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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
2012-08-17 12:52:15최종 업데이트 : 2012-08-17 12:52:15 작성자 : 시민기자   이재령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_1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_1

고향 어르신께서 얼마전에 작고하셨다. 내 어릴적에 고향에서 농사지으시던 어르신 젊은 시절, 나에게 소 꼴 베는 법, 낫질 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이웃집의 자상하신 어르신이었다.

차를 가지고 문상을 갔다. 자식들은 서울에 살고, 수삼년 전에 할머니는 먼저 세상을 먼저 떠나셔서 그동안 홀로 사시던 참이었다.  올해 연세가 83세시라 했고.
그런데 어르신이 먼길 떠나실 때 입고 가시라는 뜻에서 유족들이 고인의 이불과 옷가지 등 유품을 태우기 위해 꺼내온 물건들 중 눈에 띄는게 두가지 있었다. 

신발과 잠바.  유명 메이커 운동화 두 켤레와,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의 오리털 파카 잠바 두벌이 그거였다. 모두다 한번도 쓰지 않은 새것이었다. 
아마도 그 신발과 옷가지는 자식들이 추운데 고생하지 말고 늘 입고 다니시며 몸 따스하게 하시라고 선물로 사준 것들인게 분명했다.

장례식장에 오신 마을 어른들은 이구동성으로 "저걸 아껴서 뭣하려고 여태 안입었을까"라 하셨다. 나이든 사람들은 옛날 어려웠던 시대를 살아온 탓에 뭐든지 아끼는 습관이 몸에 밴 탓이기도 하려니 싶었다.
여름에야 어차피 날이 춥지 않으니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어르신은 작고하시기 전까지 겨울에는 항상 평소에는 시장에서 산 비메이커의 허름한 나이롱 잠바와 오래된 고무신 같은걸 신고 다니셨다며 동네 어른들은 안타까와 했다.

"아녀, 안그려... 모르는 소리덜 말어"
그때 그 할아버지 육촌 쯤 되시는 한분이 말을 막고 나섰다. 그리고 말씀인 즉 그 어르신의 6남매중 제일 못사는 넷째 아들, 지금은 경상도 창원 어디쯤에서 결혼도 못하고 막일로 살아가고 있는 넷째 아들을 줄려고 그랬을거라는 추측이었다.  

제일 못살았어도 어르신께 가장 살갑고 자주 찾아 뵈었던 그 아들에게 주려고 했는데 요즘 건설 경기가 안좋아 막일도 줄어들어서 생활이 어려워졌는지 최근에 집에 자주 오지 않아서 못 주고 있었을거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 넷째 아들은 끝내 당신의 아버지인 어르신의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에는 전해 주지도 못한채 고인이 되어버린 지금.... 가슴이 뭉클하고 먹먹해졌다. 이런게 부모의 마음일까 하는...

문득 7년전쯤 떠나신 큰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치매 때문에 시설로 옮기셨고, 그곳에서 자꾸 식사를 거르신다는 보호자의 연락이 왔을때 나눴던 말.
"오늘은 좀 잡수셨어요?"
걱정스러워 하는 조카의 말에 관리자께서는 "식사를 안 하시려고 해서(그렇게 음식 잘 드시던 어머니셨는데)... 다른 선생님 한 분이 전담해서 숟가락으로 떠 드렸는데 조금밖에 안 드셨어요" 라고 하셨다.

이어진 말씀에 의하면, "며느리나 아드님한테 전화할까요. 한번 내려 오라고... 어머니?"라고 여쭙자 안된다며 손사래를 치시더라 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걱정들 하니께....."
이미 모든 과거의 기억을 거의 다 갖고 계시지 않으셨던 치매셨고, 시설에서 드러눕고, 소리 지르고, 우시기까지 하면서 정신 줄 놓으셨던 큰어머님은 그런 와중에도 하신 말씀이.
"(아들 딸들이) 걱정들 하니께....."였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다 그렇다.
문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내내 그렇게 가신 큰어머니 생각이 다시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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