필요한 인사나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맘에 안들어하는 아버지들이 많은데 자녀들 역시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어떤 아버지를 좋아하고 왜 자신의 아버지를 싫어하는 것일까? 

"아빠, 이거 해줘"
주말 아침, 소파에 누워 TV와 씨름하고 있는 내 얼굴에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불쑥 내민 노트. 거기에는 자녀에게 편지쓰기와 자녀를 사랑하는 이유 20가지를 써야 하는 숙제가 담겨져 있었다. 

아이를 사랑하는 이유? 못난 아빠의 반성_1
아이를 사랑하는 이유? 못난 아빠의 반성_1

TV를 보면서 쉬려고 했던 내겐 꽤나 '난이도' 높은 귀찮은(?) 과제였다. 그러나 어쩌랴. 자식의 부탁이자 아빠의 숙제인것을.
아이에게 "정직해라, 건강해라, 공부 열심히 해라, 남 괴롭히지 마라" 등등 이런저런 당부의 말로 낑낑대며 1시간 넘게 편지를 써내려 갔다. 하지만 모처럼만에 편지를 쓰면서 아들과 딸에게 미안했던 일과 함께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보지 못했던 딸과 아들의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하나둘 볼 수 있었다. 
역시 육필로 쓰는 편지의 마력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아이를 사랑하는 이유 20가지를 만들어 내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게 아니었다. 머리에 쥐가 나도록 쥐어 짜도 10가지를 넘기기 어려웠다.
방에 들어가 결국 컴퓨터를 켜고 다른 아빠들이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컨닝(?)하기로 했다. 컴퓨터 스윗치를 넣으면서 책상에 앉아 잠시 생각을 떠올려 봤다.

그동안 나는 '나만큼 자녀에게 잘하는 아빠가 어디 있는가'라며 자부해 왔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남들에게 내세울 만큼 좋은 아빠는 아니었다.
아이들과 함께 살갑게 속 깊은 이야기를 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애들에게 '이것 해라' '저것 하지 마라'는 등의 썰렁한 명령만 전달 했었다.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대한 관심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요구하는 것에 익숙한 아빠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내가, 대화보다는 명령 하달식의 아버지상만 기억나는 내가 아이의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만 더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세심한 관심을 갖고 아이들과 함께 대화를 했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자녀를 사랑하는 20가지 이유를 손쉽게 쓸 수 없다는 자괴감 보다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미안했다.
이 숙제 하나조차도 시원스럽게 마칠수 없을 정도라면 나는 정말 부족한 아빠였던 것이다. 컴퓨터까지 켜서 끙끙거려서야 겨우 마칠 수 있었으니.

돌이켜보면 오래전 나를 길러주신 아버지는 참 대단하셨다. 고3때 새벽같이 아침을 굶고 학교에 갔던 나에게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 2개를 몇달동안 학교 수위실까지 배달하고 출근하셨던 그 시절 보기드문 자상한 아버지이셨으니....
아이에게 반나절이 걸려서야 아이의 숙제를 마치고 나니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지에 기고한 글이 떠오른다.
'남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라고 한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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