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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밥 먹여 주는 시대
CEO, 과학자, 경제학자등이 예술에 주목하고 있다.
2012-09-07 22:43:04최종 업데이트 : 2012-09-07 22:43:04 작성자 : 시민기자   한주희
미국을 선두로  현재 세계 경제는 절벽끝에서 위태롭게 휘청거리며 버티고 있다.  벼랑끝에서 까치발로 몸의 균형을 잡으려 팔을 허공에 휘휘 저어대는 꼴이다. 세계를 바다에 침몰 시킨 미국 경제 위기에 그치지 않고 유로존 위기로 세계 경제는 점차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바다의 심해저로 가라 앉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경제 안정화를 위한 포럼을 열고 하루가 멀다 하고 저명한 경제 전문가들의 세계 경제 동향에 대한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로 다른 두 입장인 비관론과 난관론이 마주 서서 있지만 어느 한 쪽의 그림자가 다른 하나를 가리고 있는 현실을 부정 할 수 없다. 

나아지기는 커녕 나날이 늘어나는 짐의 무게가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앞을 막고 있는 이 갑갑한 상황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세요' 라고 권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당신의 반응은 다음 중 무엇이겠는가? 
열 명 중 다섯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 사람이 멀어져갈 때까지 고개를 서너 번 돌려 다시 쳐다보며 '정신 나간 사람'을 구경할 것이다. 열 명 중 셋은 '너 잘 걸렸다' 하면서 불쾌지수를 높힌 그 사람에게 한강에서 뺨맞은 화풀이를 해 댈지도 모른다. 나머지 두 명 중 한 명은 스마트 폰을 들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어 아무 반응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 한 명은 '어디서 하는데요?' 라고 물으며 호의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어쩌면 좋은 정보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할 지도 모른다. 

경기가 침체되면 가계부에 '전시회 티켓' , '뮤지컬 관람' 등과 같은 문화생활 관련 단어를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그나마 '영화관람' 으로 문화생활의 명맥을 간신히 이어갈 뿐이다. 가계 경제가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문화생활의 지출이 대폭 삭감되는 것만 보아도 우리 생활에서 '예술' 자치하는 비중이 얼마나 가벼운지 알 수 있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에 부딪힌 사람들에게 '문화 생활 = 사치' 라는 등식이 성립됨을 인정한다. 먹고 사는 문제에 조금은 자유로운 중산층에서도 평균 7만원대의 뮤지컬 티켓이나 1~2만원의 전시회 관람료는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문화 생활을 등한시 하는 것이 비단 '돈의 문제' 만은 아닐 것이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마음을 완정 무장하고 경계태세에 들어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끌려내려오고 밟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메말라 버린 '여유'라는 샘물도 한 몫을 한다. 

'밥을 먹여 주지 않는 예술'에게 내어 줄 마음도, 열어 줄 지갑도 없는 것이 대다수 서민의 생각이다. 예술이 밥 먹어주냐며 예술에 대해, 예술품 감상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이 팽배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술이 밥 먹여주는 시대가 왔다.

경제 불황속에서도 세계 유명 옥션에서는 적게는 몇 백부터 몇 십억에 이르는 미술품들이 거래되고 있다. 우리는 그 동안 미술품 구입은 돈 있는 사람들이 돈 자랑을 하다가 하다가 만나는 '돈 지랄' 이라는 종착역쯤으로 여기며 콧 웃음을 치고 있었다. 왜 돈 있는 사람들은 '예술'에 주목하는 것일까? 무엇이 돈의 흐름을 '예술'이라는 소용돌이로 밀어넣는 것일까?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며, 살기 쉬원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를 이사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소세키의 '예술의 필요성' 중에서-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괴테는 "나는 보기 위해 태어났고 관찰하도록 운명지어졌다"고 말했다. 이 한 문장에 그가 얼마나 예술을 사랑했고 가까이 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예술만큼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예술만큼 확실하게 세상과 이어주는 것도 없다."
이 명언은 전 생애를 통해  예술은 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인 디저트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으로써 입증한 결론을 내포하고 있다.  

괴테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예술품의 감상을 하면 창의성 뿐만 아니라 사물이나 현상을 정확히 포착하는 예리한 눈과 통찰력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와 연구결과는 넘쳐난다. 즉, 예술품 감상이야 말로 이 시대에 요구되는 창의성과 새로운 시각을 향상시킬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인 것이다.
괴테가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동시에 과학자이기도 했고  한 때는 그림도 그렸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통합형 인간'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창의성' 과 '통합적 사고'를 괴테는 그 시대에 예술을 통해 배웠던 것이다.  창의성과 통합적 사고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이나 훈련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하늘이 선택한 몇 몇 사람들에게만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개발되어 질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갖고 도전하길 바란다.

