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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 간이역 여행은 어떠세요
2012-08-17 13:51:23최종 업데이트 : 2012-08-17 13:51:23 작성자 : 시민기자   유병화
올 가을, 간이역 여행은 어떠세요_1
올 가을, 간이역 여행은 어떠세요_1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는 시골 간이역 대합실의 겨울 풍경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이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진 멋진 시가 아닐수 없다.

간이역. 
이 3자짜리 단어는 생각만 해도 아날로그적인 아릿한 추억과 명상을 하게 만든다. 통기타 시절 7080세대들의 기억속에는 당시 간이역이 아닌, 큰 역으로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내려주고 했을 수많은 역들.
이젠 세월이 흘러 농촌에 사람이 줄어들고 모두 다 도시로 도시로 흘러 들어와 살다 보니 무시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장터나 읍내는 점차 줄어들어 그 주변의 역은 어느날엔가부터 사람이 타고 내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잊고 지내는 사이 이 역들은 모두 다 간이역이 되었다.  좀더 알아보니 사실 사평역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역이라 하지만, 그 상상속의 역마저 우리를 가슴 설레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빠른 속도에만 몰입해왔기 때문 아닐까. 
그런 우리에게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느림과 낭만의 여유를 즐기는데는 간이역만한 곳이 없을듯 하다. 출근시간에 쫓기고, 택시를 잡기 위해 뛰고, 심지어는 엘리베이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리는 우리들에게 삶은 그 자체가 늘 속도경쟁이다. 

그러기에 시속 50km로 달리는 기차여행은 색다른 경험이고, 인적 드문 간이역을 찾는 건 바쁜 일상을 내려 놓는 쉼표가 아닐까.
재작년 가을에 경북 예천의 용궁역에 갔었다. 붉은색 지붕의 아담한 용궁역사는 키 큰 나무들에 가려 제모습을 금방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낯선 이와 내외하듯 슬쩍 몸을 틀고 선 역사 안으로 들어가면 텅 빈 대기실의 긴 의자가 적막하다. 역무원도 없고 승객도 보이지 않는 빈 대기실엔 열차시각표만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기차가 들어오는 플랫폼으로 나가면 여의주를 손(!)에 든 화려한 용 한 마리가 느닷없이 나타난다. 아마도 용궁의 지명 유래를 말해주기 위해 만든 조형물같았다. 
텅 빈 플랫폼 풍경은 오래 전 시간 속으로 거침없이 나그네를 이끈다. 벌겋게 녹슨 철로와 나무굄목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는 어린 시절 기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한다. '빠앙~' 기적이 울고, 열차바퀴가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간이역에 다다르면 마음도 왠지 다급해지며 함께 달리고 싶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열차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고장을 얼마나 많이 꿈꾸었던가.  
시골 간이역은 이름부터가 하나같이 들꽃 이름을 닮아 정겹다.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가장 운치가 있기로는 역시 가을이 최고다. 코스모스와 구절초가 무리지어 피어 바람에 흔들리며 오지 않는 완행열차를 기다리는 모습은 쓸쓸하다 못해 처연하다. 

무엇보다 간이역에는 장년 세대들의 추억과 향수가 서려 있다. 시골 출신이라면 누구나 학창 시절에 기차 통학을 하면서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의 하얀 목덜미에 쿵쾅거리며 가슴이 뛰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으로 시작하는 나훈아의 국민가요 '고향역'도 가을이 배경이다. '고향역'의 실제 무대는 전북 익산역이라 한다.   그 시절의 기억을 살려 만든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한 것이다. 

이런저런 사연과 낭만과 추억을 살려 각 지자체마다 그동안 눈길도 안주던 간이역을 개발하거나 관광객을 맞기 위해 새로 단장하고 준비흐는 것도 많다고 한다. 
주변에 코스모스를 심고 향수를 자극할만한 무언가를 준비하고 과거를 되살린다면 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나마 사람이 줄어들어 적막하기만 하던 농촌과 간이역 주변에 사람 소리가 조금이라도 더 들리지 않을까.

시속 300㎞의 KTX 시대가 열렸지만 완행열차가 주는 느림의 미학과 가치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초고속 질주에서 느끼는 쾌감도 있겠지만 간이역의 한가로움은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니까. 

시민기자는 한달후쯤 날이 조금 더 선선해지고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필때쯤 아내와 함께 춘천쪽의 간이역을 찾아 여행을 떠나 볼 참이다. 
혹여 이 글을 읽고 계신 e수원뉴스 독자님들도 전국에 고즈넉한 간이역 어느곳에라도 홀연히 찾아가 마음의 휴식을 한번 얻고 오시기를 권해드리고 싶다.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초라한 내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가수 조성모는 김현철의 노래 '춘천 가는 기차'를 리메이크해 감미로운 목소리로 이렇게 노래했다. 

주말에 완행열차를 타고 한번 훌쩍 떠나 보는 간이역 여행. 가다가 이름없는 간이역에 내리면 그곳에 가을이 한껏 무르익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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