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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국화빵을 보니
이웃하며 함께 살았던 착한 아이의 건승을 기원하며
2012-09-15 09:17:21최종 업데이트 : 2012-09-15 09:17:21 작성자 : 시민기자   최음천
나도 출출하기도 했지만, 빨리 가서 아이들과 남편 밥도 차려줘야 하겠기에 늦은 퇴근길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 가던 길. 
모처럼 길가 아파트 단지에서는 장터가 섰다. 아파트 단지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직거래 장터. 여기 들르면 나름 쏠쏠한 시장보기 재미가 있는데... 그렇잖아도 평소에 늘 먹고 싶어서 요때만 기다리던 밤고구마가 생각났다. 

가족들 배고픔은 잊은채 냅다 장터 안으로 쑥 들어가 보니 나의 기대감에 부응이라도 하듯 빨갛게 맛있어 보이는 잘생긴 밤고구마를 몇박스 쌓아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이 있었다.
옳다구나 싶어 냅다 한봉지 샀다. 
그리고 나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한쪽에서 빵틀을 걸고 구워 내는 국화빵을 보았다. 아, 저 통통한 국화빵... 그것도 2천원어치 사 들고 오면서 이번엔 문득 이웃집 아이가 떠오른다. 

오랜만에 국화빵을 보니_1
오랜만에 국화빵을 보니_1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때였을 것이다. 그날, 토요일 오후 3시쯤이었는데 집에서 빨래를 접고 있던중 아이들 서너명이 우리집으로 들이닥쳤다. 아이 친구인 이웃집 현철이가 놀이터에서 말뚝박기 놀이를 하다가 다쳤단다. 그게 위험한 놀이라서 평소에도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그 놀이를 하고 있으면 쫓아가서 그만 하라고 말리던 그 놀이 아닌가.

얼른 현철이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이웃집 아이들 친구중에 가장 착하고 어른 말도 잘 듣고 순박한 아이. 자라서 어떤 일을 할지 모르지만 누구든지 보기만 하면 꼭 한번 안아주고 싶은 하회탈 같은 웃음을 짓는 아이.
그 여린 아이가 다쳤다고 하니 마치 내 아이가 다친것처럼 놀라웠다. 아이들은 아이가 다쳤으니 놀이터에서 제일 가까운 우리 집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물론 현철이 엄마는 일요일이었지만 회사에 출근을 한 상태였고, 현철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아이가 아이들을 우리 집으로 몰고 온 것이다.

밖으로 뛰쳐 나가 보니 아무리 짓궂은 놀이를 하거나, 어떤 험악한 일을 당해도 그저 한번 배시시 웃어버리면 끝이던 그런 현철이가 이마에 땀을 비 오듯 흘리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택시를 부른 후 내 휴대폰에 저장돼 있는 현철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이 아줌마가 무슨 일이 있나? 왜 이렇게 전화를 안받는거야?"하면서 몇 번이나 현철이 엄마의 휴대폰으로 연락해도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뿐이었다. 

얼른 택시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현철이를 옮겼다. 의사선생님은 몇가지 검사 후 아이가 놀래서 그런것 같다며 조금 더 검사를 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이런... 어린 것이 얼마나 놀랬으면?
그 와중에 다시 현철이 엄마에게 전화 걸기를 다시 시도했으나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애가 타서 휴대폰에 음성메세지를 남겨 놓은 것이 5번이었다. 

결국 현철이 엄마는 저녁 무렵에서야 헐레벌떡 숨이 차서 달려오셨다.
"회사에 무슨 일 있어요? 얼마나 바쁘길래 전화를 안받아요?"
"정말 죄송해요. 제가 못 듣잖아요...." 라며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그이가 갖다 댄 곳은 그의 귀였다.
아차! 내가 실수했다. 너무나 큰 실수를 했다. 현철이 엄마는 청각에 약간 어려움이 있어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다. 서로 얼굴을 보면서 하는 대화는 약간 들리기도 하고, 특히 상대방의 입모양을 보며 거의 90% 이상 알아듣지만, 휴대폰은 전혀 들을수 없어서 전할 내용은 문자로 해야 했다.

그런걸 나도 모르지 않고 있었는데. 이 바보 같은 아줌마가 현철이 다친것에만 너무 놀래고 긴장한 나머지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잊은채 계속 전화를 시도한 것이다. 에그, 에그 바보같으니라구. 
왜 모든 사람이 휴대폰을 다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을까.
비로소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대로 손질하지 못한 탓에 헝클어진 긴머리. 아들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으니 빨리 달려오라고 남긴 내 문자 메시지를 보고 정신없이 오느라 얼마나 두렵고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을까. 

마치 숙제를 못 해 온 아이가 선생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듯이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을 보노라니 내가 더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현철이는 아이들과 말뚝박기 놀이를 하다가 목을 좀 다쳤던가 보다. 온 신경이 머리에서 목을 타고 전신에 퍼져 내려가는 그 목을 삐끗하여 순간적으로 혼절했었고, 그래서 통증도 느꼈던건데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라며 6인실에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 보자고 했다. 

일단 다행으로 여기고 아이의 쾌유를 빌며 현철이 엄마더러 너무 걱정말라고 위로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요일인 다음날, 현철이의 상태가 궁금하여 우리 아이와 함께 현철이가 좋아 한다는 피자를 한판 사 들고 병문안을 갔다. 
현철이 아빠도 와 계셨고 우리를 보더니 뭘 또 왔냐고 미안해 하신다.

우리가 병원에 도착한 뒤 20분쯤 흘렀을까. 같이 놀았던 또래 아이들 대여섯명이 우루루 병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병문안을 온 곳이다. 그중에는 아이들 엄마도 두명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현철이 침대에 내려 놓은 것은? 바로 국화빵이었다. 현철이가 국화빵도 무척 좋아한다며 한 아이가 사 들고 온 것이다. 어린것들이 참 생각도 깊다. 그걸 받아든 현철이 표정, 내가 사 들고 간 비싼 피자보다 훨씬 더 좋아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아이의 웃음을 보니 마음이 놓이고 기뻤다. 현철이는 한입에 쏙 들어가는 국화빵을 입안에 집어 넣으며 오물오물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는 연달아 다섯 개를 왕성하게 먹어 치웠다. 아이들이 다같이 웃으며 쾌유를 기원했다. 
그리고 현철이는 다행히 그 바로 다음날 퇴원했다.  

그후 1년 더 있다가 현철이네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지금도 착하디 착한 얼굴과 마음씨를 간직하고 잘 자라주고 있을 고녀석, 지금은 고3이 되어 다 자랐을텐데 나중에 큰 인물 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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