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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느리게 움직이면서 얻는 행복
2012-08-09 10:28:55최종 업데이트 : 2012-08-09 10:28:55 작성자 : 시민기자   이기현
휴일에 짬을 내어 최근 두달 사이에 두 곳의 명산을 다녀왔다. 한 곳은 산악회 정기모임에서 충남 공주의 계룡산에 다녀온 것이고, 또 하나는 순전히 혼자서 배낭을 메고 남양주의 축령산으로 발길을 한 것이다.
평소 걷기와 등산을 좋아해 큰 부담 없이 산행을 하곤 한다. 그런데 정상을 향하는 두 곳의 산행 방법이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산악회는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걷는 사람들이 많다. 일행과 보조를 맞춰야 하니까 대부분이 빠른 걸음으로 정상을 향한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반면에 혼자 걷는 산행은 천천히 걸으면서 제비꽃을 보고 "아니 이 녀석이 제철이 지났는데 늦게 핀 걸 보니 지각한 꽃이네!" 하는 생각의 여유를 갖게 한다.
또한 한 쪽에서 자라는 싸리나무를 보며 군대시절 라면 끓여 먹었던 과거를 떠올기도 한다. 원래 목적이 있었기에 다른 방법으로 등산을 시도했을 것이지만, 시간이 좀 지나 생각해 보니 여유와 느림으로 하루 동안 자연을 완상한 기회가 더 기억 속에 남는다.

조금 느리게 움직이면서 얻는 행복_1
조금 느리게 움직이면서 얻는 행복_1

산을 오르다 보면 단체 산행때는 "이번 산행에선 30분을 단축하여 몇 시간 만에 종주했다"는 둥 혹은 "아무개는 체력관리좀 더해야겠다. 너무 힘들어 보여서 안쓰럽다"는 등 빨리 오르는게 장땡인것 처럼 무용담을 많이 내놓는다.
그러나 혼자 하는 나만의 산행에서는 단체 산행 때는 보이지 않았던 바위도 보이고, 등산로의 풀꽃도 보이고, 아름답게 지저귀는 산새들의 노랫소리도 들리고, 8부 능선 9부 능선에서 뒤늦게 피는 지각 꽃의 향내를 맡고 걸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그 순간 피로가 사라지고 나름대로 나 홀로 느끼는 정겨운 대화가 있고, 내 지난날의 궤적을 돌아볼 여유도 생기고,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 볼수 있어서 더 좋다.

학생때 몇 번 수학여행을 다녀온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여행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일정표 자체가 쪼개진 시간 단위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민속마을이나 식물원 같이 볼거리가 많고 학습하기에 큰 효과가 있는 장소도 한 시간 정도 만 허락되었다. 설악산에 올라갈때도 뒤에서 빨리 가라는 재촉의 소리가 들리고, 앞사람과 연결선이 끊길세라 뛰어가다시피 했으니...

그래서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은 기억 나는게 하나도 없다. 그저 앞사람의 등을 보고 빠르게 걷거나 정신없이 뛴 기억, 그리고 앞사람 놓치지 말라는 선생님의 외침소리만 남아 있을뿐.
그러니 뭘 보고 느꼈는지 알턱이 없다. 

박물관에 가 봐도 이런 모습은 자주 볼 수 있다. 부모님과 같이 온 아이는 한 손에 노트를 들고 열심히 적는 모습은 참 대견하기도 하지만, 그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면 실망할 때가 많다. 
엄마는 대뜸 "야 이건 국보급이야 잘 적어. 다 됐지? 다른 것을 봐야지. 빨리 가자" 하고 아이 손을 잡아당긴다. 그 아이는 과연 무엇을 봤을까? 아마 작품이 아닌 해설만 열심히 적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박물관 견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물을 볼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유물이나 작품 앞에서 다른 사람의 방해 없이 수많은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에서 제공한 판에 박힌 정형적 해설이 아닌, 자신의 가슴과 눈으로 느끼고 보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여유가 참된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창의적 사고의 유연성을 배양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엄마는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가르쳐 주기 위해 "빨리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하면서 그렇게 3시간동안 100개의 유물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이는 단 1개의 작품을 3시간 동안 보고 싶을수도 있고, 정말 아이에게 필요한건 그런 감상법일수 있는데 우리는 지금 그렇지 않은 것이다.

산행이든 작품 감상이든 늘 느끼는 일이지만 모두 다 우리네 사는 것과 비슷하다. 무작정 빨리 앞만 보고 달릴게 아니라 뒤도 좀 돌아보고, 옆도 보면서 사는게 훨씬 더 인간적이고 마음의 행복을 줄것이다.
조급함을 버리고 좀 느슨함 속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감상하면서 살아갈 때 조화와 균형이 생기지 않을까. 
이번 여름에도 속도와는 거리가 먼 느림과 여유를 느끼면서 실천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택하여 휴가를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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