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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의 미학
전업주부의 삶의 가치는 얼마인가
2013-07-22 16:13:08최종 업데이트 : 2013-07-22 16:13:08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세정

매일 아침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아침상을 차린다. 남편이 나가고 나면 유치원에 갈 아이를 깨워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TV를 좀더 보고 싶다는 아이를 겨우 달래서 유치원 차 타는 곳으로 겨우 데리고 나간다. 그 곁에 이제 22개월 된 둘째 아이가 있다. 오빠 배웅하느라 둘째 아이도 씻기고 옷을 입히고 머리를 빗겨야 한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큰 아이를 겨우 차를 태워 보내고 나면 한시름 놓는 듯 하지만, 다시 둘째 아이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엄마를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 딸아이는 나의 여유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설거지를 하려고 하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고, 청소를 하려고 하면 금세 엄마 등에 올라타고, 책이라도 좀 보려고 하면 다가와서 자기와 놀아달라며 곧바로 책을 덮어버리기 일쑤이다. 

살림의 미학_1
항상 소소한 것으로부터 감사하고 감동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내가 되길

그렇다 보니, 청소도 나만의 쉼도 쉽지 않은 하루 일상이다. 아이와 씨름을 하고 낮잠을 재우고 나면 그제서야 시간이 조금 나서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집안을 쓸고 닦기 시작한다. 물소리에 아이가 깰까 아까 남겨놓은 설거지는 큰 아이가 와서 지 동생과 놀아주면 그때 할 생각이다. 혹자는 아이 잘 때 너도 자거나 쉬지 그러느냐 하지만, 천만의 말씀! 그 때 집을 치우지 못하면 종일 치울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매일 이런 삶의 연속이다. 아이들을 돌보고, 집을 치우고 또 치우고, 밥을 하고 또 무엇을 먹을까 차릴까를 고민하며, 장마면 장마라 마르지 않아 냄새 나는 빨래들을 걱정하며……
어디 그뿐인가, 그 와중에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할지 어떻게 해야 바른 습관을 길러주고 부모로 그릇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지 정신적인 노동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육체와 정신적 노동으로 이뤄지는 집안의 모든 일과 육아에 대해 스스로 완벽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는 엄청난 죄책감을 동반하며 지내야 한다.
 
"초콜릿!!"
6살 큰 아이의 친구가 '초콜릿'을 읽는다. '그렇게 어려운 글자를 어떻게 읽지?' 남편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우리 아이는 아직 한글을 떼지 못했다. 남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당신은 여태 뭐했길래, 우리 애는 아직 이 모양이냐'는 눈초리다. 
나는 작아진다. 나는 왜 좀더 열심히 아이를 가르치지 못 했는가? 이러다가 우리 아이가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를 돌아본다. 맘을 다잡고 아이를 앉혀놓고 한글 공부 책을 펼친다. 둘째 놈이 자꾸 와서 뒤엎는다. 겨우 앉혀놓은 큰아이, 그리고 나는 좀처럼 집중하기가 힘들다. 됐다, 이건 이따가 아빠 오시면 하자.
 
전업주부의 일상은 실로 쳇바퀴 같다. 아니 그보다 더한 표현 없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아내'와 '엄마'라는 사명감 때문이다. 무엇보다 '엄마'라는 이름은 이 덧없고 앞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그 무게중심을 잡고 있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운명을 거스를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영화배우 장동건과 고소영의 결혼식 주례를 한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씨는 그들의 주례사에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아들 딸로 3분의 1을 살고, 남편 아내로 3분의 1을 살고, 나머지 3분의 1은 아버지와 어머니로 세상을 삽니다. 인간의 총체적인 삶은 이 세 조각을 각각 다 맞춰야 온전한 모양의 그림이 되는, 퍼즐 게임과도 같은 것이지요. (중략) 시들해지는 일상의 반복을 다시 일깨워 살려내는 것. 그것이 바로 살림이라는 말입니다. 결혼 생활은 곧 죽음의 반대어인 살림입니다." 
 
매일 같은 일의 반복, 특히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티가 나지 않는 살림과 육아를 하면서 도망치고 싶고 나도 모르게 우울 감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때 저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 나는 이 가정을 살리는 살림꾼이다.'
 
오늘도 나는 오랜 장마로 눅눅해진 집안을 쓸고 닦으면서 내 마음도 함께 다잡는다. 다시 말끔하게 정돈 된 집안 모습에 나도 모를 성취감이 몰려온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기쁨. 아니, 그로 인해 아이들도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뛰어 놀 수 있으니 나로 인한 가족의 기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청소를 하고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카톡으로 보낸다. 
 
"와~집에서 광채가 난다. 수고했어!!"
남편의 한마디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아마 남편이 돌아올 시간에는 이미 다시 원상복귀 될지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계속 이렇게 내 가족을 위해 살림에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될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한다. 전업주부의 삶 가치, 세상 그 무엇보다 고결하고 귀한 것임을 내 스스로 각인하고 지속력을 잃지 말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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