예술을 통해 충분히 개발되어 질 수 있다. 예술과 가깝게 지내는 데에는 직접적인 예술활동과 예술품 감상이라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창의성을 개발하기 위해 직접 예술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고 시를 쓰는 예술적 행위는 알다시피 뼈를 깍고 살을 베어내는 고통이 수반된다.
창의력을 키우겠다고 직접 악기 연주법을 익히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부담은 잘해보겠다는 생각에 획일화된 교육의 장으로 이끌고 기계적인 반복은 결국 창의력 대신 흉내내는 법만 배우게 된다.
직접적인 예술행위 대신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가지고 적극적인 감상 활동을 하는 것이 차라리 일상에서, 업무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창의성과 통합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 관심 있는 예술분야에 대한 재능이 없더라도 누구나 감상 활동은 할 수 있다. 감상하고 느끼고 의미를 찾고 감동하는데 직접적인 예술행위를 직접 익히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쯤에서 궁금점이 스물스물 기어오를 것이다. 정말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창의성이 개발된다고? 그 창의성을 실생활에, 업무에 활용할 수 있다고? 작품 감상을 하다보면 호기심이 생긴다.
'이 작품은 어떤 기법으로 무슨 재료로 만들어진 걸까?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 작품이 탄생되었을 당시 시대적 상황은 어땠을까? 저 작가랑 동시대에 활동하던 작가는 누구지? 그들로 비슷한 주제와 기법으로 그렸을까? 당시 유행이 뭐였을까?...' 
궁금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에는 처음 질문과 상관없는 엉뚱한 질문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호기심을 상상력과 결합하면서 폭발적인 창의력이 샘솟는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틀을 깬 새로운 발상과 아이디어가 샘솟기도 한다.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 애플과 각축을 벌이는 삼성전자는 10년 전만해도 일본의 소니 뒤를 쫓는것만으로도 바빴다. 당시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기 위한 키워드를 '창조'로 정했다. 창조를 어디에서 이끌어 올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 끝에 신년연설에서 "약초도 잡초에 불과했다. 보석도 돌에 불과했다. 귀한 것을 찾아내는 것은 창조적인 시각이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일상적인 모든 일을 새롭게 재해석해,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지금의 삼성으로 발돋움하게 한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윤종용 전 부회장은 출장을 가면 매번 미술관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술품을 감상하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예술품이 그저 벽면을 장식하는 장식품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창조적인 발상 전환을 주입해 주는 매개체이자, 회사의 이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작업도구인 셈이다. 

또한 예술품 감상은 창의력 향상뿐만 아니라 통합적인 사고를 키워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화가 대부분이 남다른 과학적 식견(識見)을 가지고 있었다.
'아르놀파니부부의 초상'의 경우 1434년 유화의 창시자라 불리는 얀 반 에이크가 그렸다. 그가 그린 그림은 비교적 선명한 색으로 보존이 돼 있다.  에이크는 자신이 사용하는 물감의 화학 작용에 대해 정통한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보존이 잘 되고, 어떻게 해야 굳은 물감이 캔버스에서 떨어지지 않는가에 대한 연구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미술작가와 과학자가 명백히 나뉘어져 있으나 당시에는 겸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현 시점에서 각 분야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은 무엇일까? 

학제간의 벽을 허물고 창조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통합형 인재'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 시대가 원하는 대표적인 통합형 인재에 속한다. 알다시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미술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 철학, 건축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그의 전기를 읽어보면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허무맹랑한 생각까지 할 정도로 대단하다.

유독 다빈치의 그림은 훼손이 심하다. 이런 변색과 갈라짐은 그의 모험정신과 호기심 탓이다. 그는 당시에 검증되지 않은 기법들을 즐겨 사용했다. 마치 과학자가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도출해 내 듯 그도 다양한 기법을 섞어 사용하고 캔버스에 수 놓을 새로운 물질들을 찾아 헤매였을 것이다.
그림은 공기와 습도, 사용된 물감과 캔버스의 재질등 여러가지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천재적인 과학자였던 그가 그런 사실을 모를리는 없었을 것이다. 새로움에 대한 그의 갈망덕에 우리는 명화라 불리는 그의 작품을 볼 수 있고 그의 도전정신에 의해 미술계는 혁식적으로 발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과학과 예술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두 분야 모두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 과학을 모르는 예술가는 첨단 재료를 사용해 창의성있는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없고, 과학자 역시 예술을 모르면 창조적인 발명을 할 수 없다.
예술품을 감상하면 그 안에 녹아 있는 인문, 철학, 정치등 당시 시대상황을 알 수 있다. 예술품을 눈으로 쳐댜보는 것만으로 그지치 않고 관심분야를 조금씩 확장해 내간다면 이것이야 말로 학제간의 벽을 허무는 통합적 사고인 셈이다.

