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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가다 현장 체험기
사기 건수가 일본의 60배라는 기사를 보고.
2012-08-17 15:01:24최종 업데이트 : 2012-08-17 15:01:24 작성자 : 시민기자   이기현

최근에 신문에 난 기사를 읽다가 뒤로 꼬꾸라지는 줄 알았다. 사기범죄 발생건수가 일본보다 무려 60배나 많다는 기사였다.
인구 숫자 3분지1을 감안하지 않아도 20배가 많고, 인구비율을 적용하면 3배가 뛰어서 자연스레 60배정도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요즘 일본과 독도문제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고, 일본에서는 심지어 개전(開戰)하라는 극악한 표현까지 서슴치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국가 부패지수 세계50위권도 정말 기가 찬데 파렴치한 범죄에 드는 이 사기건수는 무려 60배라니.  일본이 잘났다는게 아니라, 우리가 좀 좀 깨끗한 나라가 될수는 없을까. 그래야 일본도 이길것 아닌가.

사기 사건은 단연코 남을 속여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이유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본인의 피땀 어린 노력 없이 사기를 치고, 남의 눈에서 피눈물을 나게 만들고, 심지어 그 충격에 목숨까지 버리게 하는게 이 사기 행위다.
그러나 정직하게 노력하며 살자는 뜻에서 본인의 경험을 전하고자 한다.

대학을 갓 졸업한뒤 당장 직장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님이 고혈압으로 쓰러지셨다. 청천병력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결국 생각해낸 일이 바로 노가다였다. 공사판에서의 막노동. 물론 막노동이 힘들고 위험성은 있었지만 그 당시 하루 일당 5만원으로 계산해봤을 때 20일만 일해도 100만원이라는 거금이 모이기 때문에 한 번 마음 먹고 20일 정도 죽었다 생각하고 일해보자는 심산으로 막노동판에 뛰어 들게 되었다.

 

나의 노가다 현장 체험기_1
나의 노가다 현장 체험기_1

그해 12월. 겨울의 차가운 냉기와 바람이 맹위를 떨칠때  전화번호부에서 막노동 할수 있는 번호를 뒤졌더니 인력사무실이 나왔다. 그쪽에서는 아침 6시까지 나오라며, 일거리가 없을때는 선착순이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혹시나 싶어 아침 5시반까지 달려갔는데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막노동인데도 그 일자리 놓칠까봐 신새벽에 대기업 취직해서 첫 출근하듯 뛰쳐 나갔건만 인력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왜 그렇게 부끄럽고 창피하던지... 도저히 문을 열고 들어설 용기가 안났다.

그렇게 인력사무실 근처를 빙빙 돌다가 할 수 없이 그냥 돌아왔는데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가 막노동 하러 간 사무실만 바라보고 있는듯 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막노동꾼들이 일제히 나만 쳐다보며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라며 놀릴것만 같았다.

또 못들어 가고, 또 사무실 근처만 빙빙 돌다가, 또 그냥 들어오고... 그렇게 4일째 되던 날 어금니 꽉 깨물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았다. 오로지 자기 일만 생각할뿐... 나도 참 엄청난 자격지심이었던 것이다. 나의 막노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첫날 난 용역회사 직원의 봉고차에 실려 공사현장으로 이동했다. 약 30여분을 달려서 도착한 현장은 한 관공서에서 발주한 사회복지관 건축공사 현장이었다. 
본공사 시작전에 안전기원제(일종의 안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다고 했다. 
현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현장사무실에 모인 사람들은 안전기원제를 지냈다. "유세차~ 하늘신이시여 청명하게 해주시고, 강의 신이시여 .....어쩌고 저쩌고..." 돼지머리와 떡, 그리고 약간의 과일을 차려놓고 온갖 신들에게 그런저런 요구를 했다. 

안전 기원제를 끝내고 곧바로 작업 시작. 장갑을 끼고 밖으로 나가보니 외부온도가 영하 20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추위속에 강행하는 막노동은 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내복 두겹을 껴입고 솜바지를 착용하고 그 위에 기모소재의 홑바지를 한벌 더입어도 어디서 들어오는지 매서운 칼바람이 속살을 차갑게 후려쳤다. 

공사장에는 정말 이런 일을 할수 없을것 같은 연세 드신분들도 적잖이 보였다. 인생 말년에 얼마나 궁하면 젊은이들이나 할 수 있는 이 고달픈 노동현장에 나와서 저렇게 고역을 겪을까 하는 동정 어린 눈길로 할아버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장은 소리, 냄새, 먼지 등의 공해의 백화점 이었다. 쇠파이프, 알미늄샤시, 철판 절단하는 톱날소리, 구멍 뚫은 드릴소리, 망치 소리 등 고막이 찢어질 듯 요란했다.
그중 쇠파이프를 자를 때면 미세한 쇠 조각이 불꽃을 튀면서 돌아가는 톱날소리가 소름이 끼치도록 징그러웠다. 전화벨소리도 들리지 않고 옆에서 말을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노가다에는 조적(벽돌 쌓는 사람), 미장, 철근, 목수, 타일 같은 일을 하는 분들이 계시다.  공사판에 가기 전에는 그저 일꾼들로만 생각했던 그분들, 그러나 직접 현장에 와 보니 그분들은  고급인력이었다. 
그리고 나처럼 기술 없이 그분들의 뒷일을 보아주는 사람을 데모도라고 하는데 잡부는 이렇게 뒷치닥거리를 해주면서 삽질도 하고, 질통도 지고, 오만가지 잡일을 다 한다.

일당이 제일 적은데다가 일은 힘들고 또 일을 마쳤을 때 작업복 행색이 제일 누추해지는 것 또한 잡부이다.
나 역시 기술이 없었으므로 잡부일뿐이었다. 역할은 알미늄샤시와 철근을 재단하여 주면 그 자재를 날라주고, 기사들의 뒤에서 자재를 잡아 주고 도와주는 일이었다.
"노가다 하실분 같지 않은데, 어쩌다가 노가다를 하시게 됐어요?"
이 말은 노가다꾼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노가다꾼들도 함께 일을 하다 보면 끼리끼리 뭉치고 친하게 지내는 무리들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 무리안에 쉽게 들어가는 방법으로도 이 말을 자주 쓴다.
즉 내가 끼고 싶은 무리중 한명에게 "노가다 하실분 같지 않은데, 어쩌다가 노가다를 하시게 됐어요?"라며 은근히 추켜 주면 단박에 기분이 좋아서 "내가 말이지... 한때는 연 매출 10억은 되는 무역업을 하다가..."로 시작해 장황하게 자기의 과거지사를 회상하게 된다. 즉 자기의 과거를 인정해 주는걸 기분 좋게 생각하는 것이다.
노가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이 "노가다 하실분 같지 않은데"를 달고 살면 당장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

그렇게 6달 넘게 번 피같은 돈으로 아버님 병원 치료비를 조금이나마 댈수 있었고, 7달째가 될 때쯤 드디어 취업이 결정됐다. 
내가 막노동 일터에 나가 일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단 6달의 경험이었지만 그 6개월은 내 생애 참으로 값진 자산이 되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되고 있으며, 비록 힘들긴 했지만 그 일터에서 사람냄새 묻어나는 사람 살아가는 인생을 배운 뜻깊은 시간이었다.

누구든 자기가 처한 현재의 위치에서 곧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자. 내가 조금 어렵다고 해서, 혹은 가질만큼 가진 사람들이 더 갖기 위해서 남의 등을 치는 사람들. 
정말 내가 뼛골이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노력해서 벌어야지, 사기를 치는 것 같은 일로 남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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