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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마음으로 귀국길에 오른 날
네팔이주노동자들과의 동행,
2013-07-22 11:56:15최종 업데이트 : 2013-07-22 11:56:15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홀로 네팔을 찾았다. 네팔·한국문화센타를 어찌할 것인지 결론을 내려야했다. 
3개월 가까운 시간을 낯선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수행자처럼 지내며 진로를 결정해야 했다. 지인의 방문도 나만의 여행도 모두 미래를 고민하며 이어가는 일상이었다. 
시민기자는 최종적으로 네팔에서의 활동을 당분간 유보하기로 했다. 이제 네팔에 사는 아내의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 우선 카트만두에 결혼해 살고 있는 처제 집을 찾았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다니는 쿠시구릉(7살, 1학년)이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아준다. 쿠시라는 뜻은 반가움, 즐거움이란 뜻이다. 그래서일까? 항상 반갑고 즐거운 표정으로 맞아준다. 오후 시간에 집을 찾았는데 저녁 식사를 하고 가라는 처제의 반복되는 요청에 막내처제를 불렀다. 8시에 일이 끝나는 처제가 오면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정전으로 전기가 나갔다. 

무거운 마음으로 귀국길에 오른 날_1
네팔 구릉족들이 저녁 늦게 집에 찾아왔다. 반복되는 송별이다. 마음이 무겁지만 고마운 시간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귀국길에 오른 날_2
전기가 나가자 촛불 아래서 열심히 공부하는 쿠시 구릉이 대견하다.

쿠시구릉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매우 열심히 숙제를 시작했고, 곧 촛불을 밝혔는데도 아랑곳없이 열심이다. 어린 시절 등잔불 밑에서 쪼그리고 안장 공부하던 날이 떠오른다. 더구나 몽당연필을 쥔 손이 한없이 귀엽고 예쁘다. 

다음 날 아침은 네팔 정부 기관지인 고르카 신문의 편집장을 초청했다. 앞으로 일에 대해 사정을 이야기하고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귀국 전날 늦은 저녁에는 아내와 같은 종족인 구릉족 언론인들이 찾아왔다. 

아내에게 전하라며 네팔인들의 군것질거리와 찌아 등을 세심하게 준비해왔다. 잠깐 얼굴이나 보고 차나 한 잔 할 생각으로 기다렸는데 급하게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미역국과 오이냉국을 맛있게 먹는 그들을 보며 매우 고마운 생각이 든다. 예고 없이 오래되는 아내의 한국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는 고마움이다. 당초 2~3개월 한국 여행 후 네팔로 돌아가기로 했으나 아내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져간다. 

무거운 마음으로 귀국길에 오른 날_3
네팔 영화 협회장 케이피 파닥(KP PADAK)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다. 그는 이미 2차례 한국을 찾은 바 있다.

무거운 마음으로 귀국길에 오른 날_4
한국 가는 길이다. 네팔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나라 국적기인 네팔항공에서 자리를 찾고 있다.

더구나 내가 주도해서 시작한 일인 네팔·한국문화센타의 운영이 원활하지 않다. 이제 당분간 한국생활을 다시 시작해야할 형편이다. 다음 날 아침 카트만두 트리뷰반 국제공항을 향했다. 
항상 어딘가를 떠날 때 기약할 수 없는 발걸음은 더없이 안타까운 느낌이다. 하지만 곧 공항은 출국 수속을 밟고 곧 밝아진다. 나를 필요로 한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많은 네팔 노동자들이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대부분 직항을 이용하는 네팔이주노동자들이 이번에는 태국에서 비행기를 갈아탄다고 했다. 태국까지 많은 이주노동자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과 자유롭게 말 할 수 있는 동행을 만나 즐겁고 시민기자 또한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 즐겁다. 
지난 해 한국어능력시험이 치러지지 않아 이들은 오래도록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기다려온 사람들이다. 설레임에 가족과의 헤어짐에 착잡한 마음이지만 자신들이 발걸음하는 한국인과 낯설지 않은 길동무가 되어 안도하는 느낌이다. 

태국의 돈무앙 국제공항에서 우리는 매우 돈독한 느낌으로 비행기를 갈아타는 동안 함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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