얼마 전 강연에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속상해 하는 한 초등학생의 질문에 대한 이외수 작가의 대답이 마음에 남았다.
" 예술 작품을 많이 감상하라. 그것들에는 예술의 궁극적 원리이자, 최고의 지향점인 '아름다움'이 녹아있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을 많이 감상한 사람은 풍부한 상상력으로 재치가 생기고 아름다운 것을 자주 접하는 사람 또한 아름다워지고 선해진다."
예술품 감상이 창의성을 키우고 통합적인 사고를 하는데 유용하다는 것은 쉽게 인정하지만 인성교육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하면 선뜻 믿지 못하고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예술품 감상은 단순히 바라보는 행위가 아니다. 단순히 보는 것에서 점점 주의깊게 살펴보는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무엇인가를 접했을 때 좋고 싫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내가 느끼는 정서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감수성이 풍부해진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은 대체적으로 섬세하다. 어릴 때 부터 예술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은 예술품을 통해 작가의 감정의 흐름과 생각을 읽어내 듯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게 된다. 공감은 소통의 기반이다. 이 시대에서 요구되는 또 다른 키워드는 '소통'이다. '커뮤니케이션맹'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요즘 사람들은 소통에 힘들어 한다. 예술작품 감상을 통해 감수성이 풍부해지면 결국 소통에서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예술작품 감상법과 그 후 느낌은 개개인마다 다르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자연스레 우리는 다양성에 대해 관대해진다. 

사진을 시계방향으로 돌려주세요
풍선을 엮어 만든 것 같은 작품. '프로이트의 의자'가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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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 플레쉬, 전화번호부...무엇을 느끼는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낯선 사람이나 사물을 마주하였을 때도 열린 자세로 대할 수 있다. 섬세한 관찰력으로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를 쉽게 인식할 수 있고 다름에 대해 당황하지 않는다. 상충되는 의견에도 배려로써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배려는 타인을 넘어 주변의 사물, 동식물등에도 확장되어 적용될 수 있다. 예술품을 많이 감상한 사람일 수록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내적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서 자연스레 올바른 인성과 태도를 갖게 된다.
이 밖에도 예술작품 감상만으로도 삶의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미국 국가예술기금은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의 성취도와 예술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학업성취도, 직업목표, 사회참여율이라는 세 가지 측면의 결과가 나와있다.
학업성취도 측면에서 낮은 사회적 배경을 가진 청소년이라도 예술 참여도가 높았던 학생들은 예술 참여도가 낮았던 학생득에 비해 4년제 대학교에 들어가는 비율이 15% 높았다.
또한 직업목표에서는 법조계, 의학, 교육과 같은 전문적인 직업에 종사하기를 희망하는 비율이 예술 참여도가 높은 학생이 29% 높게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비율은 예술참여도가 높았던 학생들이 낮은 학생에 비해 2004년 총선 투표참여비율이 14% 높게 조사되었다. 이외에도 신문을 읽는 비율도 예술 참여도가 높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29% 높게 나타났다.
우리는 이제 예술품 감상으로 창의력, 통합적 사고, 올바른 인성과 삶의 자세 그리고 삶의 변화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했다고 치고, 그럼 예술을 어떻게 내 일상 가까이에 끌어들일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하다.
예술은 미술, 음악, 공연, 문학작품등 폭 넓게 아우른다. 의식적으로 정기적으로 미술관이나 음악회를 찾는 것이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시간적으로 부담된다면 주변을 관찰하는것부터 시작하자. 앞서 말한 것처럼 예술품 감상은 세밀한 관찰력을 키워준다. 주변의 예술을 찾는 것부터가 예술품 감상의 시작이다.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대강대강 지나치지 말고 내가 속한 사회, 내가 걷는 길, 내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발상의 전환을 표현한 예술품들이 도처에 산재되어 있다. 거꾸로 뒤집힌 간판, 음악이 나오며 음악에 대한 이미지가 표현되는 스크린, 병원이나 공공건물앞에 있는 조형물등...
예술은 더이상 돈 있고 시간 있는 사람들만 향유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예술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생존전략이 되었다. 돈을 벌고 싶으면 부자들의 행동을 따라하라 했고 천재가 되고 싶으면 천재들이 쓴 책을 읽으라 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숙명인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예술가의 사고의 흐름을 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CEO, COO, CTO, 경제학자, 과학자 그리고 엔지니어가 전시회를 찾고 공연장을 찾는다. 시간이 돈인 그들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예술에 주목하고 있다. 스티브잡스가 망해가던 애플을 살려냈던 것은 기술이 아닌 예술적 가치 였다. 누구나 소장하고 싶은 디자인, 기존의 틀을 깨뜨린 발상 그리고 스토리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누군가는 퉁명스럽게 물을 것이다. 예술이 밥 먹여 준다면서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는 예술가들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예술이라는 영역 하나만으로 제2의 스티브 잡스는 나오지 않는다. 지금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예술적 안목과 예술가의 사고를 접목시키자는 말이다. 예술이 밥 먹여 준다고 화방에 가서 물감과 캔버스를 사들고 거리에 나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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