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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바다에서의 고해성사
2012-08-16 15:42:34최종 업데이트 : 2012-08-16 15:42:34 작성자 : 시민기자   남준희
토요일 오후, 시속 120Km.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거침없이 남서쪽으로 내닫는다. 수원기점 90Km. 라디오를 켰다. 일기예보가 나왔다. 
"오늘밤부터 점차 흐려지겠고, 내일은 강한 비바람과 함께 돌풍이 예상되오니..."
차가 서해 해안도로에 접어들었을 즈음, 차창 밖으로는 벌겋게 타오르는 불덩이가 바다 너머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우리나라 서해안 낙조는 세계 어디에 비해도 손색없을만큼 아름답다고 들었는데... 정말이구나.
비가 내린다고는 했지만 홀로 인생을 돌아보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날씨다.  

나는 수원에서 무작정 떠나왔다. 아마도 난 적당히 취할것이며,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작심하니 마음이 가볍다.
'꾸욱'휴대폰을 껐다. 이미 집에다는 말을 해두고 왔으니 걱정할거 없다.  그냥 쉬자. 
해안가로 차를 몰았다. '꽃지 해수욕장'이름만큼 예쁜 해변이다. 휴가철이 아니어서인지 해안가는 바닷물 빠지는 소리만 조금 들릴 뿐 너무나 조용하다. 그래, 속세를 떠나온 거야. 

차를 세웠다. '동구밖 펜션'역시 이름이 예쁘다. 집도 솔숲에 자리잡아 아늑해 보인다. '저기서 묵자'. 믿었던 펜션 이름처럼 주인장 맘씨도 시골처럼 넉넉하고 편해보인다.  
차를 펜션에 세워두고 해안가에 나가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 2병, 소주 1병을 거의 다 비웠다. 휴가를 떠나 온 사람들이 분주하게 쉬고 있다. 

취기가 적당히 오른다. 
백사장에 앉아 맥주 한잔 마시고 나면 이 녀석 바닷물이 저만치 빠져나가 있다. 다시 소주 한잔 마시고 해넘은 수평선 멀찌감치 바라보다 고개를 떨궈보면 이녀석 물이 또 2미터는 빠져 도망갔다. 

내나이 50 초반이니 인생을 올바르게 걸어 왔어야 하는데 과연 그래왔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오래전 이해인 시인의 교양강좌를 들은적이 있다.  그분은 자기이름을 바다처럼 인자한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해인(海仁)'이라 지었다고 했다. 그 혜량의 10분지1만큼이라도 내게 있는지 궁금하다. 세월의 몰아침에 늘 쫓기며 살아온 지금 난 '海仁'할수 있는지...

서해바다에서의 고해성사_1
서해바다에서의 고해성사_1

저만치 자그마한 섬이 보인다. 해안선에서 바닷길과 거리로 3부능선쯤에 썰물이 빠져있다. 5부능선쯤에나 멈출까? 궁금하다. 밤을 새워 지켜볼까? 
현기증이 날 정도로 까마득한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꿈을 꿔보고 싶다. 난 그 순간 과연 무엇을 기도할수 있을까?  살려 달라고 빌까? 어차피 포기하고 처자식 보살펴달라고 할까? 향일성의 가지가 질린데서 오는 다급한 체념이 내게 주는 메시지는 뭘까?

이틀째. 아침에 일어나 가까운 솔밭으로 산책을 나섰다.  일전에 읽은 논어를 떠올리며 또한번 사색에 빠져 본다. 뼛속 깊이 기억 나는게 떠올랐다.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 "충성과 믿음을 주로 하며, 허물이 있거든 꺼리지 말고 고칠지니라"라는 구절. 그리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탓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 "라는 공자의 말씀이 있다.

인간은 누구든지 평생 동안 과실의 연속 속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허물을 고치면 그 허물이 없어지지만 허물을 고치기를 꺼려하면, 공자께서 말한 소인(小人)이라 된다. 소인배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허물을 고쳐라.
난, 내 허물에 얼마나 무서운 메스를 들이대어 인정하고 고치려 했을까.... 난 이미 오래전부터 소인배 아니었을까? 직장에서 후배 직원들에게 내 허물을 인정할줄 알면서 행동했을까? 그게 싫어서 꼼수를 부리다가 후배들에게 소인배처럼 보이지나 않았을까? 내 이웃과 주변보다 나만 먼저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문득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발버둥치거나 거짓을 고하거나 속이거나 잔꾀를 부린다면 그것은 오평생(誤平生)이다.
이제 남은 여생을 그런 오평생이 되지 않게 수양을 쌓으며 더 베풀고 너그럽게 행하는게 소명일거라고 믿는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먹구름이 끼었는지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오려나?'
문득 가족이 보고싶다. 나이 50 초반에 다시 본 내 인생, 나를 더 소중하게 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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