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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김치냉장고
2012-08-17 12:35:42최종 업데이트 : 2012-08-17 12:35:42 작성자 : 시민기자   김성희
"여보, 이거 왜 이래?"
저녁식사를 마친 남편이 복숭아를 깎아 먹자며 김치냉장고를 열다가 소리를 쳤다. 김치 냉장고는 김치만 넣는 곳이 아니라 이런저런 식료품을 많이들 넣어서 사용한다.
당장 쌀을 넣어두어도 쌀벌레도 안생기고, 여러 잡곡류를 통에 담아 넣어 두어도 벌레나 곡물에 변화가 안생기기 때문에 참 요긴하게 쓴다.

우리 김치냉장고도 제법 큰 편이라 한쪽은 김치, 바로 옆쪽은 김치 외에 시골에서 가져온 곡물과 과일을 늘 넣어놓고 쓴다.
남편의 말을 듣고 달려가 보니, 이게 문제가 생겼다. 모든 기능이 비정상적이고 상태를 알리는 전원이 깜빡거리며 고장임을 알리고 있었다.

다음날 업체에 전화를 걸어 보니 직접 와서 봐야 한다며 출장계획을 말했다. 그날 저녁 AS기사님이 오셨는데 10년도 넘은 제품이라 부품을 구하려 해도 시간이 좀 걸리고 수리비도 적잖게 나올것 같은데 수리비 역시 제품을 뜯어 봐야 알수 있을것 같다며 약간 회의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새로 사는게 어떻겠느냐는 그런 표정.

기사님의 얼굴과 말씀으로 봐서 물건 하나 더 팔려는 장삿속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제품을 사더라도 어느 회사 것을 살지 모르니.
하여튼 10년 넘게 쓰면서 나름 정도 들었던 김치 냉장고를 폐기 처분하고 새 것을 사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싱숭생숭 했다.
김치냉장고의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 김치냉장고를 집안에 들여 놓은 사연 때문이었다.

친정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김치냉장고_1
친정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김치냉장고_1

그러니까 10여년전 일이다.
시집 가는 여동생이 친정 부모님과 함께 언니인 우리 집에 놀러와 다같이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모두 둘러 앉아 숟갈을 뜨는데 동생은 형부가 옆에서 듣는데도 아랑곳 없이 우리에게 패물이며, 가구 자랑에 심지어 제부의 직장과 연봉 자랑까지 하기 시작했다. 나는 겉으로는 기뻐하며 축하해 주기는 했으나 마음 한 구석에선 서운함이 배어나왔다. 

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밖에 못 나왔으나 나보다 10살이나 아래인 동생은 집안 가세가 펴서 대학까지 마칠수 있었으니 동생네는 우리 부부가 사는것과는 정말 다르게 결혼생활을 출발할수 있는 조건이었다. 
누가 봐도 부럽지 않은... 하지만 동생의 이런 눈치 없는 자랑에 나는 우울하기만 하고 옆에서 듣는 남편에게도 괜스레 미안했다.

그러면서결혼 초기 반지하 셋방살이로 시작한 나의 신혼살림이 떠올랐다. 조그만 장롱 하나와 냉장고 밖에 준비하지 못했던 그 때. 가난이 원수였던 때라 친정에서 받은 혼수라고는 그게 전부였다. 남편도 그닥 넉넉한 집 아들이 아니어서 우린 그렇게 시작했다. 
그 생각을 하니 동생과 엄마에게 서운하기도 하고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주체할 수가 없어 눈물마저 나와 결국에는 그 자리를 떠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훔치고야 말았다. 돌아와 보니 엄마와 아버지의 표정도 어두워 보이셔서 미안했다.

그런데 밥을 먹던 도중 김치를 맛보시던 친정 아버지가 "김치가 좀 시네"하셨다. 아버지는 신 김치를 별로 안좋아 하신다.
"네. 좀 시죠?... 우리가 김치 냉장고가 없어서 일반 냉장고에 넣고 먹다보니... 아버지, 담번엔 시지 않은 새 김치 담궈 드릴께요"라며 죄송한 말씀을 드렸다. 그 말을 하는데도 기분이 역시 별로였다. 아마도 주변에 김치 냉장고도 없이 사는 집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그 다음날, 엄마 아버지와 여동생은 집으로 내려가셨다. 
그런데 부모님이 가시고 그 다음날인가 우리 집에 김치냉장고가 배달이 왔다. 시킨 적이 없어 황당해 하다가 배달시킨 사람을 보니... 앗, 친정 아버지였다. 이게 웬일?
갑자기 전날 일이 영화처럼 막 지나갔다. 눈치 없는 동생의 자랑, 나의 눈물, 신 김치....

아버지는 큰 딸이 그렇게 된게 당신 책임이거나 잘못이라고 느끼셨던 모양이다. 이게 아닌데 싶어 얼른 전화를 드렸더니 아버지는 "그동안 그저 자식들 키우느라 정신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너한테만 너무 해준게 없구나"라시며 목이 메이셨다.

순간 죄송스럽고고 감격스러워 나도 눈물이 났다. 그리고 더 잘해 드리지 못한 게 후회가 되고 죄송스러웠다. 말씀은 안 하셔도 딸 자식을 이렇게 항상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 
언제 다 효도해서 갚아 드리나...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만 바랄뿐, 자식은 항상 죄스런 마음 뿐이다.
그런 사연을 가지고 있는 제품이기에 나는 새 김치냉장고를 사더라도 한동안은 이 제품을 버릴수가 없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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